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승부는 6회부터”‘허리’가 강해야 산다
  • 정철우 (이데일리 기자) ()
  • 승인 2009.06.0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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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불펜 싸움 갈수록 치열…중요 고비에서 승부 갈라

▲ SK 김원형 선수(왼쪽)는 조기에 투입되어 긴 이닝을 책임지고 있다. 오른쪽은 SK 이승호 선수. ⓒ연합뉴스

허리가 강해야 하는 것은 비단 남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야구에서도 허리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야구에서 허리란 중간 계투와 마무리 투수, 즉 불펜 투수진을 의미한다. 한국 프로야구 초창기만 해도 ‘선발 투수만 못한 투수들’이라며 천대받았지만 이제는 각 팀의 핵심 전력으로 우대받고 있다. 특히 투수 분업화가 이루어진 현대 야구에서 불펜 투수들의 역할은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6회 이후의 승부’. 어쩌면 야구의 진짜 승부가 펼쳐지는 순간에 마운드에 서 있는 투수가 바로 불펜 투수이기 때문이다.

중간 계투와 마무리 투수 운영에 ‘심혈’

2009 시즌 한국 프로야구도 SK와 두산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두 팀은 2007년 이후 3년째 하나뿐인 최고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불펜 야구가 있다.

 SK는 전형적인 불펜의 팀이다. 지난 2년간 최강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바로 불펜에서 나왔다. 가장 이상적인 조합을 가진 팀이기도 했다. 우타자가 강한 타순에 조웅천과 윤길현을 투입하고 좌타자가 강한 타순이나 팀에는 정우람·이승호·가득염을 투입해 불을 껐다. 여기에 선발 투수가 조기에 무너질 경우 투입되어 긴 이닝을 책임져주는 김원형까지 더해져 물샐 틈 없는 방어를 했다. 그러나 올 시즌 SK 특유의 불펜 야구는 지난해까지만큼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조웅천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고, 윤길현도 최근에야 가세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우람, 김원형의 부진이 더해지니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김성근 SK 감독은 2선발 요원인 채병룡을 불펜으로 전환시키는 강수로 위기를 돌파했다. 김감독의 승부수는 보기 좋게 들어맞으며 선두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SK가 지난 2년간 보여주었던 물샐 틈 없는 전력은 아니라는 평가도 함께 받고 있다. 물론 그 이유는 불펜의 힘이 떨어진 데 있다.

두산은 한층 나아진 전력을 뽐내고 있다. 주포 홍성흔이 빠졌음에도 여전히 강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불펜이 더욱 강해진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다. 두산은 지난해 불펜이 약점으로 지적되었다. 임태훈의 기량이 데뷔 첫해였던 2007년에 미치지 못했고, 확실한 마무리도 없었다. 그러나 올해는 달라졌다. 임태훈이 한결 업그레이드된 기량을 보여주며 기존의 이재우와 좋은 시너지 효과를 거두고 있다. 여기에 두 명의 새 얼굴이 더해졌다. 사이드암 고창성과 파이어볼러 이용찬이 그 주인공이다. 고창성은 2이닝 정도를 무난히 막아줄 수 있는 힘을 보여주며 두산 불펜에 ‘휴식’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이용찬은 마무리 투수 부재로 고심하던 두산의 고민을 해결해준 복덩이이다. 5월27일 현재 11세이브로 삼성 오승환(13세이브)에 이어 구원 부문 2위를 달리고 있다.

삼성은 27일 현재 20승25패로 5위에 처져 있다. 전체적인 타선의 부조화와 선발 투수들의 부진 탓에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삼성은 만만찮은 전력의 팀으로 평가받고 있다. 강한 불펜이 있기 때문이다. 권혁-정현욱-오승환으로 이어지는 승리 계투조는 여전히 막강하다. 삼성 불펜 역시 이전보다는 힘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상대적 우위는 여전하다. “삼성은 언제든 올라올 수 있다”라는 평가는 바로 그 불펜에서 나오고 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반면, 불펜이 약한 팀들은 매 경기를 어렵게 풀어갈 수밖에 없다. 한화와 롯데가 대표적인 예이다. 한화에는 토마스라는 확실한 마무리 투수가 있다. 그러나 토마스까지 가는 길이 너무도 멀고 험하다. 불펜진이 허약하기 때문이다. 양훈이 걸출한 투수로 성장해주었지만 다른 투수들의 지원을 받지 못해 거의 홀로 마운드를 책임지고 있다. 지난해 좋은 모습을 보였던 마정길의 부진이 치명적이다.

양훈에 대한 혹사 논쟁은 한화의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지난해에는 마정길이 양훈처럼 쉼없이 던져야 했기 때문이다. 한 시즌에 두 명 이상의 불펜 투수가 좋은 모습을 보인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실정이다.

▲ 불펜이 허약한 한화에서 혹사 논쟁을 일으킨 양훈 선수(왼쪽). 오른쪽은 두산의 이용찬 선수. ⓒ연합뉴스(왼쪽), 시사저널 박은숙(오른쪽)

롯데는 선발 야구를 추구하는 팀이다. 메이저리그 출신 로이스터 감독은 선발 투수에게 더 많은 이닝을 소화해줄 것을 요구하는 스타일이다. 지난해에는 이같은 방식이 잘 통했다. 그러나 선발 투수들이 부상과 부진으로 대거 전력에서 이탈하며 고민에 빠졌다. 손민한, 조정훈 등 가장 믿을 만한 투수들이 빠져나가며 불펜에는 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강영식 정도를 빼면 믿을 수 있는 불펜 투수가 없다는 점은 롯데 경기를 매번 마지막까지 마음 놓고 볼 수 없도록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다.

불펜 투수의 중요성은 해가 거듭될수록 더욱 강조되고 있다. 역설적으로 불펜의 중요성은 유약해진 선발 투수에서 출발한다.

선발 투구 수 늘면 불펜 투수들 ‘혹사’

한국 프로야구는 보통 5인 로테이션으로 선발 투수가 구성된다. 4일 휴식 후 등판하는 패턴이 일반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선발 투수의 한계 투구 수가 줄어들고 있다. 보통 100개 정도를 던지면 한계 투구 수를 이야기한다.

‘1백50구 완투’ 같은 이야기는 마치 오랜 옛날의 전설처럼 들리는 것이 현실이다. 1백20개 정도를 던진 투수가 있다면 다음 등판에서 부진한 투구를 하는 경우가 많다. 

투구수 100개는 가장 이상적이라는 이닝당 15개의 투구 수로도 6회 정도가 고작이다. 적어도 3이닝 이상 선발이 아닌 투수가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게다가 올 시즌은 타고투저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타자들을 압도하지 못하니 투수들의 투구 수는 자연스럽게 늘어나게 되고, 선발 투수의 늘어난 투구 수는 자연스럽게 불펜 투수들의 혹사로 이어진다. 팬들이 불펜 투수들에게 곧잘 ‘노예’라는 별명을 붙여주는 것은 결코 웃으며 넘길 수만은 없는 일이다.


‘별칭’을 보면 불펜의 특징 보인다

일본 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즈는 지난 2005년 ‘JFK’를 앞세워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최강의 승리 계투조 제프 윌리엄스-후지카와-쿠보타의 이름을 따온 작명. 최근 우리 팬들이 각 팀의 승리 계투조를 별칭으로 부르는 것에는 한신 타이거즈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승리 계투조를 별칭으로 부르는 것은 그들이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승리와 함께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그만큼 각별한 애정을 갖게 하기 때문이리라.

SK는 ‘벌떼 마운드’로 불린다. 다른 팀의 두 배에 이를 만큼 많은 수의 투수가 벌처럼 달려들어 상대를 녹다운시킨다. 그중 가장 마지막에 승리를 책임지는 정대현은 ‘여왕벌’이라며 특히 아낌을 받고 있다. 김성근 감독은 불펜 투수들이 줄부상으로 이탈하자 “벌통에 벌이 없다”라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두산 불펜은 ‘KILL’ 라인이다. 고창성-임태훈-이재우-이용찬으로 이어지는 막강 라인을 구축했다. ‘죽임’은 강력한 두산 불펜의 힘을 가장 잘 느끼게 하는 단어가 아닐 수 없다.

삼성은 ‘KO 라인’이 구축되었을 때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권오준과 오승환의 릴레이는 승리의 다른 표현이었다. 여기에 권혁이 가세하며 K‘KO’(삼진으로 KO시킨다)로 불리기도 했지만, 권오준이 팔꿈치 수술을 받은 탓에 현재 이 라인은 무너져 있다.

홀로 불펜을 책임져야 하는 불펜 투수들에게는 ‘노예’라는 별명이 붙는다. 지난해 오승환의 부진까지 더해지며 거의 매경기 등판했던 정현욱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통해 ‘국민 노예’로까지 신분이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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