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카 권하는 사장이 퍼뜨린 행복 바이러스
  • 로스앤젤레스·진창욱 편집위원 ()
  • 승인 2009.07.07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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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굴지의 판매회사가 된 자포스닷컴 불황에도 성장률 9백48% 달성한 비결

▲ 신발 전문 판매로 시작해 연 매출 10억 달러의 대형 쇼핑몰로 성장한 자포스닷컴의 CEO 토니 샤이.

사장이 직원을 집무실로 불러 면담하면서 대낮에 소주를 권하는 회사는 흔하지 않다. 회사 간부에게 업무 시간의 20%가량은 농땡이를 치는 데 할애하도록 종용하는 회사 또한 그렇다. 그런데 그런 회사가 경제 침체기에 해마다 매출이 늘어나고 있다면 신기한 일이다. 더구나 사장 연봉이 초임 직원 수준밖에 안 되는 회사라면 믿을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미국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 주변 도시 헨더슨에 위치한 신발전문 온라인 판매 회사 자포스닷컴이 바로 그런 회사이다. 자포스닷컴은 지난 1999년 20대 중반의 젊은 벤처 사업가 닉 스윈먼이 창업한 인터넷 판매 회사로, 비슷한 또래의 하버드 출신 벤처 사업 투자가인 토니 샤이와 대학 동창인 앨프레드 린이 참여해 일군 신흥 회사이다.

자포스닷컴은 세 개 회사가 참여하는 신발 전문 판매로 시작해 현재 여성 의류 등 모두 44개 아이템에서 참여 브랜드 회사가 1천1백96개, 스타일 종류 16만7천6백88가지, 그리고 창고 직송 대기 제품 수 3백29만3천2백15개에 이르는 미국 굴지의 판매 회사이다. 자포스닷컴은 미국에서 가장 일하고 싶은 직장 순위 23위에 오를 정도로 회사 평판도 좋다. 이 회사의 총각 사장 샤이(35)의 집무실은 회사 연간 매출이 10억 달러(1조2천억원)에 직원 수가 1천5백명에 이른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검소하다. 집무실에는 고급스런 레녹스 찻잔 대신에 일회용 스티로폴 커피 잔이 나뒹군다. 그의 방에는 한국의 소주와 비슷한 보드카 몇 병이 항상 준비되어 있다. 면담하러 온 직원이 사장 앞에서 말을 주저하면 그는 마주 앉은 자리에서 술잔을 권한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 보드카를 몇 잔씩 나누면 어색함이 사라지고 금방 서로가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한 여직원은 면담 때문에 사장실에 갔다가 술을 넉 잔이나 받아마셨다고 털어놓았다. 샤이 사장의 경영론은 ‘행복 추구’이다. 그는 고객을 행복하게 하려면 회사와 회사 직원이 먼저 행복해야 한다고 믿는다. 직원이 사장과 면담할 때 기분이 좋아야 하는 이유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직원이 근무 시간 중 동료와 노닥거려도 상사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회사 분위기를 술집처럼 바꾸어 놓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회사 도서관의 장서는 직원이 원하면 무엇이든 가져가서 반납하지 않아도 된다.

▲ 자포스닷컴 사이트.


직원의 행복이 ‘고객 감동’으로 이어지는 ‘행복 경영’ 추구

자포스닷컴이 지난 3년간 경제 불황에도 불구하고 10배(성장률 9백48%)의 매출 증가를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이같은 샤이 사장의 행복 경영에 있다. 고객을 행복하게 한다면 그 고객은 단골이 된다는 간단한 논리이다. 이 회사 경영 10계명의 제1조는 ‘고객 감동’이라는 고전적 판매론을 재확인하고 있다. 자포스닷컴의 고객 60%가 감동을 받고 다시 찾아온 고객이다. 그러나 “서비스를 받는 고객이 ‘와’ 하며 감탄하게 한다” (Deliver WOW through service)라는 제1조의 표현 문구는 결코 고전적이 아니다. 문구의 감각은 샤이 사장의 나이만큼 젊다. 젊은 단골이 많은 것도 같은 이유이다. 샤이 사장은 중국에서 태어나 발명 특허 29개를 소유한 화공학 박사인 아버지 리처드 시예(샤이의 중국식 발음)로 인해 어릴 때부터 과학에 익숙해졌다. 그는 하버드에서 컴퓨터를 전공했다. 대학 졸업 직후 인터넷 광고 교환 중개 사이트를 개발해 운영하다가 지난 1998년 마이크로소프트에 2억6천5백만 달러를 받고 회사를 팔았다. 그는 곧이어 24세의 나이로 벤처 사업 투자회사 벤처프로그를 창업해 벤처 투자가가 되었다. 그가 자포스닷컴에 참여하게 된 것도 투자가 인연이 되었다. 그가 경영 일선에 나서면서 가장 먼저 치중한 것은 기업 문화 정립과 고객 입소문 확대였다. 자포스닷컴 경영 10계명으로 불리는 ‘자포스 10가지 핵심 가치’는 그가 마련한 기업 문화의 집약이다. 샤이의 고객 감동 전략은 PEC(Personal Emotional Connection)로 요약된다. 즉, 인간적이고 감성적인 고객과의 관계이다. 이를 위해 전 직원은 고객을 만나면 즐겁게 대화를 이끌어야 한다. 콜센터의 직원은 딜라이트(환희) 콜러로 불린다. 신입사원의 경우 예외 없이 4주간 전화 대화 요령을 배우는 치밀한 수련 과정을 거친다.

다음은 최대한의 신속한 배달이다. 켄터키 주에 있는 창고는 판매 제품 전량을 제조회사로부터 공급받아 배달에 대비한다. 70대의 자동 로봇을 가동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주문받은 다음 날에는 배달이 되도록 한다. 제조회사 직송 방식은 비용 절감에 도움이 되지만 때로 배달이 늦어지는 단점이 있어, 창고 직송 방식을 택한 것이다.

 배달은 무료이다. 반품 우송료도 따로 부과하지 않는다. 반품은 3백65일 이내 항상 가능하다. 콜센터 직원들은 사이즈나 디자인을 결정하지 못하는 고객에게는 사이즈가 다르거나 디자인이 다른 두 켤레나 세 켤레를 주문하도록 권고한다. 필요하지 않은 것은 언제든지 부담 없이 반품하라고 안내한다.

사장 연봉이 중하급 직원 수준…직원 이직률 낮을 수밖에 없어

콜센터 직원들의 PEC 사례는 자포스닷컴에서는 흔한 일이다. 한 여성 고객이 자포스닷컴을 통해 남편의 생일 선물로 구두를 주문했는데 구두 도착 직후 남편이 사망했다. 반품을 문의하는 고객에게 콜센터 직원은 친절히 대답하고 안내했다. 다음 날 고객은 느닷없는 조화를 배달받았다. 콜센터 직원이 보낸 것이었다. 이 직원은 직속 부서장의 사전 동의 없이 자의로 꽃다발 배달 주문을 하고 경비를 아무렇지 않게 회사에 청구했다. 물론 회사는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꽃다발 배달은 이제 자포스닷컴에서는 흔히 있는 고객 서비스로 통한다. 다른 콜센터 직원은 구입한 지 1년이 지난 신발에 불만을 가진 고객에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새 신발을 보냈다. 이미 닳아빠진 낡은 신발에 대한 반품 요구는 하지도 않았다.

 이들 두 가지 에피소드는 입소문을 타고 널리 퍼졌다. 주문 고객이 절로 늘었다. 자포스닷컴은 손실보다 더 큰 이익을 얻었다. 자포스닷컴은 직원 이직률이 낮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신입사원을 훈련할 때 첫 2주 교육이 끝나면 회사는 입사 포기 여부를 묻는다. 포기자에게는 2천 달러의 입사 포기 퇴직금을 지불한다. 그러나 일단 초반 훈련을 받은 신입사원이 퇴직하는 경우는 드물다.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창업한 자포스닷컴이 얼마 후 네바다 주로 회사를 옮길 때 직원 70%가 라스베이거스로 이사를 하면서 회사를 따라간 것은 유명한 얘기이다. 직원들의 최저 연봉은 2만4천 달러 정도이다. 샤이 사장의 연봉은 3만6천 달러에 그친다. 중하급 직원 수준이다. 직원들이 연봉과 관련해 사장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별볼일없는 사장이라고 비하하며 스스로 행복해한다. 직원들이 회사에서 행복을 느끼게 하는 다른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자포스닷컴의 성공은 샤이의 행복 경영 덕분이다. 이러한 자포스닷컴의 성공 신화는 미국이 찾고 있는 신세대 경영 모델의 하나가 되고 있다.

한국 기업은 요즘, 회사도 직원도 행복한 것 같지 않다. 한국 정치도 마찬가지이다. 토니 샤이를 보면서 행복 경영을 배워야 할 것 같다. 기업과 정치가 불행하면 바로 고객인 국민이 불행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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