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는 멀고 대결은 가깝고’
  •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09.07.07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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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갑한 북-미 오바마, 대북 제재 전담팀 구성하며 압박 “실효성·강도 높이고 혼선 막기 위해”

▲ 대북 제재 TF 팀장으로 임명된 필립 골드버거 전 대사. ⓒEPA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제재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제재를 전담할 부처 합동 전담팀을 만들고 물샐 틈 없는 제재를 다짐하고 있다. ‘오로지 대북 제재만을 생각할 사람이 필요해서’ 전담팀을 만들었다는 것이 백악관의 설명이다. 팀장에는 전략가로 정평이 난 노련한 외교관 필립 골드버그 전 볼리비아 주재 대사가 발탁되었다. 미국 행정부 고위 관리는 6월26일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되돌릴 수 없도록 해체하지 않는 한 제재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한 외교소식통은 “전담팀 구성은 제재의 실효성과 강도를 높이는 동시에 2005∼07년 초의 혼선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목적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당시 재무부는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 등 북한의 자금 유통망을 죄어 큰 효과를 냈다. 그러나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북한과 양자 접촉을 갖고 BDA은행 자금 해제를 약속했다. 재무부가 반발했지만 부시 대통령이 국무부 편을 들어줌으로써 금융제재는 유명무실해졌다. 이번에도 그런 갈등이 생길 소지가 있으므로 아예 전담팀을 구성한 것이다.

최근 미국의 대북 제재와 압박은 전방위적이다. 대량 파괴 무기(WMD) 관련 물자를 선적한 것으로 의심받는 ‘강남호’가 미국 해군의 이지스함인 ‘존 매케인호’의 추적을 받고 있다. 또한, 미국은 이란에 있는 ‘홍콩일렉트로닉스’와 북한 무역회사 ‘남촌강’을 각각 미사일 개발 지원과 우라늄 농축 관련 혐의로 자산을 동결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밖에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 당국으로 하여금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하도록 하기 위해 광범위한 금융 압박을 행사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6월30일 보도했다. 미국 재무부는 국제은행 망을 통해 17개 북한 은행과 기업들에 대한 자금 공급 제한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17개 은행과 기업은 북한의 핵과 무기 거래에 중심 역할을 해왔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그의 가족 그리고 북한 지도층에게 있어서 재정적 생명선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미국 정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오바마 정부의 대북 압박 조치는 한마디로 ‘봉쇄’이다. 북한의 고립을 심화시킴으로써 마땅한 출구를 찾지 못하게 될 북한으로 하여금 협상의 장으로 되돌아오도록 실질적인 압박을 가하겠다는 것이다.

▲ 이명박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공동 기자회견을 위해 로즈가든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광범위한 금융 압박도 준비 중

2002년 10월 이후 불거진 2차 북핵 위기 이후 한·미·일 3국이 마련한 북핵 해법은 ‘대화와 압력의 병행 원칙’이다. 6자 회담 등의 다자대화 틀을 유지하면서 대화를 통해 핵문제 해결에 주력하되 북한이 상황을 악화시키면 ‘추가적 조치’ 등으로 압력을 가한다는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북한은 대화를 거부하고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어 제재는 불가피해졌다. 6월16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한·미 동맹을 위한 공동 비전에 대한 북한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핵우산과 확장 억지(Extended Deterrence) 개념을 확인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입각한 평화통일 지향에 동의했다. 북한은 플루토늄의 무기화, 우라늄 농축 작업 착수, 봉쇄 조치에 대한 군사적 대응 등 초강경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북한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국제 사회에 전달하는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최근의 위기를, 마주보고 달리는 ‘치킨게임’(chicken game)에 비유해 “제재와 자위적 조치의 응수는 어느 한편이 물러서지 않는 한 멈춰 세울 수 없다”라고 밝혔다. 북한과 미국의 치킨게임이 충돌 직전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다. 치킨게임은 겁쟁이 게임으로 겁 많은 어느 한쪽이 먼저 피하면 충돌하지 않지만, 비굴하지 않다는 것을 내세우고 피하지 않을 경우 충돌해 양측 모두 자멸하는 게임이다.

안보리 제재 결의안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핵 억제력 강화와 봉쇄에 대한 군사적 대응이다. 특히 2차 북핵 위기의 원인이 되었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을 시험 가동하겠다는 주장은 또 하나의 위협으로 볼 수 있다. 그동안 미국은 북한의 플루토늄 방식의 핵개발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통제 가능한 위협이라고 보고 북한이 내놓을 수 있는 카드를 다 내놓아보라는 식으로 지켜보고 있다. 북한이 이번에 UEP 카드를 내민 것은 ‘이래도 미국이 무관심할 수 있냐’라는 식의 대미 압박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 북한의 플루토늄 핵개발을 ‘방치’하면서까지 우라늄 핵개발 억지를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그만큼 우라늄 핵개발이 미국의 안전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플루토늄 핵폭탄은 통제가 가능하지만 우라늄 핵폭탄은 통제가 어렵기 때문에 북한의 우라늄 핵개발을 막는 것을 긴요한 국가 안보의 과제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맞서 북한이 우라늄 농축 카드를 내민 것이다.

이제 북한이 내놓을 수 있는 카드는 거의 다 나왔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응 방식에 따라 한반도 정세의 큰 흐름이 결정될 것이다. 아직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 핵을 폐기하는 목표 이외에 대북 정책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를 밝히지 않고 있다. 북한이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 선택을 제한하는 악수를 너무 많이 두어서 오바마 행정부가 제재 국면을 대화 국면으로 전환시키는 데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북한, 내놓을 수 있는 카드 다 꺼내

북한은 지난 20여 년간 미국과 적대 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협상을 지속해왔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협상을 통한 핵 폐기보다는 ‘핵 억제력 강화노선’으로 되돌아가려는 것으로 보인다. 선군정치를 하는 북한 정권의 최대 목표는 정권과 체제를 지키는 것이다. 북한이 2차 핵실험을 강행했다는 것은 협상카드보다 핵무기를 보유하는 데 무게 중심을 두고 억제력을 강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국제 사회의 제재가 강화될 것에 대비해서 북한은 이미 속도전인 ‘1백50일 전투’에 들어가 있다. 내부 동원 체제를 강화하면서 자력갱생 방식의 생존을 모색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핵실험에 맞서 국제 사회는 유엔 안보리 제재를 추진하는 등 대북 제재와 압력을 강화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도 계속 ‘선의의 무시정책(benign neglect)’을 지속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의 현 위기 조성을 통제 가능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내놓을 수 있는 카드를 다 내놓아보라는 식으로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2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폐연료봉 재처리 시설을 가동하면서 핵무기 보유고가 늘어나는 상황을 더는 방치하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은 당분간 안보리 제재 강화와 함께 6자회담 관련국과 협의를 통해 대북 압박을 강화할 것이다. 핵실험의 낙진이 어느 정도 가라앉으면 북·미 직접 대화를 통한 핵문제 해결에 주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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