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심장의 사나이, 일본을 녹이다!
  • 이환범 (스포츠서울 기자) ()
  • 승인 2009.07.07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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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용, 한국인 최초 일본 올스타 인기 투표 1위

ⓒ연합뉴스

방어율 ‘0’의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야쿠르트 철벽 마무리 투수 임창용이 일본 프로야구 올스타 팬 인기 투표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실력과 인기 모든 면에서 인정받고 있다. 외국인 선수, 특히 동양인에게 인색한 일본에서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팬 투표로 당당히 올스타에 뽑혔다는 것은 쾌거이다. 선동열·이승엽·이종범 등 많은 선수가 일본 무대를 밟았지만 팬 투표로 올스타에 뽑힌 것은 임창용이 처음이다.

일본 프로야구 진출 첫해인 지난해 33세이브를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안착한 그는 올 시즌에는 30경기에서 2승18세이브의 성적에 방어율 ‘0’이라는 경이적인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최고 구속 1백60㎞에 달하는 광속구를 찍어대며 일본 프로야구 공인 최고 구속 2위를 마크했다.

일본 프로야구를 호령했던 ‘나고야의 태양’ 선동열, 아시아 홈런왕 이승엽 등도 데뷔 첫해에는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비해 임창용은 이렇다 할 슬럼프도 없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팔꿈치 수술 경력으로 한물갔다고 생각되었던 그가 국내에서보다 일본에서 더 활약을 펼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보 투수’로 불린 삼성 선동열 감독은 마무리 투수의 자질로 강속구, 제구력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강심장을 꼽는다. 언제나 등판할 수 있도록 대기하며 최고의 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강철 체력을 가졌다면 금상첨화이다. 임창용은 이런 모든 자질을 갖춘 몇 안 되는 투수이다. 최고 구속 1백60㎞에 이르는 빠른 직구에 수준급 제구력을 지녔다. 사이드암에서 뿜어져 나오는 꿈틀거리는 ‘뱀직구’는 임창용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스트라이크를 꽂아 넣을 정도로 제구력도 뛰어나다. 일본에 진출한 뒤에는 포크볼까지 익혔고, 사이드암으로 던지다 가끔씩 오버핸드 스로로 공을 던져 타자를 헷갈리게 한다. 가장 뛰어난 것은 특유의 싸움닭 기질과 강심장이다. 터프 세이브 상황에 등판해도 전혀 흔들리는 기색이 없다. 한 방이면 역전을 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 큰 것을 허용하기 쉬운 몸쪽공을 과감하게 던질 수 있는 투수가 임창용이다.

마무리 투수의 모든 자질 갖춰

임창용은 2007년 12월 계약금 없이 연봉 3천3백만 엔을 받고 야쿠르트 유니폼을 입었다. 3천3백만 엔은 일본 프로야구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 중 최저 연봉 수준이다. 삼성에서 받았던 연봉보다도 적은 액수이다. 임창용은 2007년 5억원의 연봉을 받았다. 수술 후 개점 휴업을 해 등판 성적이 없어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 3억원으로 깎인 연봉을 제시받았지만 이를 마다하고 일본행을 택했다. 액수에서 보듯이 돈이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무대에 대한 도전 의식이 크게 작용했다. 성공한다면 돈은 자연적으로 따른다는 생각이었다. 일본에 진출했던 다른 한국 선수들의 연봉과 비교하면 더욱 터무니없는 헐값이다. 1996년 선동열은 트레이드 머니 2억 엔에 연봉 2억 엔을 받았고, 이승엽·구대성·정민태 등 대부분의 한국 선수들이 1억 엔 이상의 연봉으로 시작했다. 물론 계약금도 그 이상이다.

임창용은 2005년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이후 2006·2007시즌에는 41경기에서 6승7패에 그쳤다.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일본 프로야구계로부터 주목되었던 그였지만 야쿠르트 입장에서 보면 크게 흥미를 느낄 선수는 못 되었다. 잘 던져주면 보물을 거저 주은 것이고 안 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임창용의 생각은 달랐다. 팔꿈치도 아프지 않고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아니, 국내에서의 편안한 생활을 뒤로 하고 스스로 험난한 행로를 선택한 만큼 꼭 성공해야만 했다. 이런 정신력이 일본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실력과 정신력 등 모든 것이 완벽해도 타국의 리그에서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텃세가 심하고 현미경 야구를 구사하는 일본이라면 더하다. 더욱이 그들 입장에서는 한국선수는 용병일 뿐이다. 팀 성적을 좌우하는 즉시 전력이어야 한다. 기대에 못 미치면 곧바로 퇴출이다. 그런 면에서 야쿠르트는 임창용이 적응하기에 안성맞춤의 팀이었다. 일본 최고의 명문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같은 도쿄를 연고지로 하는 야쿠르트는 여러모로 국내 구단과 닮았다. 선수들 사이에 정이 흐르고 프런트도 사무적이기보다 정적인 요소가 많은, 국내 프로야구계의 분위기와 흡사하다. 야쿠르트의 홈인 진구구장의 구장 크기는 한국의 잠실구장과 엇비슷하지만 덕아웃이나 내부 건물 구조는 대구구장이나 광주구장을 연상시킬 정도로 낡았다. 임창용은 “꼭 한국에서 뛰는 것처럼 편안하다. 선수들과 프런트 모두 내게 잘해준다”라고 말한 바 있다.

야쿠르트는 임창용에게 최적의 팀

원칙을 중시하고 모든 것이 사무적인 요미우리와는 큰 차이가 난다. 요미우리에서 적응에 실패하고 한국으로 유턴한 정민태(현 히어로즈 코치)와 정민철(한화) 등이 좋은 예이다. 이들은 제대로 던질 기회도 보장받지 못하고 2군을 전전하다 한국으로 돌아왔다. 큰돈을 들여 데려온 선수지만 요미우리에는 그만한 선수가 많았다. 우승에 목을 맨 팀이기에 적응할 때까지 기다려줄 여유가 없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야쿠르트를 선택한 임창용은 행운아이다.

임창용은 한창 전성기에 국내에서 최고 구속 1백50㎞ 중반 대의 공을 던졌다. 일본에 진출한 이후에는 이전보다 공이 더 빨라졌다. 지난 5월15~16일 진구구장에서 열린 한신 타이거스와의 경기에서는 1백60㎞를 이틀 연속 스피드건에 찍으며 ‘1백60㎞의 사나이’라는 호칭을 얻기도 했다. 구속이 빨라진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타고난 강한 어깨에 유연성, 활시위처럼 팽팽히 당겨졌다가 튕겨져 나가는 역동적인 투구 폼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딱 꼬집어 어느 것이 좋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떤 이는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인 토미존 서저리 수술을 받으면 이전보다 인대가 강해져 볼이 빨라지기도 한다고 말하지만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 임창용은 이에 대해 “수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픈 데가 없다. 재활을 충실히 해 몸 상태도 어느 때보다 좋다. 아픈 데가 없으니 공을 마음껏 뿌릴 수 있다는 것이 비결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1백60㎞의 공이라면 알고도 쉽게 치지 못하는 공이다.

또, 그는 오는 7월24~25일 열리는 올스타전에서도 1백60㎞ 광속구 시범을 보이겠다고 장담하고 있다.

임창용은 올 시즌에는 5천5백만 엔의 연봉을 받는다. 지난해보다 2천2백만 엔이 올랐다. 내년에는 얼마를 받을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수억 엔은 기본으로 챙길 것으로 보인다. ‘2+1’ 계약을 맺어 올 시즌이 끝나면 구단이 선택권을 갖고 새로 연봉 계약을 체결하거나 자유계약선수가 되어 다른 팀으로 이적할 수도 있다.
벌써부터 일본 프로야구 관계자들은 선수 욕심이 끝이 없는 요미우리가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야쿠르트에서 맹활약을 펼친 용병들은 요미우리가 싹쓸이해갔다. 4번 타자 알렉스 라미레스, 투수 세스 그레이싱어, 곤살레스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임창용은 올 시즌이 끝나면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수도 있다고 운을 띄우고 있다. 실력 면에서는 미국에서도 언제든 통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럴 개연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이미 일본프로야구 최고 마무리 투수로 인정받은 임창용이기에 양손에 떡을 쥐고 느긋하게 선택을 고민하는 형국이다. 어디가 되었든 그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오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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