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계자 구도, 김정운으로 기울었다
  •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통일학연구소 소장) (sisa@sisapress.com)
  • 승인 2009.06.02 17:5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북한, ‘해와 별 빛나는 혁명의 수뇌부’ 표현 통해 구축 작업 완료 시사

▲ 북한은 5월26일 평양체육관에서 당·정·군 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2차 핵실험 성공을 경축하는 평양시 군중대회를 개최했다. ⓒ연합뉴스

북한의 후계 구도 구축 작업이 내부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가속화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최근 조선로동당 전원회의를 거쳐 후계자를 이미 결정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가장 큰 변화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수뇌부에 대한 표현 방식이 바뀐 것이며, 다른 하나는 ‘1백50일 전투’의 개시이다.

4월7일자 로동신문 정론 ‘강성대국 대문을 두드렸다’에서는 ‘해와 별 빛나는 혁명의 수뇌부’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해’(태양)는 지도자를 의미하며 ‘별’(샛별, 광명성)은 후계자를 의미하는 방식으로 쓰여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혁명의 수뇌부’라는 표현은 1996년 2월 이후 자주 사용되어왔고, 이는 김일성 사망 이후 ‘수령’이라는 표현 대신 ‘지도집단’의 의미를 가지는 용어로 사용된 것이라 판단된다.

그러나 그 실체는 명확하지 않고, 매우 극소수가 아닐까 짐작하는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이에 대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의미하는 표현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수뇌부는 최소 1인 이상이 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혁명의 수뇌부가 후계자를 포함한 표현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 ‘해와 별 빛나는’이라는 수식어가 포함된 혁명의 수뇌부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로써 수뇌부는 최소 2인 이상이라는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게 되었다.

김정일도 후계자로 등장할 때 수뇌부에 추대된 적 있어

▲ 지난 1월23일의 김정일 위원장 모습. ⓒ뉴시스

30여 년 전인 1974년 김위원장이 당내의 후계자로 등장했던 시점에 대한 북한의 해석을 통해 보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좀더 쉽게 알 수 있다. 2008년판 <김정일동지략전>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1974년 2월13일 당 5기 8차 전원회의 마지막 날 ‘당의 수뇌부를 강화할 데 대한 의안이 상정’되었고, ‘전원회의에서는 김정일 동지를 우리 당 수뇌부에 추대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이를 두고 김정일이 후계자로 추대된 것이라고 정리하고 있다.

북한이 주장한 대로 혁명의 수뇌부가 김위원장을 일컫는다면, ‘해와 별 빛나는’ 혁명의 수뇌부는 후계자를 포함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그리고 과거와 비교해보면 최근 당 전원회의와 유사한 회의가 열려 ‘(가칭)혁명의 수뇌부를 강화할 데 대하여’를 논의했고, 이 자리에서 후계자가 추대되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즉, 올 2~3월께에 이러한 절차(전원회의 등)를 거쳐 후계자가 추대되고 4월 정론을 통해 새로운 용어가 등장한 것이다.

또한, 북한의 ‘후계자론’ 등을 보면, 후계자는 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것이 아니라 ‘전민중적 추대’의 방식을 따른다. 이는 지난 1월6~7일 전국적으로 진행된 군중대회를 그 유사한 형태로 추정할 수 있다. 김위원장이 지난해 12월24일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를 현지 지도하고 지도 사항을 관철하기 위해 이 기업소 노동자들의 궐기 모임에서 채택한 ‘전국 로동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호응해 전국적으로 군중대회가 진행된 것이다. 이러한 대회들을 후계자 추대와 연관지어 해석하는 이유는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의 위상이 독특하기 때문이다. 12월24일이라는 중대한 시기(1991년 최고사령관 취임일인 동시에 김위원장 생모의 생일)에 김위원장이 이곳을 현지 지도한 것도 관심을 가질만한 일이지만, 이에 앞서 11월6일자 로동신문 정론에서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의 현대화의 의미를 혁명의 계승과 동일시했고, 특히 ‘평균 나이 25세의 로동자들’이 이것을 완수했다고 강조한 점은 매우 독특하다. 그리고 25세는 공교롭게도 김위원장의 3남 김정운의 나이와 일치한다.

이상의 상황들을 종합하면 북한은 김정운 쪽으로 후계 방향을 잡고, 1월 초 군중적 추대를 진행했으며, 2~3월 중에 전원회의 등을 개최해 당내에서 후계자로 결정해 ‘혁명의 수뇌부’에 결합시킨 것으로 해석된다. 4월17일자 정론 <축포>에서도 미래를 위한 ‘장군 남아의 심장’을 언급하면서 ‘해와 별 빛나는 혁명의 수뇌부’를 역시 반복하고 있다. 

그간 북한에서는 ‘70일, 100일, 2백일 전투’ 등이 있었다. 이 중 처음으로 제기되었던 70일 전투는 1974년 10월 당시 ‘후계자’ 김정일의 주도로 ‘당 중앙위원회 및 정무원(현재의 내각) 책임일군들과 도당위원회 책임비서들의 협의회’에서 제기되었으며 김일성을 위한(심려를 덜어드리기 위한) 충성의 대전투(10월21일 개시)로 그 의미가 중대하다. 이듬해 김정일은 2월15일 자신의 생일 전날 ‘공화국 영웅’ 칭호를 수여받았다.

당 창건 기념일에 공식화할지도

▲ 후계자로 유력해진 김정일의 막내 아들 김정운의 11세 때 사진. ⓒ뉴시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지금의 1백50일 전투의 의미 역시 매우 중대하다고 볼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가설과 연관지어 볼 때, 2~3월께에 당내에서 후계자로 결정된 김정운에 의해 1백50일 전투가 진행되고 있으며, 10월 초에는 완료될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로써 올해 당 창건 64주년 기념일인 10월10일에 1백50일 전투의 성과를 공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의 당 창건 기념일은 여느 때와는 다른 양상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가능성은 김정운에 대한 ‘공화국 영웅’ 칭호 수여와 함께 적어도 북한 내부에서 지명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음으로 올해 7차 당 대회를 개최할 가능성까지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마도 29년 만에 당 대회가 개최된다면 과거 1980년 6차 당 대회에서와 같이 후계자를 당 정치국 위원, 비서국 비서, 중앙군사위원회의 위원으로 임명할 가능성이 제기될 수 있다. 다만, 당 대회를 개최하기 위해서는 그간의 성과를 제시해야 할 것이라는 점에서 올해 개최 가능성은 다소 유동적일 수도 있다.

당 대회가 개최될 경우, 첫날 당 총비서인 김정일을 통해 ‘사업총화보고’가 발표되어야 하는데 이는 지난 6차 당 대회 이후의 29년간의 성과를 집대성해야 한다. 최근 북한이 전력 사정이 다소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경제 현실은 여전히 밑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북한이 주장하듯이 ‘2012년 강성대국의 문을 열어 제치자’고 하는 3년 후까지 성과를 더 쌓아서 그때 당 대회를 개최하고 새로운 미래 비전을 제시할 가능성이 더 클 것으로 판단된다. 그럼에도 1백50일 전투가 종료되는 시점에 열리는 올해의 당 창건 기념 행사를 예의주시할 필요는 분명히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북한의 후계자 예측에서 다시 혼선이 빚어지는 양상이다. 김정운으로 방향을 좁혀가는 흐름이지만, 얼마 전 한 탈북자 인사를 통해 ‘김정철 후계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언급한 내용이라 성급한 판단은 이르지만, 그가 주장하는 대로 김정철이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에 올랐다면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그러나 근거가 없다. 지금까지의 근거로는 북한이 유독 ‘25세’를 강조했고, 그 나이가 김정운의 나이와 일치했다는 것 외에는 후계자 관련 정보에서 대개 첩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 위기는 북한 자체 시나리오에 따라 조성된 것

중요한 것은 정철, 정운 중 누가 후계자가 되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북한은 이미 3대에 걸친 1인 승계를 사실상 확정짓고 있다는 사실이며, 승계 과정 또는 승계 이후 한반도의 장래가 어떻게 되는가에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지금의 한반도에 고조되는 위기는 심상치 않다. 

지금 북한의 정치 체제는 당내 후계자라는 ‘알을 낳은’ 상황에 있다고 하겠다. 매우 민감한 상황이다. 그리고 후계 구도를 안정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북한 내부의 단결이 중요한 시점이다. 즉, 불협화음이 발생해서는 안 되는 매우 민감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이는 적어도 공식 후계자로 등장하는 ‘알이 부화하는’ 시점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된다. 내부의 단결을 촉구하는 방법으로는 대내적인 통제와 사상 교육 등이 있겠지만, 대외적인 위기를 활용하는 방법이 내부 결속에 매우 효과적일 것이라고 북한 지도부는 판단하고 있다.

주변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광명성 2호의 발사와 제2차 핵실험의 수순을 전개한 것은 합리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미온적인 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불만으로 로켓이 발사된 것이라는 ‘대미 메시지’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지만, 북한 역시 금융난에 허덕이는 오바마 정부 출범 초기에 무엇보다 대북 관계 개선에 앞장설 것이라는 기대를 갖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난해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 북한은 조용히 기다린 바 있다. 관계가 악화된 것은 올해 3월 말 ‘대북 선제공격 발언’ 등에서 촉발된 것이며, 그 이전의 북한의 입장은 기다림이었다.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북한과도 대화의 의지를 표명했고 적대적 행동을 취한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지금의 사태가 발생한 것은, 미국의 대북 정책과 무관하게 북한 자체 시나리오가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바로 후계 구도를 서둘러야 한다는 긴박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한반도에서의 긴장 고조 역시 마찬가지이다. 즉, 한반도에서의 긴장을 야기시킬 때 북한 내부는 단결이 불가피하며, 특히 군부의 위상은 매우 중대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욱이 후계 구도를 만들어가는 데 당과 군을 장악하고 후계자를 지지할 수 있도록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김정일 2세들의 어린 나이를 감안한다면 이들이 군을 어떻게 통제하고 장악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김정일의 최고의 관심 사안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북한은 군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다양한 방안들을 채택한 것으로 판단된다. 올 초 군 참모부가 방송에 등장하고, 국방위원회는 선출되자마자 로동신문에 사진을 게재했으며, 로켓발사와 핵실험을 주관한 부서 역시 군수공업부 등 군 관련 부처이다. 그리고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경우 북한 내에서의 군의 위상은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이러한 과정을 거쳐 군에 대한 대대적인 승진 인사가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단기 예측으로는 한반도 및 주변국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고자 하는 것이 북한의 의도로 판단된다. 그러나 북한 내부에서 후계자에 대한 위상이 확립된 이후에는 오히려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체제 안정을 도모하는 수순을 밟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한반도의 평화 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접근을 전개한다면 북한은 지금과 매우 다른 모습으로 대화 자리에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