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오래오래’ 춤추고 싶다
  • 심정민 (무용평론가·비평사학자) ()
  • 승인 2009.06.09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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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무용가 위한 지원 프로그램·기획 공연 늘어···30대 후반 무용가 위한 배려는 없어

ⓒ윤푸름 제공

달리는 본능으로 무장한 경주마가 갈기를 휘날리며 질주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감흥을 준다. 마찬가지로, 젊은 무용가가 스포트라이트 아래서 예술 표현 욕구를 강렬하게 발산하는 모습은 아름답지 않을 수 없다. 젊은 무용가들의 이러한 활약은 무용계의 미래를 한층 밝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최근 무용계에서 젊은 무용가들을 위해 크고 작은 공연을 기획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우리 무용계가 발전을 거듭하면서 조금씩 늘려왔던 젊은 무용가를 위한 장(場)은, 2000년대 들어 가히 폭발적이라 할 만큼 확대되고 있다. ‘평론가가 뽑은 젊은 무용가 초청공연’이나 ‘젊은 안무자 창작 공연’이 등단 창구로 권위를 확립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나 국제현대무용제(Modafe) 같은 페스티벌에서는 개성 있는 젊은 분출의 기회를 마련해놓고 있다. 근래 들어서는 ‘CJ영페스티벌’처럼 파릇하고 신선한 감각을 돋우는 자리도 생겨났다. 

10년 사이 대기업의 ‘메세나’ 활발해져

현재, 젊은 무용가를 위한 기획 공연은 약간은 과열 조짐까지 느껴질 정도로 활성화되어 있다.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제작 비용으로 인해 어깨가 무거운 무용가들이, 부담스러운 개인 공연보다는 여러 면에서 이점을 가진 기획 공연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평론가가 뽑은 젊은 무용가 초청 공연’과 ‘CJ영페스티벌’은 대기업 지원에 의해 성사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다른 젊은 무용수를 위한 기획 공연은 대부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나 서울문화재단 같은 국공립 지원 단체에서 지원받고 있다. 두 공연은 각각 LIG손해보험과 CJ문화재단의 메세나를 통해 실현되고 있는데, 여기서 메세나(Mecenat)란 기업이 축적한 이윤의 일부를 예술 후원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말한다. 메세나라는 이름은 예술을 적극 후원했던 로마의 한 정치가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1967년 미국에서 기업예술후원회가 발족되면서 본격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4년에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가 발족되었다.

최근 10년 사이 대기업들의 메세나가 활기를 띠었음에도 무용 분야에서 대기업의 전폭적인 지원이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LIG손해보험(회장 구자준)이 ‘평론가가 뽑은 젊은 무용가 초청 공연’을 12년째 협찬하고 있는 것은 무용계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이러한 메세나를 통해 80여 명의 젊은 무용가들이 한 단계 높이 도약할 수 있었고, 이들 중 상당수는 무용계에서 괄목할 만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LIG손해보험은 올해 3월 문화재단까지 공식 출범했다. 

‘CJ영페스티벌’은 불과 3회가 진행되었지만 젊은 무용가들 사이에서 한 번쯤 서고 싶은 무대로 급부상했다. 2006년에 설립된 CJ문화재단의 경우에는 올해 출범한 LIG문화재단의 선배뻘이 된다. CJ문화재단은 ‘CJ영페스티벌’을 통해 젊은 무용가의 공연 제작을 지원할 뿐만 하니라, 서울발레시어터 같은 순수 예술단체나 CJ발레교실 같은 문화예술 교육을 지원하기도 하며, 문화 저변 확대를 위해 무용 공연 관람료의 일부를 지원하기도 한다.

이렇듯 대기업들이 무용계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아픈 곳을 매만져주는 지원 방향을 채택하고 있음은 고무적이다.

경제적인 부가 생활을 풍요롭게 만들듯, 예술은 사회 구성원의 마음을 풍요롭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경제의 기둥인 대기업의 예술 후원은 예술뿐만 아니라 사회를 더욱 아름답게 조성하는 일이다. 무용계로 향하는 메세나가 더 많은 기업으로 확대되기를 기대해본다.

▲ ‘CJ영페스티벌’ 무대에서 젊은 무용가들의 공연이 호평을 받고 있다. ⓒCJ 문화재단 제공

미래 확신 주는 중·장기적 제도 뒷받침돼야

젊은 기획 공연들은 일차적으로 무용가들에게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그중 한두 명을 뽑아 한 번 더 기회를 주거나 일정액의 상금을 주기도 한다. 젊은 무용가들이 이와 같은 혜택을 주는 기획 공연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런 고무적인 혜택 이면에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할 점도 있다. 

우선, 30대 초·중반 무용가들에게 공급되는 기회는 풍부한 데 비해, 30대 후반에서 40대 전반까지의 무용가들에게 주어지는 상황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신진 무용가를 넘어서 중견 무용가로 올라서기 전까지, 이른바 ‘낀 세대’는 갑자기 공동화 현상의 한복판에 놓이게 된다. 이는 생각보다 심각해서, 한때 주목받았던 실력 있는 무용가들이 설 자리를 잃고 방황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한창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무용가들조차 이런 상황을 남의 일로만 치부할 수 없다. 현재 잘나간다고 해서 그것이 앞으로 활동의 보증수표는 아니며 3~4년 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는 예술가들은 장기적인 안목과 비전을 갖기 힘들다. 그리고 이것은 무용계의 토양을 부실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제는, 재능 있는 젊은 무용가들을 얼마나 많이 발굴할까에서 머무르지 말고 그들을 어떻게 성장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공론화가 절실하다. 검증된 젊은 무용가들을 지속적으로 성장시켜가는 ‘중·장기적인 피라미드 구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겠다.

  또 하나의 문제는, 기획 공연이 각각의 색깔을 선명히 드러내지 않은 채 그저 ‘잘하는’ 무용가들에게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이른바 ‘뜨고 있다’는 무용가들이 이곳저곳 겹치기 출연을 하면서 공연들을 더욱 비슷비슷하게 만들기도 한다. 젊은 기획 공연마다 고유한 방향을 확립하는 것은 시급하다.
이를테면 고도의 예술적 수준을 지향하거나,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타진해보거나,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성격을 추구하는 등의 특성화도 고려해볼 만하다. 최근의 춤은 독창성과 다양성과 개별성을 강조하고 있다. 단순히 ‘수준 높은 젊은 무용가를 발굴한다’는 대전제만으로는 이러한 추세에 발맞추기 힘들다. 젊은 무용가를 위한 공연들이 자체적으로 특성화를 이루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무용계에서 21세기는 무한 경쟁의 시대이다. 젊은 무용가들은 달리는 본능에 싸여 있는 경주마처럼 자기 표현의 질주를 거듭하고 있다. 이들에게 적절한 산소를 공급해 역동적으로 무용계의 미래를 이끌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중요하다. 따라서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대기업의 적극적인 지원이나 무용계 내부의 제도적 보완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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