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아군이냐 적군이냐
  • 소준섭 (국제관계학 박사) ()
  • 승인 2009.06.23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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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동반자 관계 수립해놓고도 중국의 속내는 ‘아리송’

ⓒ로이터

세계의 눈이 예카테린부르크에 쏠렸다. 러시아 제3의 도시인 예카테린부르크는 유라시아 대륙의 분계선이 관통하는 도시이다. 6월16일 이곳에서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담이 폐막됨과 동시에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등 ‘브릭스(BRICs)’ 4개국 정상회담이 잇달아 열렸다. 이 두 회담의 주역은 중국과 러시아였다.

홍콩의 ‘아시아타임스’는 올해로 창립 8년째를 맞는 상하이협력기구를 중국과 러시아가 만든 ‘아이’라고 비유하면서 현재 이 ‘아이’가  ‘장성한 성인’으로 변모했다고 묘사했다. 상하이협력기구는 최근의 아프가니스탄 사태와 금융 위기라는 조건과 맞물려 단순한 지역 협력기구의 차원을 벗어나 그 외연을 착실하게 키우고 있다. 실제 이번 상하이협력기구 회의는 지역 안보가 주요 의제였던 기존의 모습과 달리 경제 문제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상하이협력기구가 이처럼 힘을 과시하는 것은 러시아와 중국의 국력 때문이다.

현재 브릭스 4개국의 국토 면적은 전세계 면적의 25%를 차지한다. 인구는 세계 인구의 42%에 해당하며,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에 의하면 2006년부터 2008년까지 4개국 평균 경제성장률은 10.7%에 이를 정도로 막강한 내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의 국내총생산(GDP)을 합하면 2008년 기준으로 세계 경제의 약 15%에 이르고, 교역량의 측면에서 보면 12.8%에 해당한다.

세계에너지금융연구원 집행위원장이며 중국 금융연구원 원장인 허스훙은 “이제 IMF, 세계무역기구(WTO), 세계은행 등은 쇠락의 길로 접어든 미국의 패권적 지위의 유제(遺制)로 간주되고 있다. 미국은 다시는 경제력에 의해 세계를 지배할 수 없게 되었다. 단지 군사상으로만 세계를 지배할 뿐이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현재의 국제 금융 위기가 아직 바닥을 보이지 않는 조건에서 브릭스 4국의 협력은 국제 사회 공동의 기대와 이익에 부합하며 세계 경제를 위기로부터 탈출시킬 엔진이 되었다. 또한, 브릭스 4국은 국제 정치·경제 판도에서 중요한 지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협력은 향후 달러의 패권적 지위를 동요시키고 새로운 국제 금융 체제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라고 자신 있게 예측한다.

이번에 예카테린부르크에서 동시에 개최된 두 개의 정상회담은 어쩌면 세계 권력의 이동을 예고해주는 이정표일 수도 있다. 최소한 ‘중·미 G2 양강(兩强)’ ‘브릭스(BRICs)’ ‘G20’ 등이라는 용어들이 출현하고 있는 사실 자체가 이미 국제 질서의 재편을 생동감 있게 반영하고 있는 징후라고 볼 수 있다. 실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중국·러시아·인도·브라질 등을 포함해 비(非)서방 국가들이 새로운 국제 질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지금처럼 서방 국가들과 한자리에서 ‘평등하게’ 논의를 진행한 적은 없었다.

▲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열린 첫 브릭스 정상회담. 왼쪽부터 실바 브라질 대통령,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만모한 싱 인도 총리. ⓒAP연합(왼쪽), 로이터(오른쪽)

2008년 말부터 양국 무역도 크게 줄어

올해로 수교 60주년을 맞은 중국과 러시아는 1996년 ‘중·러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수립한 이래 고위층의 상호 방문을 정기화하는 데 합의했다. 이후 양국 정상은 자주 만나 상호 소통과 이해를 넓혀왔다. 그동안 중·러 양국은 일련의 중요 국제 문제에서 항상 동일하거나 접근된 입장을 보였고, 유엔 등 다자 기구 차원에서도 효과적으로 협력해왔다. 또한, 양측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언제든지 국제 테러리즘의 분쇄와 예방을 위한 효과적인 협력을 할 수 있음을 확인해왔다. 양국은 상하이협력기구의 틀 내에서 긴밀하게 협력해왔고, 반테러 군사훈련의 규모를 확대했으며, 공동으로 마약 밀매 소탕 작전을 벌임으로써 지역의 안정을 촉진해왔다.

이러한 우호 관계를 바탕으로 하여 양국 간의 경제 무역 규모는 1990년대의 수십 억 달러 수준에서 2008년에는 5백68억3천만 달러에 이를 정도로 비약적으로 커졌다. 에너지 협력 역시 양국 경제 협력의 중요한 분야로서 2008년에 만들어진 중·러 에너지 대화 기제에 근거해 올 2월 베이징에서 제3차 에너지 대화를 개최했다. 이어 지난해 4월, 러시아가 중국에 원유를 공급하는 대신 중국은 러시아에 2백50만 달러를 대출하기로 하는 협정서를 체결했다. 그리고 8월에 열린 양국 총리 회담에서 연간 1천5백만t 규모의 원유 공급 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중국은 최근 헤이룽장성(黑龍江省)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원유 공급 파이프라인의 건설 공사에 착수했다.

이러한 양국 우호는 2006년 중국이 ‘러시아의 해’를 선포하고, 2007년에는 러시아가 ‘중국의 해’를 선포하는 것에서도 볼 수 있다. 이어 2009년에는 중국이 ‘러시아어의 해’를, 2010년에는 러시아가 ‘중국어의 해’를 개최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양국의 친선 우호는 이제 민간 문화 분야까지 굳건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장밋빛으로만 채색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1989년부터 실시된 중국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무기 수출 금지 조치 이후 러시아는 줄곧 중국의 무기 공급원이었다. 1990년대에 매년 10억 달러 수준에 불과했던 중국에 대한 러시아의 무기 수출은 2001년부터 2006년까지 계속 증가해 30억 달러 수준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2007년부터 10억 달러 수준으로 대폭 떨어졌고, 이에 대해 러시아는 커다란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양국 무역도 2008년 말부터 2009년 초까지 큰 폭의 하강 곡선을 그렸다. 이에 대해 주중 러시아대사 라조프조차도 “러·중 관계의 발전과 심화와 관련한 거대한 잠재력을 아직까지 찾아내지 못했다”라고 실토할 정도이다.

또한, 많은 러시아인은 중국으로부터 이민자들이 대규모로 몰려와 서부 시베리아뿐만 아니라 러시아 심장부까지 뒤덮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해 러시아가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아를 침공했을 때 중국은 끝내 이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지 않아 러시아인들의 분노를 샀다. 러시아는 최근에는 오바마 정부가 전세계에 걸쳐 중국과 미국의 동반자 관계를 추진하면서 이른바 G2 회담을 개최하는 데 대해서도 불안해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금 숨길 수 없는 ‘이웃나라 숙적’으로서 갈수록 강대해지는 중국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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