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나던 호남 기업 된서리 맞나
  • 김태형 (건설신문 기자) ()
  • 승인 2009.06.1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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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그룹, 인수·합병으로 몸집 불리다 유동성 위기 … 정부 구조조정 압력에 시달려

▲ 서울역 건너편의 대우빌딩. ⓒ연합뉴스

잇단 대형 인수·합병(M&A)을 성공시키며 단숨에 재계 10위권에 진입해 외형적으로 승승장구하는 듯이 보였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이하 금호그룹)이 휘청대고 있다. 그룹의 덩치를 잔뜩 키워놓았던 M&A가 3년여 만에 유동성의 씨를 말리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기 때문이다.

금호그룹은 전방위적인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하나는 정부가 공격적으로 추진 중인 대기업 구조조정이고, 다른 하나는 3년 전 대우건설 인수의 일등 공신인 재무적 투자자(FI)들과 약속했던 ‘풋옵션’이다. 풋옵션은 미래에 자산을 되팔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문제는 이 두 가지가 동시에 터졌다는 것이다.

지난 6월 초 정부는 대기업의 부실 가능성을 막겠다며 채권은행들을 앞세워 유동성 악화가 우려되는 9개 대기업 그룹과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체결했다. 큰 덩치에 비해 유동성이 나빴던 금호그룹이 구조조정 1순위로 떠올랐다. 그 중심에는 대우건설 인수조건이었던 풋옵션이 있다. 시간은 금호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했던 지난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금호그룹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무려 6조4천2백25억원에 대우건설을 인수했다. 인수전 당시 시장에서는 금호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할 만한 자금 동원력이 없을 것으로 보았다. 실제로 금호그룹은 인수 자금이 없었고, 국민은행 등 재무적 투자자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투자자들은 인수 자금의 절반이 넘는 3조5천억원어치의 대우건설 지분을 대신 사주었고, 금호그룹은 그 조건으로 3년간 연 9% 수익률을 보장해주기로 했다.

올 연말까지 대우건설 주가가 3만1천5백원을 밑돌면 금호그룹이 그 차액을 보상해주어야 할 의무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금호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금호산업이 짊어졌다. 대우건설의 12일 기준가는 1만2천8백원으로 3만1천5백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금호그룹으로서는 최소 2조원이 넘는 손실을 떠안게 된 것이다.

대우건설 인수 자금의 절반이 빚

이런 상황에서 금호그룹의 주 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산업은행은 금호측에 대우건설을 산업은행이 만든 사모펀드(PEF)에 매각하고, 비주력 계열사도 처분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금호그룹은 이를 거부했다. 결국, 양측은 6월 초 타협안으로 7월 말까지 대우건설 풋옵션 인수를 위한 새로운 재무적 투자자를 물색하고, 이것이 실패할 경우 대우건설을 산업은행 사모펀드에 팔기로 했다. 2개월의 시간을 번 셈이다.

그렇다면 금호그룹은 왜 이렇게 대우건설에 집착할까. 당장은 채권단의 요구대로 대우건설을 재매각할 경우 발생할 거액의 매각손 때문이고, 더 큰 이유는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금호산업이 자본 잠식에 빠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금호산업의 자본 잠식은 자칫 그룹 전체 경영권과도 관련된 일이다.

금호그룹의 재정 상황이 얼마나 나쁘기에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금호그룹이 대우건설을 시작으로 M&A를 본격화하면서 그룹 자산은 약 13조원에서 현재 37조원으로 크게 늘었다. 계열사도 23개에서 48개로 2배 이상 늘어났다.

문제는 이에 비례해 부채가 급증했다는 점이다. 현재 금호그룹의 금융권 여신만 18조원이 넘는다. 부채비율도 공정위의 단순합산 방식으로 보면 2007년 1백82.5%에서 지난해 1백69.9%로 줄었지만, 경제개혁연대가 발표한 연결합산 부채비율은 같은 기간 4백50.9%에서 4백92.4%로 41.6%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2개월 내에 금호그룹이 제3의 재무적 투자자를 못 찾을 경우 어떻게 될까. 산업은행은 대우건설을 시가에 경영권 프리미엄 20~30%를 얹어서 PEF로 매입한 뒤, 3~5년 후 금호그룹에 재매각한다는 계획이다. 금호그룹의 처지에서는 산업은행에 계열사를 파는 것이 아니라 3~5년간 맡기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논란이 된 것이 바로 대우건설의 경영권 문제이다. 일부에서 금호그룹이 대우건설 지분을 산업은행 PEF에 넘기더라도 경영권은 금호그룹에 맡길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발끈했다. 산업은행 고위 관계자는 “그런 내용은 제안한 적도 없고, 현재 고려하지도 않고 있다”라고 잘라말했다.

대우건설 재매각설이 지속적으로 흘러나오면서 건설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대건설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시공능력평가 1위였던 대우건설이 매각설에 휘말리는 등 어수선한 가운데 올해는 1위 자리를 뺏길 가능성이 크다. 대우건설이 산업은행 PEF에 재매각되든, 금호그룹에 남든 그로 인한손실 부분을 어부지리로 다른 대형사들이 챙길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형 건설사의 한임원은 “국내 대표 건설사가 3년 만에 또 매각된다는 것 자체가 같은 건설인으로서 안타까운 일이다”라고 토로했다.

금호그룹이 이런 상황에 놓인 것은 현 정부의 지난 10년에 대한 보복성 조치라는 시각도 있다.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호남 기업’ 인 금호그룹은 새로운 차입 방법으로 볼 수 있는 재무적 투자자를 통한인수·합병을 연거푸 성공시켰다. 이를 통해 몸집 불리기에 성공했지만 갑자기 찾아온 금융 위기로 유동성에 문제가 생겼고, 이를 현 정부가 ‘원칙’대로 처리하면서 금호그룹이 다시 위기에 몰렸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금융 당국의 수장들은 연일 강력한 구조조정을 외치고 있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요즘 경제지표가 안정되는 모습을 띠고 있는데 긴장의 고삐를 늦춰서는 안 된다. 지금이야말로 금융시장 안정과 경제 회복의 기틀을 공고히 하기 위해 기업 구조조정을 확실히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금호그룹은 이번 구조조정에 대해 끝까지 ‘저항’했던 유일한 그룹이다.

새로운 투자자 유치하기도 어려울 듯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은 결국, 금호그룹이 대우건설에 이어 대한통운까지 무리하게 M&A를 추진하면서 이같은 상황을 스스로 자초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금호그룹은 아시아나항공과 대우건설 등을 양대 축으로 내세워 지분 51.32%를 확보해 대한통운을 인수했다. 대우건설의 지분을 빼면 지분이 27%대에 불과하다. 대우건설 경영권을 내놓으면 대한통운 경영권도 흔들려 결국, 지난 10년간 금호가 인수·합병을 통해 이룬 몸 불리기의 성과가 무위로 돌아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렇다면 대우건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시각이 다소 엇갈리지만 금호그룹이 아무리 부담이 크더라도 대우건설을 재매각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금호그룹이 새로운 투자자를 유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만은 않다. 풋옵션을 새로운 투자자에게 넘기더라도 결국, 이번과 동일한 문제가 발생할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다시 대우건설의 주가가 3만원 수준까지 올라가지 않는다면 2조~3조원가량의 자금이 필요하게 된다.

하지만 금호그룹은 좀처럼 포기하지 않을 태세이다. 금호생명 등 계열사 지분 매각을 통해 총 8천억원을 마련하고, 일산대교 등 사회간접자본(SOC) 주식을 매각해 1천5백억원, 한국CES·대한송유관공사 등 투자 유가증권 매각으로 1천억원, 대불단지 등 기타 자산 매각으로 1천억원 등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모두 합치면 약 1조1천5백억원이다. 금호그룹 관계자는 “대우건설 포기는 없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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