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끌어내기 묘수 찾아 분주
  • 김동현 (Tong Kim·존스홉킨스 국제대학원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09.06.16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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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북 정책을 움직이는 사람들 / 보스워스·켐블·그랙슨의 역할 주목 클린턴 전 대통령 등 ‘대북 특사’로 거론

▲ 6월9일 서울 종묘공원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북한에 억류된 미국 여기자들과 개성공단 직원 유 아무개씨의 석방을 외치고 있다. ⓒEPA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아직도 대화와 협상을 통해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겠다는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번에 새로 채택된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안이 전례 없이 강경하고 엄격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제재 결의안이나 혹은 미국·한국·일본의 압력 수단이 북한의 핵무기나 미사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다만, 미국은 제재 압력이 북한을 협상의 테이블로 끌어내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중국이나 러시아도 제재 자체보다 북한을 다시 대화의 장으로 불러내겠다는 목적에 무게를 두고 있다.

워싱턴 현지의 보수 인사들은 북한이 어차피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협상으로는 북핵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유엔 제재와 병행해서 미국이 독자적으로 금융 제재 등을 강화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필요한 자금줄을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또 미국 정부가 북한을 테러지원 국가로 재지정하고, 삐라 살포 등 대북심리전을 본격화해 북한 주민들에게 김정일 정권에 대한 불신감을 조성하기를 원한다. 이들은 북한의 붕괴가 멀지 않았다는 희망적 예견을 갖고 있다.

물론 워싱턴에 김정일 체제를 지지하는 사람은 사실상 단 한 명도 없다. 다만, 대화를 주장해온 협상론자들의 입지가 북한의 최근 연이은 도발 행동으로 궁지에 몰린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은 지난 6년 동안 북·미 협상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들은 6자회담 파탄의 책임이 미국에도 있다고 본다. 구체적인 예로 2·13 합의 2단계(연변 시설의 핵불능화와 핵계획의 신고) 이행 과정에서 미국측이 신고 내용에 대한 의문 제기와 함께 검증 체계라는 새로운 조건을 들고 나오면서 ‘행동 대 행동’을 내세우며 합의된 대북 지원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 때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는 문제 역시 약속, 이행 보류, 삭제 이행 등 정책의 일관성이 결여되면서 북한의 감정을 악화시켰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북한은 오바마 행정부에 대해서 조심스런 기대를 가졌다가 부시 행정부와 차별화되지 않는 정책 기조에 실망한 나머지 도발 일변도의 행동으로 나왔다고 보고 있다.

6월10일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지명자 커트 켐블에 대한 상원 인사청문회가 개최되었다. 그가 곧 인준을 받으면 오바마 행정부의 한반도 팀 구성이 마무리된다. 켐블은 “북한이 다자적 맥락에서 협상의 테이블로 돌아온다면 미국은 협상에 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했고, 미국의 대북 정책 특별대표인 스티븐 보스워스도 6월9일 뉴욕 아시아소사이어티에서 “다자 협상의 일환으로 북한과 양자 대화를 할 용의가 있으며, 북한이 대화에 응하고 국제 사회에 합류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대북 정책의 주역이 될 이 두 사람의 발언은 제재 등의 강경책과 협상 추구라는 두 갈래 외교 정책을 병행하겠다는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 기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 빌 클린턴 전 대통령(왼쪽)과 앨 고어 전 부통령. ⓒ연합뉴스(왼쪽), AP연합(오른쪽)

문제는 한·미·일이 주축이 된 대북 강경책이나 대화 촉구만으로 과연 북한이 대화의 장에 나올 것이냐이다. 그래서 최근 워싱턴에서는 평양에 거물급 특사를 파견해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하고 있다. 앞으로도 오바마 정부의 대북 정책은 보스워스, 켐블 그리고 6자회담 대표를 맡고 있는 성김 등 3두 마차가 국무성 내에서 방향을 결정하고 상부에 건의하는 절차를 밟게 될 것 같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며칠 전 한국을 방문했던 제임스 스타인버그 부장관에게도 한반도 문제를 관여케 할 것으로 보인다. 스타인버그는 과거 클린턴 행정부에서 백악관 안보 부보좌관을 지냈다. 그는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를 미국측에 알리기 위해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보낸 황영탁 안보수석과 클린턴 대통령이 만나는 자리에 배석해 꼼꼼히 필기를 하기도 했다.

보스워스는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제네바 핵협정에 따른 경수로 건설을 위한 KEDO 사무총장과 주한 미국대사를 역임한,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 가장 서열이 높은 외교관 출신이다. 특히 그는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 때와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의 방북 당시 주한 미국대사로 있었기 때문에 북한에 대해서 객관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북한도 보스워스의 신중성과 인품을 인정할 정도이다. 이에 비하면 켐블은 실질적으로 일본통이라고 분류할 수 있다. 그는 클린턴 행정부 때 국방부 아·태지역 부차관보로 있으면서 미·일 동맹과 방위지침 작성에 기여한 바 있다. 국방부는 전통적으로 대북 정책에 강경한 자세를 보여왔으나, 켐블이 있을 당시에는 그다지 강경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다.

여기자 석방 교섭과 관련해서는 앨 고어 전 부통령 등 물망에

한편, 오바마 정부에서 새로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로 취임한 월리스 그랙슨은 해병대 중장 출신으로 퇴역하기 전 미군 합참 정책담당으로 북·미 양자 회담에도 여러 차례 참석한 적이 있다. 1999년 페리 특사의 평양 방문 때도 함께 간 적이 있어 북·미 문제를 잘 알고 있다. 대북 정책 조정과정에서 국방부는 백악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함께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NSC의 주 기능은 안보 부처들의 정책 건의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대통령에 보고하는 것이다. NSC가 독자적으로 대북 정책을 수립하는 경우는 예외에 속한다.

켐블 신임 차관보는 북한 문제보다 한·미 동맹 관계와 한반도 외의 다른 아시아 지역 문제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 설득력을 갖는다. 성김은 6자회담 미국 차석 대표로 경험을 쌓았고, 한국인 출신으로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고 있다는 이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북·미 양자 관계는 보스워스가 앞장서고 성김이 그를 도와 6자회담의 부활 가능성을 관련 국가들과 조율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또한, 한국과 과장 커트 통은 모든 정책 시안과 보고서 등을 작성하는 실무를 담당하고 있다. 

북한은 이미 보스워스 대표의 방북을 거절한 바 있다. 그래서 보스워스보다 훨씬 무게 있는 특급 인사를 보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우선 미국 정부가 공식으로 특사를 보내는 것보다는 초특급 인사가 민간인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하고 중재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1994년 1차 핵위기 때, 카터 전 대통령의 방문이 그랬다. 그런데 현재는 나서는 인사도 없고, 정부가 누구를 지정해서 그에게 임무를 맡길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 설사 정부가 맡긴다 해도, 이를 얼른 받아들일 특급 인사들도 보이지 않는다. 클린턴 전 대통령, 키신저,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 그밖의 인사들의 밀사 파견설은 모두 정부 외곽에서 돌고 있는 얘기들이다. 아마도 공식 특사가 간다면 보스워스가 될 것이다. 

북한 핵과 직접 관련이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북한 당국에 의해서 12년 노동형을 선고받은 미국 여기자 두 명의 석방을 교섭하기 위한 특사 파견 문제도 북한이 받아주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자 석방 문제와 관련해서 앨 고어 전 부통령이나 빌 리처드슨 멕시코 주지사의 특사 파견론은 북한의 수용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고어는 억류된 기자들이 속해 있는 Current TV의 사주이고, 빌 리처드슨은 과거에 북에 억류된 미국 시민을 석방시킨 전력이 있으며, 북한과의 친분도 상당하다. 그러나 북·미 관계가 지금처럼 좋지 않은 상황에서 단순한 인도적 차원의 여기자들의 석방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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