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GM대우 죽어야 사는가
  • 이철현 경제전문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09.06.16 18:1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기 살길 바쁜 GM 본사는 중국 상하이자동차에 관심 쌍용자동차와 합쳐 독자 생존하는 방안이 더 현실성 있어

▲ 라세티 프리미어 호주판 홀덴 크루즈.

한국 경제에 GM대우오토테크놀로지(GM대우차)는 계륵이다. 살리자니 회생하리라는 확신이 없고, 그냥 두자니 국민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크다. 미국 자동차업체 GM이 지난 6월1일 파산하면서 GM대우차는 뉴GM으로 편입되었지만, 추가 자금 지원 없이는 살길이 막막하다. GM이 미국 정부로부터 지원받기로 한 1백94억 달러 가운데 GM대우차에게 돌아갈 몫은 없다. 미국 미시건 주 디트로이트에 소재한 GM 본사가 쓰기에도 부족한 형편이다.

GM대우차는 2대 주주이자 채권자인 산업은행에 회생에 필요한 자금 1조원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한국 지식경제부는 ‘특정 업체만 지원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 어렵다’는 이유로 자금 지원 요청을 일단 거절했다. 그렇다고 매출액이 12조원이나 되는 국내 2위 자동차업체의 예고된 파국을 두고 볼 수는 없는 형편이다. GM대우차 임직원 수만 1만7천명이고 딸린 식구를 합치면 5만명이 넘는다. 협력업체까지 더하면 파장은 일파만파로 퍼진다.

매출액 12조원에 임직원 수만 1만7천명

산업은행은 자금 지원 조건으로 ‘GM대우차가 친환경차 개발 역량을 갖추고 하이브리드차나 전기차 양산 기지가 될 것’을 GM 본사에 요구했다. 자동차 산업 현황을 보면 친환경차 기술이 없는 업체는 지속 가능이라는 기업의 본질적 속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지금 자동차 산업은 화석연료를 쓰는 내연기관에서 수소차나 전기차 같은 친환경차로 바뀌는 전환기에 와 있기 때문이다. GM 그룹 내에서 GM대우차가 친환경차를 개발할 여지는 없다. GM대우차가 갖고 있는 친환경차 관련 계획이라고는 GM이 2011년 양산할 전기자동차 ‘볼트’의 양산 모델 10대를 국내에서 시험 운영하는 것밖에 없다. 볼트는 가정에서 전원을 연결하면 충전이 가능해 실용화에 가장 근접한 전기차로 평가받고 있다. 볼트 개발이나 양산에 GM대우차가 끼어들 틈이 없다. GM대우차는 경차와 소형차 생산 기지에 불과한 탓이다.

GM은 ‘글로벌 아키텍처 개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아키텍처는 자동차가 구동할 수 있는 기본 단위를 일컫는다. GM대우차 내부 문건에 따르면, GM은 경차·소형차·준중형차·중형차·후륜구동차·고급승용차·스포츠유틸리티차량·트럭으로 나누고 이 가운데 경차와 소형차 양산만 GM대우차에게 맡겼다. 준중형 승용차 라세티 프리미어는 GM유럽이 주축이 되어 개발했다. GM대우차는 디자인과 엔지니어링 일부분만 관여했을 뿐이다. GM대우차가 개발하고 있는 모델은 경차 마티즈 후속 모델에 불과하다. 경차 개발 생산이 자동차업체의 지속 가능한 사업 모델이 될 수는 없다.

▲ GM대우가 준중형차 라세티 프리미어(수출명: 시보레 크루즈)의 수출을 시작했다. ⓒ연합뉴스

또한, 경차와 소형차 시장마저도 GM대우차가 올곧이 지킬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중국 자동차업체들이 경쟁자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 업체들은 소형차 개발에 치중하고 있다. 중·대형차 시장은 외국 업체에게 양보하더라도 2~3년 안에 세계 소형차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심산이다. 개발 기술과 제품 경쟁력이 떨어지는 중국 자동차업체에게 다른 대안이 없다. 중국 자동차업체인 체리자동차는 앞으로 2년 동안 36개 모델을 출시할 계획이다. 지일리 사는 올해 25% 성장을 목표로 삼고 있다. 2015년까지 판매량을 3배 늘려 70만대 양산 체제를 갖출 것이라고 장담한다.

따라서 GM대우차가 중국 업체들을 상대로 경쟁 우위를 오랫동안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경차와 소형차 개발 내지 양산 기술은 다른 차종과 비교해 따라잡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더욱이 생산 원가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GM대우차는 중국 업체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중국 업체들의 생산 원가가 낮다 보니 가격 경쟁력에서도 GM대우차는 열세를 면치 못한다. 

▲ 산업은행 건물. ⓒ시사저널 유장훈

중국과의 경쟁에서도 이길 수 없어

GM은 GM대우차를 아시아·태평양 지역 중심 기지로 삼을 이유가 없다. 이제 GM에게 중국은 더 이상 거대 잠재 시장이 아니다. 이미 황금알을 낳아주는, 실현된 시장이다. GM은 올해 미국 시장에서 23% 매출 하락을 예상하지만 중국 시장에서는 10% 늘어나리라 기대한다. 그런 이유에서 GM은 아시아·태평양 센터를 중국으로 정했다. 중국 내 GM 파트너는 상하이오토모티브인더스트리(상하이자동차)이다. 상하이자동차는 GM과 손잡고 GM 주력 모델 시보레, 뷰익, 캐딜락 양산 기지를 세우고 있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상하이자동차가 5년 안에 생산 대수를 10배로 늘리고 판매량을 30만대로 끌어올릴 것으로 평가한다. GM 브랜드와 양산 기술에다 상하이자동차의 생산 원가가 결합한 중국산 자동차는 한국 자동차와 치열하게 경쟁할 것으로 예상된다.

닉 라일리 GM 아시아퍼시픽 사장은 “GM은 중국에서 신제품 개발 투자를 늘려 공장을 신설하고 첨단 기술 제품의 양산 체제까지 갖추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GM대우차의 자력 갱생이 어렵다면 GM이라는 거대 우산 아래 편입되어 제한된 역할이나마 부여받아야 생존할 수 있다. 이 가정마저 GM 회생이라는 전제가 충족되어야 한다. GM은 그동안 자동차업체 지존으로 군림하면서 누렸던 프리미엄을 잃어버렸다. 파산으로 브랜드 신뢰도는 바닥에 떨어졌다. 미국 소비자가 GM이라는 브랜드에 갖는 충성도는 추억이 되고 있다. 미국 자동차 주요 소비 집단은 21~33세 인구 7천3백만명이다.

GM은 앞으로 미국산 자동차를 사야 한다는 의무감이 없는 Y세대를 상대로 마케팅 활동을 벌어야 한다. 회사 평판 조사 기관인 레퓨테이션인스티튜트가 전세계 인구 7만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조사 대상 6백개 기업 가운데 자동차업체로서 GM보다 평판이 나쁜 곳은 뇌사 상태와 다름없는 일본 미쯔비시자동차와 러시아 아브토바즈밖에 없었다. 지난해 조사에서 GM은 마즈다, 기아차, 포드, 피아트 같은 업체들을 제쳤다. 

땅에 떨어진 GM 브랜드로는 회생 어려워

▲ 그리말디 GM대우 사장(왼쪽). 휘태커 GM대우 신임 회장(오른쪽). ⓒEPA

자동차시장 환경도 GM에게 불리하다. GM의 조기 회생을 기대하기 어렵게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시장 침체이다. 지난 일년 동안 전세계 자동차시장은 30% 축소되었다. 전세계 30개 자동차업체들이 갑자기 줄어든 파이를 차지하기 위해 사활을 건 다툼을 벌이고 있다. 전세계 자동차업체는 지금 자동차 9천만대를 생산하고 있으나 팔리는 차는 5천5백만대에 불과하다. 생산 대수 40%가 팔리지 않고 창고에 쌓이다 보니 운영 자금이 부족하다.

GM이 시장 점유율 20%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 시장은 선혈이 낭자한 레드오션이 되었다. 시장조사 기관 JD파워스앤어소시에이츠의 조사에 따르면, 전세계 자동차업체들은 해마다 미국 시장에서 신차 모델 60종을 출시한다. 기아자동차와 폴크스바겐이 미국에 새 공장을 짓고 있다. 도요타자동차는 미시시피에 프리우스하이브리드차 양산 공장을 짓고 있다. 이 공장은 경기 변화에 맞춰 언제든지 다른 차종을 양산할 수 있다. 중국 업체와 인도 타타자동차는 GM 브랜드인 새턴의 유통망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인도 자동차업체 마힌드라앤마힌드라 사는 2010년 미국 시장에 자동차를 판매할 계획이다. 새턴 유통망을 접수한 업체는 미국 시장을 공략할 탄탄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게 된다. GM은 자기가 구축한 판매망과 혼전을 벌이는 상황까지 맞이할 수 있다. 

▲ 미국 연방정부로부터 막대한 구제금융을 받고도 파산 신청을 낸 GM의 디트로이트 본사. ⓒAP

자동차 산업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GM대우차와 쌍용차를 합쳐 독자 생존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회생 여부가 불확실한 GM 안에서 부가가치가 낮은 경차나 소형차 생산 기지에 불과한 업체로 GM대우차를 두느니 시너지 효과가 있는 업체들을 묶자는 것이다. 정부나 산업은행이 검토하는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이다. 이 시나리오가 완성되려면 GM대우차를 전략적으로 파산시키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GM이 파산해 살길을 마련했듯이 GM대우차도 죽어야 살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