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부터 다지며 10년 담금질”
  • 신무광 (재일본 축구 칼럼니스트) ()
  • 승인 2009.06.23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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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축구협 부서기장과 현직 코치가 말하는 북한 축구의 변모 2000년대부터 ‘강화 계획’ 세워 꿈나무 집중 육성

▲ 지난해 한·일 프로축구 올스타전에서 만난 김남일과 정대세. ⓒ연합뉴스

‘죽음의 조’라고 일컬어진 B그룹을 돌파하고 1966년 이래 44년 만에 월드컵 출전권을 거머쥔 북한. 그 쾌거의 배경에는 2000년대부터 시작된 강화 계획의 재발견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필자에게 그렇게 알려준 것은 재일본조선인축구협회 이사장이며 북한축구협회 부서기장 이강홍씨였다.

“그때까지의 조선 축구는 1966년 월드컵의 영광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전술이나 지도 스타일이 경직되고 세계 축구의 조류에 뒤처지고 있었다. 다만, 1990년대 후반부터 재도약에 힘썼다. 주력하는 것은 선수 육성. 어린 선수를 단계적으로 키우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이씨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학교 스포츠가 선수 육성의 장으로서 역할을 맡고 있으며, 시도 단위로 선발팀도 결성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중에서 유능한 선수는 ‘4·25 체육단’ ‘평양시 체육단’ ‘기관차 체육단’ ‘자동차 체육단’ ‘압록강 체육단’ ‘월미도 체육단’ ‘리명수 체육단’ 등으로 스카우트된다는 것. 이들 체육단은 조선인민군, 행정 기관, 산업 공장 등의 관할 하에 놓인, 국가가 운영하는 종합 스포츠클럽이며 선수들은 여러 나라가 그랬던 것처럼 북한에서도 국가적 차원에서 엘리트 아마추어 스포츠의 강화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또, 각 체육단이 14세 이상의 주니어를 중심으로 한, ‘양성조’라 불리는 하부 조직을 갖고 있으면서 그곳에서 유망 선수를 단계적으로  육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정기전이나 리그전도 빈번히 실시되며 앞서 말한 체육단과 각 도가 운영하는 선발팀을 포함한 합계 12∼14팀이 참가해 봄에는 ‘만경대상 체육경기대회’, 여름에는 ‘보천보상’, 가을에는 ‘조선선수권대회’가 열리게 되었다. 대표팀은 그런 실전을 통해 엄선된 선수들로 결정되는데, 2000년 아시아컵 대회 이후 팀은 젊은 선수들 위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씨는 “목적은, 이른 단계에서 젊은이에게 국제 경험을 쌓게 해 기술 향상을 촉진시키는 것. 해외에 나감으로써 세계 축구의 조류와 정보도 직접 접해 그것을 조선 축구계 전체에 힘이 되어주는 것이 목적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런 세대 교체로 두각을 나타낸 것이 홍영조, 김영준, 남성철, 문인국 등이었다. 2005년 독일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에서 쓰라린 경험을 한 그들이지만 그 후로도 2005년 동아시아선수권 예선대회 등에서 착실하게 국제 경험을 쌓아왔다.

한편, 주니어 세대의 강화도 게을리 하지 않고 2005년에 페루에서 열린 FIFA U-17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베스트 8 진출, 2006년 AFC 유스 선수권에서의 우승. 2005년 FIFA U-17 선수권에서 4경기 3득점을 기록한 최민호는 FIFA가 선정한 ‘미래의 스타 선수’로 뽑혔으며, 2006년 아시아청소년축구대회에서는 미드필더 김금일이 대회 MVP로 뽑혔다.

2007년부터 북한은 이렇게 착실하게 경험을 쌓아 성장한 2005년 아시아 최종 예선 조와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젊은 세대 그리고 정대세·안영학 등의 재일 북한 선수들을 투입한 팀 체제로 본격적인 월드컵 모드에 돌입했다.

그 팀의 지휘관으로 임명된 사람이 2007년 11월 킹스컵 때부터 북한 대표를 지휘하는 김정훈 감독이다. 김정훈 감독은 북한 내에서 대단한 실력과 인기를 자랑하는 군대 클럽 ‘4·25 체육단’ 출신으로 1980년대에는 부동의 센터백으로서 북한 대표 주장도 10년 가까이 맡았던 인물. 은퇴 후에는 ‘4·25’의 톱팀은 물론, 양성조라 불리는 청소년팀도 지도한 경험이 풍부한 지휘관이다.

재일 축구인 영입하고 선수 해외 진출 장려

▲ 본선 진출이 확정된 후 기뻐하는 북한 대표팀. ⓒ연합뉴스

지난번 독일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을 반성하면서 ‘이기는 팀’이 아닌 ‘지지 않는 팀’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결론을 내린 북한 축구협회는 수비수 출신인 만큼 스타일도 수비 제일주의인 김정훈 감독에게 남아프리카 월드컵을 목표로 하는 대표팀의 지휘를 맡겨, 감독도 실질적으로는 5-3-1이라고도 할 수 있는 초수비적이고 현실적인 전술을 팀에 주입했다.

동시에 선수뿐 아니라 코칭스태프에도 재일 축구인을 영입했다. 그것이 바로 올해 54세인 김광호 코치이다. 그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재일 축구계의 중진이기도 하다. 현역 시절에는  일본 리그의 강호들과도 호각의 승부를 펼쳤던 재일 조선축구단의 에이스였으며, 1980년에는 재일 선수로서 처음으로 북한 대표에 선발되어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예선, 1980년 아시아컵, 1982년 아시아대회 등에 출전했으며 1985년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도 출전했다. 지도자로서도 2001년부터 2005년까지 감독을 맡았던 모교 조선대학교에서 정대세를 키웠다. 2006년 상반기에는 JEL의 아르테 타가자키네에서 활약했던 김광호 코치는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는 조선 대표팀에서 재일 선수는 ‘손님’이나 마찬가지였다. 기왕에 왔으니 써 준다는 정도로 취급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대세나 영학이는 정당하게 실력을 평가받아 기용되었고 결과도 확실하게 내놓고 있다. 그것도 짧은 합류 기간에. 나 때는 2∼3개월 평양 합숙에 참가하고 겨우 팀의 인정을 받아 얼굴을 익히곤 했지만, 그들은 시합 직전에 팀에 합류해 확실하게 결과를 남기니까. 이것은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대단한 일이다. 그런 재일 선수들과 조선 선수와의 의사소통을 어시스트하는 것이 내 일 중의 하나이다. 또 하나는 팀 전체를 통틀어 보는 시점과 그에 기초한 의견을 많이 내달라고 김정훈 감독이 당부하고 있다. 감독과는 서로 현역 시절부터 알던 사이이지만 팀의 전술 면에 관해서 상당히 진지하게 의견을 교환한다. 감독은 객관적인 시점을 내게 요구하고 있고, 나도 그것을 의식해 의견을 많이 내놓고 있다.”

북한 축구계는 자기들의 방식에 집착하지 않고 세계의 축구 조류에도 능통한 재일 축구인도 영입해 팀 전력 강화에 힘쓴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축구에서도 ‘쇄국 상태’였던 북한이지만 근년에는 전체적인 레벨업을 위해 선수를 대거 해외로 내보내고 있다.

예를 들면, 독일월드컵 예선에서도 활약한 미드필더 김영준이다. 그는 한때 중국 조선족이 운영하는 프로 축구클럽 연변 축구단에서 뛰었다. 연변 축구단은 갑급 리그(2부)에 속해 있으며 중국 프로축구 리그의 최고봉 슈퍼리그 승격을 목표로 하고 있는 팀이다. 그 연변 축구단에서 김영준은 주장을 맡고 있으며 그 말고도 총 4명의 북한 선수가 중국에서 뛰었고, 북한 대표의 에이스인 홍영조는 러시아 프로 리그에서 지금도 활약하고 있다.

앞서 말한 대로 그들은 모두 북한 축구협회가 내보낸 현역 최고의 대표 선수들이다. 이는 북한 축구계가 확실하게 세계와의 접점을 늘린 증거이며, 북한 축구협회가 품고 있는 개혁에 대한 의욕이라고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사회주의 국가 특유의 엘리트 시스템 축구 인프라를 그대로 남겨둔 채 세대 교체로 젊은 선수들의 성장을 독려하고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국제 경험을 쌓게 해온 북한. 유력 선수들의 해외 진출, 정대세와 김광호 등 재일 축구인들의 영입 그리고 착실하게 성장해가고 있는 주니어 세대의 대두 등을 통합해 만들어진 팀은 집중적인 강화 합숙으로 견수속공(堅守速攻) 스타일을 연마해 ‘죽음의 그룹’을 돌파, 44년 만에 월드컵 출전을 이루어낸 것이다.

과연 내년 이맘때, 북한은 남아프리카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지, 지금부터 주목해야 하겠지만 이것만은 틀림없을 것이다. 그 복잡한 국가 정세와 정보 부족 때문에 수수께끼같다, 이상하다고 하는 북한이지만 이미 축구에서는 ‘미스테리어스한 집단’이 아닌 것이다. 세계가 주목하는 남아프리카 피치에서 한국 아닌 ‘또 하나의 코리아’가 44년 만에 포효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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