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비빔밥 좋아했던 ‘황제’, 잠들다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9.07.01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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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족적 남기고 떠난 마이클 잭슨

ⓒ연합뉴스

마이클 잭슨이 1982년 발표한 <스릴러(Thriller)> 앨범의 판매량은 정확히 알기 어려울 정도이다. 후한 곳에서는 현재까지 1억5천여 만장 정도가 팔렸을 것이라고 말한다. 마이클 잭슨에게 수천만 장의 앨범 판매고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1979년의 <오프 더 월(Off the Wall)>은 2천만장에 가까운 판매고를 기록했고, 1987년의 <배드(Bad)>는 3천여 만장이 넘게 팔렸다. 1991년 발매된 <데인저러스(Dangerous)>는 11월에 나왔는데도 그해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기록되었다.

그가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도 적지 않았다. 조용필이 주름잡던 우리 대중음악에도 마이클 잭슨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그의 현란한 ‘문워크’는 춤 좀 춘다는 사람들이 익혀야 하는 바이블이었고, 한국말로 가사를 받아 적어 ‘beat it’을 외워 부르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분단’이라는 우리만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남북한이 통일이 되었을 때 꼭 다시 방문해 기념 공연을 하겠다”라고 약속하던 황제였다. “정말 맛있다”라는 그의 칭찬 덕분에 전주비빔밥은 대표적인 기내식으로 자리 잡았다.

팝의 황제는 시나브로 음악 외적인 면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의 최근 10년은 팝의 황제라는 수식어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초라했다. 엄청난 부를 얻었지만 아동 성추행 혐의 때문에 거액의 합의금을 지급했고,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마이클 잭슨의 생은 끝났다. 이제부터는 전 매체들이 그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작업에 분주해질 전망이다. 희화화된 대상으로 세상을 떠난 마이클 잭슨이 전세계에 어떤 영향력을 보였는지는 이제부터 재조명된다. 마이클 잭슨의 일생은 50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위대한 족적은 아마도 그의 존재를 ‘네버랜드’(영원의 땅)로 인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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