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만나는 근현대 미술 대가들
  • 바젤·정준모 (문화정책·미술비평) ()
  • 승인 2009.06.2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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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미술시장의 ‘큰 장’ 바젤 아트페어 현지 취재

▲ 맨위 작품은 무라카미 다카시와 파렐 윌리암스의 . 아래쪽은 바젤 아트페어가 열리는 바젤 메세 입구. ⓒ정준모 제공

경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어느 해와 마찬가지로 바젤은 뜨거웠다. 독일과 프랑스, 스위스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도시 바젤에서 열린 바젤 아트페어(Art Basel, 6월10~14일)는 올해도 여전히 성황을 이루었다. 스위스의 바이엘러 화랑 등이 주축이 되어 지난 1970년 10개 국가 90여 개의 갤러리로 시작된 바젤 아트페어는 40회를 거듭하면서 이제 33개국 3백여 개 화랑에서 2천5백여 명의 작가들이 참여하는 세계 미술시장의 최대 행사로 성장했다. 페어 기간 중 4~5개의 위성 아트페어가 열릴 정도이면 그 성장세를 짐작할 만하다. 물론 이런 성장의 배경에는 이 도시가 국경을 접해 많은 나라에서 오고 가기 쉬운 사통팔달의 교통의 요지이고, 도시를 횡단하는 라인 강을 이용한 물류의 중심지라는 지리적 이점이 깔려 있다. 또, 유럽 최초의 시립미술관인 바젤 미술관(Kunstmuseum Basel)을 세울 정도로 미술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남다른 이유도 있다. 여기에 화학과 제약을 기반으로 하는 기업들의 자기 도시에 대한 헌신도 성장 비결로 작용했다. 장 팅겔리(Jean Tinguely) 미술관을 건립한 라 로쉬(La Roche)나 바이엘러 미술관을 설립한 바이엘러(Ernst Beyeler), 노바티스(Novartis), 바젤 아트페어를 후원하는 세계 최고의 은행 UBS 같은 후원자가 그렇다. 게다가 세계 굴지의 콜렉터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 마케팅 능력과 그들과의 연을 이어가는 남다른 실력, 그리고 바젤과 취리히에 기반을 둔 세계적인 은행 UBS를 통해 작품을 사고파는 대금 결제 시스템 등 3박자가 맞아떨어진 때문이다.

2천5백여 작가 참여…불경기는 없다?

올해에도 세계 각지에서 베니스 비엔날레를 보고 바젤로 몰려든 사람들의 숫자는 여전히 많았다. 다만, 두드러진 현상은 호기심으로 미술시장을 방문했던 평범하고 작은 규모의 콜렉터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점이다. 물론 그들 중 몇몇은 향후 미술시장을 전망해보고자 가격 동향을 알아보고 나름대로 분석하기 위해 작은 수첩에 깨알 같은 글씨로 화상들로부터 얻은 작품 가격을 적기 바빴지만 선뜻 ‘그 작품 주시오’라고 나서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달라지지 않은 것은 역시 세계각지에서 몰려든 큰손들의 쇼핑백이었다. 아트페어 전야제에 참석한 독일의 프레드리히 그리스티안 플릭, 스위스 제약업계의 상징 마자 호프만, 러시아의 로만 아브라모비치,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백만장자 엘리 브로드, 뉴욕의 금융인 윌버 로스 부부와 스테판 슈왈츠만 등은 비서를 대동하고 큰 화랑의 부스를 종횡무진했다. 역시 미술시장은 경기와 상관없는 1% 상류층을 위한 리그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명확하게 새겨주는 자리였다. 

바젤 컨벤션센터 2층 한쪽에 전시되어 있는 무라카미 다카시와 파렐 윌리암스의 공동 작품 ‘단순한 것(The Simple Things)’은 ‘1% 마케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있는 이 작품은 전시 효과를 높이기 위해 어두운 곳에서 빛을 발하는 부분 조명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14금, 18금, 순금 등에다 2만6천개의 다이아몬드와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 등을 박아넣어 만든 케첩 병, 펩시콜라 깡통, 컵케이크, 콘돔, 도리토스 가방 그리고 존슨 앤 존슨의 베이비로션 병 등 하찮은 일상 용품의 미니어처 등은 악동인 작가 무라카미의 상징적인 캐릭터 속에 녹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현대미술이 부호들의 부를 과시하는 일상 용품이 되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큰손들은 고가의 미술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화가와 조각가들의 작품을 불경기라서 아무도 감히 사들일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이번 기회에 마련하려는 듯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작품의 거래량은 예년보다 줄어들었다. 하지만 전체 거래액은 오히려 능가한 것으로 보인다. 국제적인 경제 상황이 나빠졌을 때 미술시장에서는 이런 격언이 통한다. “불경기에는 비싼 것이 팔린다”라는 것이다.

젊은 작가들의 재기발랄한 작품이나 떠오르는 신예들의 작품은 주춤하고 데미안 허스트를 중심으로 한 사치(Shacci) 군단과 무라카미의 카이카이 그룹 등 연일 상종가를 갱신하던 스타들도 부진했다. 반면, 그들 자리를 20세기 미술사의 중심에 섰던 피카소, 에른스트, 쟈코메티, 헨리무어 등 현대미술의 고전과 앤디 워홀과 도날드 저드, 칼 안드레, 부르스 노만 등 1970년대 스타들이 메웠다. 이들의 작품 한 점은 젊은 작가들의 작품 10여 점을 살 수 있는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불경기에는 블루칩’이라는 미술시장의 원칙이 그대로 드러나면서 역시 세계 경제가 썩 좋지 않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주었다.

하지만 젊은 작가들의 가능성만은 높이 살 만했다. 같은 시기에 바로 옆에서 열리고 있는 위성 아트페어 <디자인 마이애미/바젤>은 디자인을 미술시장의 영역으로 편입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또 <리스트 09> (Liste 09)와 <볼타5>(Volta 5)와 <스코프 바젤>(Scope Basel) 등은 바로 다음 세대의 작가들을 키워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바젤 아트페어의 한계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너무 상업적이라는 지적을 피할 요량으로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한다는 명분을 세웠던 <언리미티드(Unli mited)>전은 결국, 바젤 아트페어를 주관하는 조직위에 속한 화랑들의 차세대 작가 견본시가 되어버렸다. 토론회나 세미나 등을 통해 현대미술의 새로운 담론을 생산해보겠다고 하지만 그 바탕이 ‘시장’이라는 한계 때문에 성과는 거의 없는 듯했다. 아트페어가 본연의 목적에 더 충실해졌으면 하는 생각은 매년 바젤을 찾을 때마다 더욱 강하게 갖게 된다.

아트만 있고 장은 없는 아트페어에 본보기

▲ 길이가 11m에 달하는 앤디 워홀의 작품을 내건 비숍버거 갤러리(위). ⓒ정준모 제공

한편, 불황을 모르는 바젤 아트페어를 보면서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우리네 아트페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원칙적으로 아트페어란 컨벤션 사업으로 작가들이 아니라 콜렉터들의 축제이자 장터이다. 바젤 아트페어가 ‘아트보다 장이 우선’이라면 우리네 아트페어는 ‘장은 없고 아트만 있는’ 형국이다. 물론 질과 내용은 차치하고 말이다. 그리고 이런 아트페어에 지방자치단체는 국민의 세금을 지원해준다. 장사하겠다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지원해주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욱 웃기는 일은 지자체에서 열리는 아트페어의 대부분이 직접 작품을 만드는 작가들의 연합체가 주최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트페어를 주최하는 그들과 그것을 지원하는 지자체의 공무원들이 과연 ‘아트페어’의 개념이나 원칙은 제대로 알고 있을까. ‘장’ 없는 아트페어란 만두소 없는 만두나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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