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라는 재앙덩어리 자리
  • 송진혁 (언론인) ()
  • 승인 2009.06.02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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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진혁 (언론인)
“평범하게 살았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기 2주일 전 고교 동창인 친구와 저녁을 같이한 자리에서 했다는 말이다. ‘이런 일’이란 물론 자신에게 쏠린 의혹과 검찰 조사를 말한 것이었다. 정말 그 말대로 대통령이 되지 않고 평범하게 살았던들 그가 63세의 나이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이라는 자리 때문에 죽고, 감옥에 가고, 패가망신하는 일이 반복해 일어났다. 대통령이 아니었던들 박정희가 부하의 총에 죽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대통령 부인이 아니었던들 육영수 여사가 그렇게 숨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전두환·노태우 역시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부패했고 감옥에 갔다. 김영삼·김대중도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그 아들들이 돈을 받아 감옥에 갔고, 그래서 회복 불능의 치욕을 겪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이승만 역시 대통령이었기에 만 리 객지에서 쓸쓸히 죽었고, 이기붕 일가 네 사람이 자살한 비극도 그의 ‘대통령’ 욕심에서 시작되었다. 지금 구속되어 있는 박연차, 정상문, 이광재 등의 예에서 보듯 ‘대통령’과의 인연 때문에 고통을 겪고 망한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다.

‘평범한 사람의 행복’이라는 꿈도 못 꾸게 ‘사람 죽이는’ 자리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결말은 영광과 존경이 아니라 비극과 오욕·패가망신이었다. 극단적으로 말해 ‘대통령’이란 사람을 죽이는 자리, 재앙 덩어리였다.

그런데도 불에 뛰어드는 부나비처럼 지금도 호시탐탐 이 불길한 자리를 노리는 사람들로 세상이 시끄럽다.

노 전 대통령도 젊었을 때에는 아마 평범한 사람의 행복을 동경했던 듯하다. <여보, 나 좀 도와줘>라는 그의 책을 보면, 그는 권양숙 여사와 결혼하면서 “시골에 별장 하나는 갖고 살자”라고 약속했다고 한다. 그러나 끝내 그 약속을 못 지켜 권여사가 불만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떠올려보면, 그가 정치인이 되고, 대통령이 된 후에도 마음 한 구석에 ‘평범한 사람의 행복’이라는 꿈을 늘 지니고 있었지 않나 생각된다. 그러나 사람이면 누구나 가질 만한 그런 소박한 꿈을 역대 대통령 중 누구도 이룰 수 없었다.

하기야 누구 말대로 노 전 대통령의 성격이 극단적이었던 것이 비극의 직접 원인이었을지 모른다. 그의 말은 늘 신랄하고 모질었고, 당돌하고 돌출적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산전수전 다 겪고 환갑 진갑 넘기고 나면 마음도 몸도 누그러지기 마련이다. 화가 나도 젊었을 때에는 1초 만에 나오던 반응이 10초, 1분이 걸려야 나오는 경우가 많다.

대신 한편으로 생각이 더 깊어지고 전에는 못 보던 여러 측면을 보게도 된다. 노 전 대통령도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유서에서 ‘누구도 원망 마라’ ‘삶과 죽음이 다 자연의 한 조각’이라고 한 것을 보면 그의 마음이 분명 한 경지 더 올라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왜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보다는 좀더 무겁고 생각 깊은 처신을 하지 못했을까. 더구나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갖게 되는 책임감을 왜 생각하지 않았을까. 가령 자기에 대한 의혹을 담담히 털어놓고 시인할 것은 시인하고 사과할 것은 사과한다면, 물론 그에 따른 한동안의 고통은 있겠지만, 노년의 노무현에게도 평생 원해온 평범한 사람의 행복이 올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제 와 이런 소리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추모 열풍이 전국을 휩쓴다고 해도, 검찰의 ‘공소권 없음’ 선언으로 모든 의혹이 미궁에 빠졌다고 해도 그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누구 조문은 되고 누구 조문은 안 된다는 편 가르기가 재연되고 가해 책임을 묻자는 소리까지 나오지만 그것이 그에게 무슨 뜻이 있는가.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마치 노무현과 우리나라 대통령 자리를 두고 한 말씀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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