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리’ 따로 없네
  •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09.07.14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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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이적료로 최고 선수 모은 레알 마드리드 페레즈 회장

▲ 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카카·크리스티아누 호날두·리옹 벤제마 선수. ⓒ연합뉴스

지금 세계 축구팬은 ‘로스갈락티코스(Los Galacticos)’ 재현에 환호하고 있다. 로스 갈락티코스는 스페인어로 은하계라는 뜻인데, 지구 최고의 축구선수를 한 팀에 모으는 플로렌티노 페레즈 로드리게즈 레알 마드리드 회장의 선수단 구성 전략을 일컫는다. 페레즈 회장은 영국 프리미어리그, 이탈리아 세리아A, 프랑스 르샹피오나에서 뛰는 세계 최고 선수를 레알 마드리드로 영입해 2기 로스 갈락티코스를 구성했다.

지난 시즌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왼쪽 공격수로 활약했던 크리스티니아누 호날두가 지난 7월6일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했다. 축구 황제 펠레가 세계 최고 현역 선수로 지목한 카카 또한 지난 7월1일 이탈리아 AC밀란 유니폼을 벗고 레알 마드리드의 흰색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프랑스 축구 스타 카림 벤제마도 로스 갈락티코스에 합류했다. 레알 마드리드는 독일 분데스리가 소속 FC바이에른뮌헨 공격형 미드필더 리베리의 이적까지 추진하고 있다. 페레즈 회장은 지난 6월 레알 마드리드 회장으로 복귀한 지 채 1개월이 지나지 않아 세계 최고의 팀을 만들어낸 것이다. 

‘세계 최고 축구클럽’ 꿈꿔

페레즈 회장은 지난 2000년 6월 레알 마드리드 회장에 첫 취임했다. 회장 선거 공약으로 그가 내세운 것은 당시 최고의 축구스타였던 루이스 피구의 영입이었다. 포르투갈 출신 피구를 영입하기 위해 레알 마드리드는 6천만 유로를 지불해야 했다. 사상 최대 이적료를 마련하기 위해 페레즈 회장은 7천8백만 유로를 빌렸다. 세계 축구계가 피구의 이적료에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기 전에 페레즈 회장은 지네딘 지단을 영입하면서 이적료 신기록을 갱신했다. 페레즈 회장은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2006년 퇴임하기까지 해마다 세계 최고 선수들을 한 명씩 영입했다. 당대 최고 스트라이커 호나우도 루이스까지 영입해 세계 최고의 공격진을 구축했다. 지난 2003년 7월에는 데이비드 베컴까지 끌어들였다. 브라질 대표 수비수 카를로스가 건재한 데다 레알 마드리드 유소년축구단 출신으로 슈퍼스타로 성장한 공격수 라울과 골키퍼 카시야스까지 가세해 레알 마드리드는 지구상 최강의 축구팀으로 등극했다. 2004년 조사에서 세계 10대 선수 가운데 다섯 명이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1기 로스 갈락티코스는 최강이었다.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 우승컵을 연거푸 거머쥐었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우승 실적이나 축구 흥행에 있어 레알 마드리드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축구 클럽으로 자리 잡았다. 레알 마드리드가 쇠퇴하기 시작한 것은 페레즈 회장의 퇴임과 맞물렸다.

페레즈 회장이 지난 2006년 임기를 마치고 떠나자 레알 마드리드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피구가 이적하고 지단이 은퇴했다. 호나우도는 부상과 체중 조절 실패로 과거 실력을 회복하지 못하다가 브라질 대표팀 동료였던 카를로스와 함께 팀을 떠났다. 페레즈의 퇴임과 함께 로스 갈락티코스가 완전 해체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올해 레알 마드리드 성적은 형편없었다. 스페인 축구리그 소속 경쟁팀인 바르셀로나에게 프리메라리가 우승컵을 양보해야 했다.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소속 리버풀에게 패퇴하고 말았다.

레알 마드리드의 팬들은 ‘은하함대 선장의 귀환’을 갈망했다. 구단 재정 운영과 관련해 개인 보증을 서는 조건으로 페레즈 회장은 복귀했다. 그는 1세기가 넘는 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처음 선거를 거치지 않고 지난 6월 회장에 취임했다. 페레즈 회장은 스페인의 유명 사업가이자 정치인이다. 스페인 최대 건설업체인 ACS의 최고경영자답게 페레즈 회장은 축구클럽 운영에 ‘경영’ 개념을 도입했다. 그가 2000년 6월 처음 회장에 취임하기 전까지 축구클럽은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사교모임처럼 운영되었다. 페레즈 회장은 “축구클럽은 축구라는 게임을 모티브로 삼아 갖가지 콘텐츠를 제공하는 기업이다”라고 규정했다. 페레즈 회장은 레알 마드리드의 비전을  ‘세계 최고 축구클럽’이라고 제시한다. 축구 팬의 저변을 넓히고 레알 마드리드라는 브랜드에 대한 몰입도를 높여 관중과 브랜드를 잇는 매개체 역할을 수행한다는 미션까지 정해 클럽 운영의 방향과 과제를 명쾌하게 제시했다.

높은 몸값에 걸맞은 수익 모델 만들어

페레즈 회장은 ‘훌륭한 선수는 비싸더라도 제값을 한다’라는 지론을 신봉한다. 몸값이 비싼 선수를 영입하더라도 그로 인해 구단 수입은 몸값보다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페레즈 회장은 선수 몸값을 지나치게 끌어올린다는 비난에 개의치 않는다. 홍세 앙겔 산체스 전 레알 마드리드 마케팅 임원은 “톰 크루즈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가 가치가 높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레알 마드리드는 소속 선수들이 올리는 초상권 수입의 50%를 구단 수입으로 가져간다. 초상권으로 인한 수입은 선수 몫이라는 상식을 깬 것이다.

페레즈 회장은 우수한 선수를 영입할 수 있는 재무적 유연성을 갖추기 위해 사업 구조를 재편했다. 브랜드 마케팅에 총력을 기울였고 갖가지 콘텐츠를 상품으로 내놓았다. 레알 마드리드의 브랜드와 콘텐츠를 최대한 활용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수익모델인 셈이다. 이를 위해 페레즈 회장은 월트디즈니가 영화 <라이온 킹>으로 돈을 버는 행태를 연구했다. 시청각 판권, 비디오게임, 머천다이징 상품, 인터넷, 비디오, 입장권과 경기장 개발 같은 모든 영역에서 월트디즈니 사를 벤치마킹했다.

연구 결과를 토대로 페레즈 회장은 소시아다드믹스타라는 독립법인을 만들어 시청각 관리를 제외하고 레알 마드리드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권리를 소유하고 관리하게끔 했다. 이 회사는 머천다이징과 라이센싱, 스폰서십과 선수 초상권, 신기술 사업에 이르기까지 레알 마드리드의 모든 사업에 관여했다. 페레즈 회장은 회사의 지분 30%를 스페인 은행과 언론 그룹에 팔아 1억1천7백만 유로를 확보했다.

페레즈 회장은 레알 마드리드의 공식 후원업체로 아디다스와 지멘스 모바일을 선정했다. 지멘스는 해마다 1천2백만 유로를 레알 마드리드에게 지불한다. 2차 후원업체로는 아우디, 펩시, 텔레포니카가 있다.

그 밖에 맥주, 생활용품, 의료, 음료, 시계, 햄 업체까지 후원업체로 활동한다. 레알 마드리드는 스페인 통신업체 텔레포니카와 네 가지 계약을 맺고 레알 마드리드 콘텐츠를 인터넷, 초고속통신망, 무선통신망으로 스페인과 14개 국가에 전송한다. 또, 스페인 내 네 개 소매 유통점을 운영해 2천만 유로가 넘는 매출을 거두고 있다. 페레즈 회장은 수입 다변화 조처로 갖가지 권리를 팔았다. 경기장 곳곳에 광고 보드를 설치해 팔았다. TV 중계에서 보이는 곳에 위치한 광고 보드는 전국적인 규모의 기업에게 팔았고, 관중들에게만 보이는 광고판은 지역에 기반을 둔 기업들에게 팔았다.

스타 선수만 있고 스타 감독은 없어

▲ 7월6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입단식에서 손을 흔드는 페레즈 회장. ⓒ연합뉴스

레알 마드리드는 유료 가입자가 8만명이나 되는 TV방송국을 운영하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 경기는 스페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유료 콘텐츠이다. 웹사이트는 한 달에 1천5백만명이 다녀간다. 웹사이트에서 발생하는 매출은 1백만 유로인데 주로 셔츠 판매 수입이다. 유럽 축구클럽들은 인터넷 웹사이트 서비스에 4백75만 유로라는 비용을 지불해야 했지만, 앞으로 10년 동안 웹사이트를 통해 거둘 기대 수입은 7억7천7백만 유로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레알 마드리드는 목표 시장을 전세계로 확장했다. 축구팬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고자 아시안 투어, 축구교실, 팬클럽, 기념품 유통점, 식당과 카페를 늘려나가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는 일본 투어에서 하루 만에 유니폼 판매로 21만 달러를 벌어들이기도 했다.

레알 마드리드는 2013년까지 중국 머천다이징 상품 시장의 10%를 차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또, 세계 최고의 스포츠 상품 시장인 미국을 공략하기 위해 브랜드 인지도 제고와 수입 다변화 전략을 함께 추진했다. 풀뿌리부터 축구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훈련 비디오, 만화, 복합 상품 같은 콘텐츠를 개발하고 유소년 축구 조직과 공동 스폰서십 활동을 통해 팬들의 충성도를 높여갔다. 게다가 축구 교실이나 레알 마드리드 유소년팀을 만들어 인지도나 브랜드 호감도 같은 무형자산을 축적하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의 성장에 가장 큰 걸림돌은 로스 갈락티코스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다. 슈퍼스타는 제한되어 있으므로 영입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영국의 축구 명문 첼시를 매입한 유태계 러시아 석유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선수 영입에 오일머니를 풀고 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시티도 선수 영입에 거액의 이적료를 아낌없이 내놓고 있다. 그러다 보니 로스 갈락티코스를 구성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었다. 그만큼 매출도 많이 늘어났지만 투자 수익률은 그리 높지 못했다.

이와 달리 세계 최고의 축구클럽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어린 선수들을 발굴했다. 데이비드 베컴이나 폴 스콜스, 라이언 긱스 같은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자체적으로 키워내 엄청난 투자 수익률을 거둘 수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20세기 최고의 축구클럽이지만 21세기 최고의 축구클럽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세계 최고의 축구클럽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훌륭한 경영진 못지않게 알렉스 퍼거슨이라는 최고의 감독이 있었기 때문이다. 퍼거슨 감독은 스타플레이어를 영입하는 데 엄청난 몸값을 치르는 것을 싫어한다. 그는 잠재성이 탁월한 선수들을 초기에 영입해 단련해 나간다. 퍼거슨 감독은 그가 발굴한 선수들로 세계 최고의 축구팀을 구성해 경기를 지배한다.

레알 마드리드는 페레즈라는 훌륭한 경영자를 갖고 있지만 퍼거슨 같은 걸출한 감독을 거느리지 못했다. 축구라는 경기를 지배할 수 있는 사령탑과 축구 클럽 경영을 책임질 수 있는 경영진 사이의 균형과 공존이 필요하다. 레알 마드리드는 후자가 없다. 축구팬들이 2기 로스 갈락티코스에 환호하면서 그 화려함 뒤에 숨겨진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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