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권력, 수도권으로 이동한다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9.06.09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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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이계 ‘7인 선언’ 직후 이상득 의원 ‘2선 후퇴’…대구·경북 중심 1기 세력 퇴조

▲ 한나라당 의원들이 6월4일 연찬회에서 ‘쇄신’과 관련한 동료 의원의 발언을 듣고 있다(왼쪽). 오른쪽은 지난 1월21일 특사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하고 돌아온 이상득 의원과 대화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시사저널 이종현(왼쪽), 뉴시스(오른쪽)

민심 변화에 따라 여권 내부가 소용돌이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직계 의원들의 ‘친위 쿠데타’와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의 ‘2선 후퇴’ 이후 지형도가 크게 변하고 있다. 권력 핵심부에서 일어나는 이런 변화는 ‘이명박 정권 1기’를 이끌어온 세력들의 퇴조와 맞물려 있다. 청와대와 정부의 주요 인사들도 대폭 물갈이되는 흐름으로 가고 있다. 6월4일 열린 연찬회에서 나타났듯 수도권 의원들의 대공세가 당과 청와대를 향하는 가운데 ‘이상득’으로 상징되었던 대구·경북 세력의 권력 독점 체제가 해체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촛불집회 이후 사회 각 분야에 걸쳐 강경 기조를 유지해온 이명박 정권의 국정 기조가 바뀔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친이명박계 소장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당 지도부와 청와대를 향해 펼쳐진 움직임은 긴박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린 지난 5월29일, 한나라당 정병국 의원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 의원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원희룡·정병국·주호영·정두언·남경필·권영세 의원이었다. 연락은 남의원이 했다. 이들은 노 전 대통령의 국민장 기간에 표출된 민심의 심각성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은 뒤 “민심을 수습하려면 대폭적인 쇄신이 있어야 한다”라는 데 뜻을 모았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판단한 이들은 즉시 한나라당 당사로 박희태 대표를 찾아갔다. 정병국·주호영 의원은 사정이 있어서 빠졌다.

당사에서는 20여 분간 이들 네 명의 의원과 박대표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의원들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셔야 한다. 당이 먼저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청와대에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 이런 상태로는 당도 청와대에 변화하라고 얘기할 자격이 없다”라며 직설적인 말을 토해냈다. 박대표는 “내가 다 책임지라는 말이냐. 대안이 있느냐. 혼자 결정할 수 없다”라며 시간을 달라고 했다.

다음 날인 5월30일 저녁,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서는 친이 직계 의원들이 모였다. 여의도연구소장을 맡은 진수희 의원이 “얘기 좀 하자”라고 해서 마련한 자리였다. 자연스럽게 전날과 비슷한 말들이 나왔다. 상황의 심각성을 공유하며 원희룡 의원이 이끄는 쇄신위원회, 개혁 성향 초선 의원 모임인 민본21, 친이 의원들의 모임인 함께 내일로, 권영세·진영 의원 등 원조 소장파 모임 등 개별 단위별로 당 안팎에 문제 인식을 확산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를 이루었다. 김용태 의원이 “남이 하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가자”라고 치고 나오면서 ‘친이 직계 의원들의 반란’은 급물살을 탔다.

▲ 이재오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 ⓒ시사저널 유장훈

원래 이날 계획대로라면 정두언·임해규·권택기·정태근·차명진·김용태·조문환 의원 등 7명의 ‘쇄신 촉구 선언’은 월요일인 6월1일 나왔어야 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서 하루 늦춰졌다. 한나라당의 한 친이 의원은 “청와대 정무 라인에서 ‘대통령에게 누가 될 수 있다. 기다려달라. 답을 주겠다’라고 했으나 답이 없어 다음 날 기자회견을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친이 직계 7인 의원들의 선언(7인 선언)’과 관련해 눈여겨보아야 할 풍경이 있다. 선언이 나오기 직전에 이상득 의원이 전방위로 움직였다는 것이 그 하나이다. ‘7인 선언’에 참여한 한 의원은 “(선언 같은) 그런 것 안 했으면 좋겠다. 식사하자’라는 등의 내용으로 이의원이 여러 의원들에게 전화를 돌렸다”라고 전했다. 이의원이 직감적으로 의원들의 집단 행동이 가시화하면 자신의 거취가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사전에 눈치 챘다는 반증이다.

수도권 민심 붙잡지 못한 위기감에서 나온 ‘친위 쿠데타’ 성격

다른 하나는 ‘이재오 배후설’이다. 이 전 의원이 배후에서 이들을 부추겨 박희태 대표를 퇴진시키고 조기 전당대회를 열어 당권을 장악하려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에 대해 이 전 의원의 한 핵심 측근은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7월 중순에 계획한 동북아 평화 번영과 통일 이후 한반도의 위상과 관련한 국제 세미나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쇄신’을 특정인과 연관 짓는 것 자체가 계파적인 시각이다. 당의 일은 국회의원들이 해결해야 한다며 행동을 조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 친이계 의원도 “‘이재오 배후설’은 너무 협소하고 계파적이다. 본질을 보아야 한다. 이 전 의원도 오해를 받을까 봐 (선언을) 말리는 입장이었다”라고 밝혔다.

언론에 ‘이재오 배후설’이 보도되자 일부 친이계 의원들은 이 전 의원에게 “진정성이 의심받고 있다. 조기 전당대회가 열려도 대표 경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혀달라”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전 의원이 “그럴 필요까지 있느냐”라고 해 현실화하지는 못했다. 친이 소장파의 핵심인 정두언 의원과 이 전 의원은 서로 깊이 신뢰하는 관계는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전 의원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전보다 훨씬 넓어진 것은 분명하다. 이상득 의원이 ‘2선 후퇴’하면서 일부일지라도 장막이 걷혔고 안상수 원내대표, 장광근 사무총장, 진수희 여의도연구소장 등이 그와 가까운 관계이기 때문이다.

‘7인 선언’을 비롯한 한나라당 소장파들의 움직임은 친위 쿠데타 성격이 있고 이대로 가면 죽도 밥도 안 된다는 위기의식에서 나온 행동이다. 이들은 대부분 수도권에 지역구를 두고 있다. 현 단계에서 국정에 일대 변화가 없다면 앞날을 기약하기 힘들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대통령은 한때 ‘수도권 대통령’이라는 소리까지 들었지만, 지금 수도권 민심은 한나라당을 떠났다. 서울 지역에 지역구를 둔 한 친이 의원은 6월3일 이렇게 말했다. “민심이 끓고 있다. 지금 계파를 따질 때가 아니다. 자칫하면 공멸한다. 이런 상태라면 10월 재·보선은 물론 내년 지방선거에서 참패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국정 기조의 변화와 당·정·청의 인적 쇄신이 불가피하다. 결기를 갖고 대응할 것이다. 기회가 많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들 소장파들은 주장이 벽에 부닥칠 경우 ‘정풍 운동’으로까지 나아간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래서일까. ‘7인 선언 직후’인 6월3일 이상득 의원은 전격적으로 ‘2선 후퇴’를 선언했다. 이에 대한 평가는 갈린다. 이의원의 한 측근은 “원하든 원치 않든 여러 현안에 끌려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결정을 내려야겠다는 생각을 전부터 하고 계셨다. 일본·중국과의 통상 외교나 캄보디아 자원 개발 등 외교통상통일위원의 역할에 주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 친이계 의원은 “진정성이 의심된다. 여전히 ‘이상득 인맥’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지 않느냐. 달라진 것이 없다”라고 말했다. 여권의 한 인사는 “의원직을 사퇴해야 논란이 정리될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주목되는 것은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여권 핵심부에서 진작부터 ‘이명박-이상득 갈등’이 흘러나왔다는 점이다. 여권의 한 인사는 “대통령은 그동안 정치는 형님이, 경제는 자신이 책임진다는 생각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난 1년간 정치 쪽에서 제대로 된 것이 없지 않느냐. 게다가 ‘이상득 사람’이 곳곳에 포진해 구설에 오르자 이게 아닌데 싶은 생각을 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 6월2일 정두언·정태근·권택기·김용태 의원 등 친이명박계 의원 7명이 당·정·청을 쇄신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진작부터 여권 핵심부에서 ‘이명박-이상득 갈등’ 흘러나와

한 친이계 의원에 따르면 형님과 동생의 관계에 이상이 생긴 결정적인 계기는 한나라당의 원내대표 경선이었다. 그는 “이의원은 황우려 원내대표-최경환 정책위의장, 임태희 사무총장 카드를 꿈꾼 것으로 안다. 청와대와 관계없이 이루어진 일이고, 이로 인해 대통령이 언짢아하며 관계가 급속도로 달라졌다”라고 전했다. 또 다른 여권의 핵심인사와 한 청와대 관계자도 이대통령과 이의원의 관계가 과거와 달라졌다는 것을 확인해주었다. 이상득 의원은 ‘2선 후퇴’와 관련해 기자들에게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대통령과 정치 문제를 놓고 상의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언급이다.

이처럼 이의원의 ‘2선 후퇴’는 당 안팎의 공격과 정국 전환을 모색하는 청와대의 의중이 맞물리면서 이루어졌다. 물론 진작부터 이의원 주변에서도 이런 건의를 하는 측근들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번 ‘2선 후퇴’는 ‘7인 선언’을 앞둔 이의원의 움직임에서 보여지듯 선제적이고 능동적인 것이 아니라 ‘상황에 몰려’ 이루어졌다. 이러한 변화는 필연적으로 ‘이상득 세력’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집권 이후 지금까지 여권의 주축 세력은 지역적으로는 대구·경북 세력, 계층적으로는 이상득-박희태-최시중으로 연결되는 원로 그룹이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원활하게 풀려가지 못했다. 특히 인사와 관련해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인사는 곧 이권과 연결된다는 측면에서 볼 때 “독식한다”라는 비판이 여권 내에서도 쏟아졌다. 당 출신 인사들이 소외되면서 선진국민연대 출신 인사들이 대거 요직에 진출하자 “누가 정권을 잡은 것이냐”라는 볼멘소리가 한나라당에 울렸다. 전략기획·정무에 능한 인사들은 별로 없고 충성파들이 청와대에 포진하면서 정국 운영은 계속 삐걱거렸다. ‘쓴소리’를 하는 인사가 없다는 말도 나왔다.

‘이상득 퇴진’은 여권에 대구·경북 중심의 1기 권력 체제가 붕괴되고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2기 체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에 따라 이대통령의 국정 기조 또한 변화를 강제받고 있는 형국이고 흐름이 그쪽으로 형성되고 있다.


총리·비서실장 교체 청와대가 이미 구상했다

지난 6월3일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은 한나라당 의원들을 뒤집어놓았다. 이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국면 전환용으로 인사를 하는 것은 3김 시대의 유산이다. 국민에게 이벤트나 쇼로 비칠 개각은 하지 않는 게 좋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잘못 알려졌다. 핵심이 ‘이벤트성’ ‘국면 전환용’에 있는데 마치 쇄신을 안 할 것처럼 알려졌다”라고 말했다.

‘쇄신’이 여권의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청와대는 이미 정부와 청와대의 진용 개편과 관련한 구상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시기는 아직 유동적이다. 이대통령의 최종 결심 여하에 따라 구도 또한 달라질 수 있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이대통령이 미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뒤 여름 휴가철에 들어가기 전인 6월 하순~7월 초·중순쯤 가시화하지 않겠느냐고 전망하는 시각이 많다.

여권의 한 인사는 “6월27일이면 지난해 촛불 정국 이후 내각과 청와대를 개편한 지 1년이 된다. 원래 청와대는 이에 맞춰 여권을 개편하려고 준비해왔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갑작스레 서거해 변화가 생겼기 때문에 시기와 폭이 달라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인사에 따르면 청와대는 경제수석과 외교안보수석을 제외한 거의 전 수석을 교체하는 방안을 구상했다. 경제 분야는 예상보다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고, 새 경제팀이 호흡을 잘 맞추고 있는 것이 높은 점수를 얻었다. 외교안보 쪽은 북핵 문제 등 현안이 중요하기 때문에 교체를 거론할 시점이 아니라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 정정길 비서실장은 이미 이대통령에게 “거취에 연연하지 않겠다”라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청와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전까지는 경제 분야에 정통한 인사를 차기 비서실장으로 발탁하려 했으나 국면이 바뀌면서 정무 분야에 밝은 인사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가고 있다. 정무·민정 쪽의 전면 교체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흐름이다. 이와 함께 청와대 행정관들의 이동도 있을 전망이다. 청와대는 이미 행정관들이 내부적으로 어떤 인사와의 관계 속에서 청와대에 들어왔는지,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등에 대한 조사·평가 작업을 마쳤다.

한승수 국무총리도 교체될 것으로 보인다. 3선 임기를 마치는 김진선 강원도지사의 마땅한 후임을 찾지 못하고 있는 여권은 한총리를 내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때 강원도지사 후보로 내보낼 가능성이 있다. 강원 출신인 그는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장을 맡은 적이 있다. 내각도 최소 중폭 이상 교체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경찰·국정원을 통해 각 부처 장관들에 대한 업무 능력과 내부 평가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해 점수 매기기 작업을 완료했다.

이처럼 이대통령은 이미 내각과 청와대 주요 인사들의 성적표를 받아들고 있다. 문제는 이대통령이 애초 구상대로 가느냐, 아니면 폭을 더 크게 가느냐, 아니면 더 줄여 현 기조를 유지하는 쪽으로 가느냐 하는 것이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애초보다 시기는 늦어질지 몰라도 폭은 더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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