풀리지 않는 수치 풀리지 않는 의문
  • 조홍래 편집위원 ()
  • 승인 2009.05.26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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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부, 가택 연금 조건 위반으로 또 재판 내년 총선 앞두고 일찌감치 야당 기 꺾기인가

▲ 시위대 중 한 사람이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 가면을 쓰고 있다. ⓒEPA

미얀마의 민주투사 아웅산 수치 여사가 지난 5월18일 재판에 회부되었다. 이유는 가택연금 조건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수치 여사의 연금은 5월27일 해제될 예정이었다. 군부가 주장하는 혐의는 미국 청년이 관련된 의문의 사건과 관련이 있다. 지난 4월 초 미국인 청년이 밤중에 호수를 헤엄쳐서 수치 여사의 저택에 잠입했고 수치 여사는 그를 하룻밤 재워주었다. 이 때문에 수치 여사는 5년 징역형을 받을 수 있는 재판에 넘겨졌다. 미국 청년이 왜 그런 행동을 해 수치 여사를 곤경에 몰아넣었는지는 미스터리에 쌓여 있다. 

수치 여사에 대한 재판이 열리던 날 교도소 밖에는 일단의 지지자들이 몰려와 항의 시위를 했다. 그러나 수백 명의 경찰과 군인들은 미얀마 중심가의 인세인 정치범 교도소 입구를 철통같이 봉쇄하고 이들의 접근을 막았다.

일부 외교관들이 법정에 들어가려다 제지당했다. 미국대사관 관리들은 예외적으로 재판정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유는 수치 여사의 가택을 침범한 미국 청년이 같은 법정에서 재판을 받기 때문이다. 존 예토우라는 이 청년은 수치 여사의 초청이나 동의 없이 자기 마음대로 그녀의 집에 잠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군부는 이 사건이 결과적으로 가택연금 조건을 위반했다고 보고 있다. 올해로 13년째 가택연금 상태에 있는 수치 여사는 외부와의 접촉이 금지되어 있다. 요컨대 미국 청년이 잠입했을 때 이를 즉각 신고하지 않은 것이 위법이라는 것이다. 이 청년은 처음 수치 여사 집에 도착했을 때 다리에 쥐가 나서 걸을 수 없다고 호소해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청년은 새벽에 몰래 도망치다가 경찰에 들켜 체포되었다.

수치 여사를 재판에 회부한 군부의 조치는 최근 수년간 그녀에게 취한 가장 가혹한 탄압이다. 많은 분석가는 이번 재판이 수치에 대한 가택연금을 연장시키기 위한 술책으로 본다. 수치의 연금이 해제되면 내년 봄 총선에서 그녀가 이끄는 야당이 압승해 군부의 집권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부는 또 수치 여사를 투옥함으로써 선거를 앞두고 목소리를 높이는 야당 세력을 선제적으로 누르려는 의도도 갖고 있다.

군부는 지난 2007년 승려들의 집단 시위 이후 야당 세력을 잔혹하게 진압했으나 지하로 들어간 재야 정치인들은 틈만 나면 거리 시위를 벌이고 전단을 살포한다. 이들은 수치 여사의 투옥에 대해서도 항의 시위를 벌였다. 미얀마에서는 군부의 감시가 워낙 엄해 다중의 시위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수치 여사의 재판이 언제 끝날지는 모르나 교도소 봉쇄 조치는 1주일 정도 계속될 것으로 전해졌다.

군부의 조치는 즉각 국제적인 규탄을 불러왔다. 유엔과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재판 중단을 요구했다. 평소 군부에 동정적이었던 일부 동남아 국가들도 이번에는 군부를 규탄했다. 미얀마에 대한 강경 노선을 재검토하고 있던 미국은 최근 제재를 1년 더 연장했다. 이 나라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던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 노선도 재고가 불가피해졌다. 유럽연합(EU)은 지금은 미얀마에 대한 제재를 완화할 때가 아니라 강화할 때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수치 여사 지지자들, 망명 단체 및 그녀의 변호인들은 그녀를 곤경에 몰아넣은 미국인에 대해 분노를 나타냈다. 미국 미주리 주 팰콘 출신의 이 청년은 한밤중에 양곤 중심에 있는 호수를 플라스틱통을 타고 헤엄쳐 수치 여사 집에 도착했다. 그가 왜 그런 엉뚱한 짓을 했는지 내막은 밝혀지지 않았다. 한 미국 외교관은 모르몬교도인 그가 종교적 동기에서 그랬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수치 여사의 수석 변호인은 그 청년이 미치광이가 아니면 바보 멍청이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도착했을 때 수치 여사는 즉각 떠나라고 했으나 청년은 기진맥진한 데다 다리에 쥐까지 나서 걸을 수가 없으니 하룻밤만 재워달라고 호소했다. 수치 여사는 할 수 없이 그를 1층 방에 머무르게 하고 자신은 2층 침실에서 잤다. 아침이 되었을 때 청년은 이미 군부에 체포되어 있었다. 일부 재야 단체들은 이 괴상한 사건이 군부의 조작에 의한 연극이라고 주장했으나 확인된 바는 없다.

한밤중 침입한 미국인 청년은 미스터리

▲ 아웅산 수치 포스터를 목에 건 민주당 지지자가 태국의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장난감 총을 든 채 시위하고 있다. ⓒ로이터

군부는 수치 여사가 외국 방문객과 만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며, 심지어 고위 외교관들의  접견도 허용하지 않는다. 가끔 유엔 특사가 그녀를 면회하는 경우가 있으나 정부의 영빈관 청사에서만 가능했다. 특히 외부 손님이 그녀의 집에서 자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미국 청년은 그녀의 집에 유숙하는 동안 기도를 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무엇을 위해 어떤 기도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수치 여사가 이끄는 국민민주동맹(NLD) 당원들은 그녀에 대한 가택연금 종료를 한 달 정도 앞두고 이런 사건이 발생한 데에 의혹을 제기했다. 수치가 재판에서 5년 징역을 받을 경우  2010년까지 선거에 나갈 수 없게 된다. 수치에 대한 연금은 1990년부터 6년 주기로 반복되었다. 

내년 봄의 총선은 군부 통치를 합법화하기 위한 구실로 보인다. 따라서 수치 여사가 연금에서 풀려 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군부는 바라지 않는다. 미얀마에서 군사 통치가 시작된 것은 1962년 쿠데타 때부터이다. 그러니까 32년째 캄캄한 군부 독재가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수치 여사는 1945년 미얀마(버마)의 독립 영웅 아웅산 장군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1947년 암살되었고, 어머니는 저명한 사회운동가였다. 인도 델리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후 영국으로 건너간 수치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철학, 정치, 경제를 공부했다. 1972년 영국 학자 마이클 애리스와 결혼했다. 수치는 와병 중인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1988년 귀국했다. 어머니는 그해 사망했다. 군부 독재 종식에 일생을 바치기로 한 수치는 NLD 사무총장이 되어 민주화 투쟁의 선봉에 섰다. 1989년에는 ‘국가를 위태롭게 했다’라는 이유로 투옥되었다. 1990년 총선에서 수치 여사는 출마하지 못했으나 그의 당은 4백85석의 의회에서 3백92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었다. 군부는 그러나 선거 결과를 무시하고 군정을 계속했다.

수치 여사는 1991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이 상을 준 것도 그녀의 석방을 위한 국제적인 압력의 하나였으나 군부에는 통하지 않았다. 1999년 남편이 영국에서 사망하자 군부는 장례식 참석을 허용했으나 그녀는 출국하지 않았다. 재입국이 금지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군부는 1989년부터 수치에 대한 연금과 석방을 되풀이했으며 지금의 연금 조치는 2003년 5월30일 취해졌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논평에서 수치 여사를 미얀마 군부의 ‘정치적 인질’로 보는 사람들이 많으나 긴 역사의 시각에서 보면 군부가 수치 여사의 인질이 된 형국이라고 비꼬았다. 군부의 고민은 수치를 석방할 수 없는 데 있다. 그렇다고 온갖 국제적 제재를 당하면서 그녀를 무기한 감금하는 것도 부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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