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관념 때문인가, 서울대생은 우울하다
  • 김회권 기자·강철 인턴 기자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9.07.0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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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활문화원 상담센터에 정신 상담하는 학생 계속 늘어 경쟁 체제, 성공에 대한 압박, 학내 네트워크 부재 등이 원인

▲ 입학만 하면 미래가 보장될 것 같은 서울대에서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학생이 계속 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최근 서울대생 김 아무개씨(법대·26)는 교내의 대학생활문화원을 찾았다. 김씨는 “힘이 빠지고 모든 것이 귀찮다. 식욕도 없고 숙면을 취하지 못한다”라며 상담사에게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그저 계절을 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슬럼프가 길어지자 조바심이 났고, 공부에 집중할 수 없자 신경도 날카로워졌다. 2년째 고시를 준비하는 김씨는 요즘 주위 사람들에게 “너 좀 변한 것 같다”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있다.

정신적인 고통을 느끼며 상담을 받는 서울대생이 조금씩 늘고 있다. 대학생활문화원 내 상담센터는 이처럼 상처받은 학생들을 보듬어 주는 역할을 한다. 김지은 서울대 대학생활문화원 전문위원은 “정신 상담을 받는 학생이 단기간에 급증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대학생활문화원에서 상담을 받은 학생 수는 2백4명(2004년)→2백85명(2005년)→3백20명(2006년)→3백70명(2007년)→4백58명(2008년)으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상담에 대한 인식이 예전보다 좋아졌고, 학생들이 상담하기 쉽도록 학교측이 제도를 정비하면서 잠재적인 상담 수요층을 끌어낼 수 있었다. 실제로 대학생활문화원이 지난해부터 24시간 전화로 상담할 수 있는 ‘스누콜’을 운영하면서 상담을 원하는 학생들도 증가했다. 김지은 전문위원은 “상담실로 오기까지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지만 전화는 익명성도 보장되고 간편하다. 예를 들어 시험공부를 하다가 힘들어서 전화하는 경우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정신 건강 실태조사 결과, 재학생 중 3%가 자살 시도 경험

ⓒ시사저널 박은숙

서울대생의 정신 건강 실태를 좀더 들여다보려면 지난 2005년의 자료를 참조하면 된다. 2005년 학생들의 폭력과 자살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자 서울대는 재학생 1천2백명을 대상으로 정신 건강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였다. ‘서울대학교 정신 건강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울증을 경험한 학생은 8.2%로 적지 않은 수치를 보였다. 전문의의 치료가 필요할 만큼 심각한 우울증을 겪은 학생도 2.5%나 되었고, 실제로 자살 시도를 한 학생도 3%에 달했다.

당시 이런 결과에 대해 서울대 노명선 교수(신경정신과)는 “학생들이 우울증을 겪는 원인은 서울대의 지나친 경쟁 지상주의, 적자생존 분위기 그리고 무관심 때문이다. 대부분 정신 건강 문제 때문에 학업에 큰 지장을 겪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당시의 조사 결과를 교수 사회에서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서울대측이 학생들의 정신 건강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관심을 보이게 된 것도 이때부터이다. 거꾸로 말하면 이 문제를 가볍게 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 대학본부의 관계자는 “학교가 학생을 돌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서울대의 경우 문제가 생길 때 사회적으로 이슈화되기 쉬워 대책을 준비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노교수의 말 속에 포함되어 있는 서울대의 경쟁 지상주의, 적자 생존 분위기라는 단어가 서울대 외부의 사람들에게는 선뜻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서울대는 대학 서열의 정점에 위치해 있었고, 서울대 출신들은 한국 사회에서 절대적인 지위를 누려왔다. 독점적 지위를 누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기존의 통념은 말 그대로 고정 관념일 뿐이다. 요즘 재학생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 온도는 과거와 많이 다르다.

학내에는 일단 경쟁 체제가 갖춰져 있다. 일단 신입생들은 입학을 하자마자 경쟁을 시작한다. “관악캠퍼스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하는 애들은 고학년이 아니라 1학년이다”라는 우스갯소리는 더 이상 농담이 아니다. 서울대가 학부제로 전환되면서 신입생 때의 성적이 전공을 결정하게 되었다. 입학과 동시에 학점에 대한 부담이 높아졌다. 윤수웅씨(22·정치학과)는 “요새는 전공 진입 커트라인이 높아졌다. 해가 지날수록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사회대에서는 경제학과의 커트라인이 가장 높은데 2007년에는 3.2(4.3 만점)였고, 2008년에는 3.4였다. 올해에는 3.5~3.6 이상이 될 것 같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경제학과의 커트라인이 높은 이유는 결국, 취업과 관련이 있다. 다른 곳보다는 낫다고 하지만 취업난의 한파에서 서울대도 자유롭지 못하다. 영악한 신입생들은 기업에서 상경계열을 우대한다는 사실을 입학할 때부터 잘 안다. 기업에서 바라보는 서울대의 위상이 예전만 못한 것도 하나의 이유이다. 서울대 출신 구직자들도 요즘 같은 취업난에는 어려움을 겪는 중이다. 윤씨는 “주위를 보면 인턴을 지원했다가 서류에서부터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라고 말했다. 윤씨에게 서울대는 과거 찬란했던 학문의 전당이 아니다. 그는 “전에는 대단한 학교라고 생각하고 입학만 하면 미래가 보장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입학 후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본인의 욕심도, 주위의 기대치도 크지만 현실과 간극 커

▲ 서울대 자연공학계열 신입생들이 학부 교수로부터 ‘대학생활 설계하기’ 주제의 강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김지은 전문위원은 “상대적으로 서울대생의 경우 성공에 대한 압박감이 클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다. 자신의 욕심도 크지만 주위에서 바라는 바도 부담이다. 곽효원씨(26·바이오소재학과)는 “사회의 기대치 때문에 내가 어느 정도의 직장을 가야 하는지, 내가 어느 수준의 대기업을 갈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자주 했다. 마치 외부의 힘으로 나를 규정하려는 것 같아 부정적인 느낌이 든다”라고 말했다. 송대웅씨(21·바이오소재학과)는 “부모님들은 서울대라고 하면 취직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현실은 아닌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곳의 학생들은 어렸을 때부터 ‘영재’ 소리를 들으며 주위의 기대를 한몸에 받은 친구들이 많다. ‘기대’와 ‘현실’의 간극은 이들에게 큰 압박이다.

이런 압박감에 가장 많이 시달리는 이들은 사실 고시생이다. 고시는 성공과 실패가 가장 극명하게 갈린다. ‘모 아니면 도’이다. 사법고시를 준비 중인 법대생 박나래씨(가명·24)는 요즘 스트레스 때문에 힘겹다. 같은 과의 선후배들이 모두 잠재적인 경쟁자들이다. ‘법대생은 당연히 사법고시를 준비해야지’라는 분위기가 과내에서는 당연한 것이었고, 그 분위기 때문인지 어느새 자신도 고시생 대열에 합류했다. 혼자 하는 사시 공부는 외로움과 우울함을 불러왔다. 박씨가 입학했을 때만 해도 1~2학년 때는 과 생활을 하며 대학 생활을 즐기고 3학년 때부터 고시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관례였지만, 요즘 1학년들은 예전 같지 않아서 입학과 동시에 박씨의 경쟁자가 되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는 것도 달갑지 않다.

박씨처럼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외로움으로 힘들어하는 학생들은 많지만 이들이 하소연할 곳도 마땅치 않다. 서울대 내에서는 학과제에서 학부제로 바뀐 이후 선후배 간의 단절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다. 이 때문에 신입생들이 대학 생활에 적응하기가 예전보다 어려워졌다. 대학생활문화원이 발표한 ‘2009년 대학생활 의견 조사’에 따르면 1학년들의 고민거리 중 첫 손가락에 꼽힌 것은 다름 아닌 ‘적응 문제’였다. ‘대인 관계 문제’와 ‘성격 문제’가 나란히 뒤따랐다. 1~3위가 모두 학업 외적인 부분에서 오는 고민으로 채워진 셈이다. 학생들의 네트워크가 취약해지는 것은 경쟁 체제가 심해지는 분위기에서 정신 건강을 악화시키는 중요한 원인이 될 수 있다. 김지은 전문위원은 “성격이 소극적인 학생들은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이것은 대인관계의 문제를 벗어나 학교 성적에도 악영향을 준다”라고 지적했다. 대학생활문화원에서 ‘캠퍼스 멘토링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짝을 지어주려고 노력하는 데에는 이런 고민이 담겨져 있다.

약대 커닝 사건, 정신적 압박감의 또 다른 표출일 수도

인문대의 한 교수는 “서울대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1등 하는 법이 아니라 남의 밑으로 숙이고 들어가는 법이야”라고 혼잣말처럼 읊조렸다. 상위권 성적에 익숙하던 학생들은 대학에서 중간 성적으로만 떨어져도 그 박탈감이 상당하다는 설명이었다. 서울대에서 강의를 해본 강사들은 주로 학생들의 ‘강한 자존감’과 그로 인해 생기는 ‘성적에 대한 강박감’을 지적한다. 시간강사 이 아무개씨(38)는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보면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매우 강하다. 하지만 대학생이 된 이후에도 부모와 단절하지 못하는 부모 관리형 세대들이라 자신들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약한 모습을 보인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서울대 약대에서 정년퇴임한 뒤 시간강사를 하고 있는 김종국 교수(인제대 석좌교수) 역시 비슷하게 지적했다. 자신이 수업을 해보니 “학생들의 성적에 대한 강박관념이 상당했다”라면서 이런 현상을 ‘1등병’이라고 설명했다. 김교수는 “어렸을 때야 1등을 했더라도 서울대에는 쟁쟁한 학생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누구나 한 번쯤 회의감에 빠질 수 있다. 그런데 막상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그것을 이겨내지 못할 정도로 학생들이 약해졌다”라고 말했다.

최근 김교수의 수업에서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서울대 약대 커닝 사건’이 발생했다. 그가 가르치는 약대 2학년 전공과목인 ‘물리약학’ 기말고사에서 몇몇 학생이 커닝을 했고, 지난 6월18일 서울대생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에 “기말고사에서 약대생들이 대놓고 부정행위를 했다”라는 고발 글이 올라오면서 이 사실이 외부로 알려졌다. 약대 학생회측은 “커닝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진 6명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라고 밝혔다. 지난해 6월 서울대 의대생들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이용해 커닝을 하다 무더기로 적발된 데 이어 또 한 번 서울대를 들썩인 사건이었다. 서울대에서 일어난 ‘치팅(부정행위)’을 어떻게 봐야 할까. 김교수는 “점수가 사람을 잡은 격이다”라며 학생들이 가지는 성적에 대한 강박관념이 일으킨 해프닝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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