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 국내 확산 가속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9.07.14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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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철 사망자 발생 가능성 커…충분한 백신 확보 어려울 듯

ⓒ시사저널 임준선


“정중동(靜中動)이다.” 최근의 신종 인플루엔자A(이하 신종플루) 상황을 전문가들은 이렇게 표현한다. 신종플루 확산이 주춤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심상치 않다는 의미이다. 이런 상황을 주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신종플루로 인해 학교가 임시 휴교하고 TV 드라마 촬영이 취소되었다. 심지어 검역 인력까지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사례가 발생했다. 신종플루는 그 위세를 더하고 있는 것이다. 숫자놀음으로만 보였던 신종플루 감염자 수에 ‘내’가 포함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말 호주의 자매결연 학교를 방문하고 돌아온 전북 지역의 초등학생 8명 중 두 명이 지난 7월2일 신종플루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학교는 지난 7월3일부터 7일까지 임시 휴교했다. 시병진 전북 정읍서초등학교 교장은 8일 “신종플루의 확산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8백50명 전교생에 대해 임시 휴교 조치를 내렸다. 이후 질병관리본부와 보건당국의 의견을 종합해서 8일부터 학생들이 다시 등교했다. 호주를 다녀온 학생들이 왕따를 당하지 않도록 지도하는 한편, 전교생에게 손 씻기 등 위생교육을 철저히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 신종플루가 급격하게 번질 경우 휴교 사태가 올지도 모른다. ⓒ연합뉴스

SBS 드라마 <태양을 삼켜라>의 제작진 네 명도 신종플루에 감염되었다. 이들은 지난 6월14일부터 7월2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촬영하고 돌아온 후 감기 증세를 보였다. 7일로 예정되었던 제작 발표회는 취소되었고 촬영 자체도 전면 중단되었다. SBS측은 “제작진 네 명 중 한 명은 완치되어 퇴원했다. 나머지도 완치 단계에 있기 때문에 곧 퇴원할 것으로 안다. 보건당국의 허가를 받아 11일부터 촬영을 재개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검역 인력도 신종플루에 감염되었다. 지난 5월15일부터 인천국제공항에서 검역 보조 활동을 해오던 군인 세 명이 지난 5일 신종플루에 감염된 것으로 판명 났다. 이들은 현재 치료제를 복용하고 격리 수용된 상태이다. 마스크와 방역복, 모자 등을 착용하고 안전 수칙에 따라 검역 활동을 벌였지만 공기를 통한 감염은 막을 도리가 없었다. 충남대 서상희 수의과학대학 교수는 “일반 계절성 독감과 달리 신종플루 바이러스는 직접 폐로 들어간다. 그만큼 치명적이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신종플루를 계절성 독감 정도로 치부한다. 국내에서는 사망자가 생기지 않았다는 이유이다.

그러나 날이 서늘해지는 가을철이 되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신종플루로 인한 폐렴 환자가 속출할 것이고 사망자가 생길 수도 있다. 현재 신종플루 바이러스 활동이 수면으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안심할 때가 아니다”라고 경고했다. 보건복지가족부 중앙인플루엔자대책본부에 따르면 7월8일 현재 한국의 감염자 수는 3백17명이다. 지난 6월28일 2백명을 돌파한 지 불과 10일만이다. 이 확산 속도는 점점 빨라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이같은 전망은 세계보건기구(WHO)의 공식 집계를 분석해보면 어느 정도 실감할 수 있다.

ⓒ자료:WHO

내 감염자, 열흘 만에 1백17명 늘어

지난 5월20일 전세계 신종플루 감염자는 1만명을 넘었다. 신종플루가 발생한 지 1개월만의 일이다. 감염자 숫자는 지난 6월5일 2만명으로 늘었다. 1만명의 감염자가 추가로 발생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1개월에서 15일로 줄었다. 또, 2만명이던 신종플루 감염자는 6월16일 3만명으로 늘었다. 불과 10일 만에 1만명이 추가로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지난 6월11일 신종플루를 세계적 대유행(팬데믹·pandemic)으로 규정한 WHO는 6일 “신종플루 감염자가 1백35개국 9만4천5백12명으로 늘어났다”라고 밝혔다.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한 지 3개월도 안 된 시점에 감염자가 10만명에 육박한 것이다.

신종플루 감염자 수가 잰걸음으로 증가하는 반면, 사망자 수는 성큼성큼 늘어나고 있다. 신종플루 발생 1개월만인 지난 5월20일 사망자는 80명에 불과했다. 이후 다시 1개월이 조금 넘은 시점인 7월6일 사망자는 4백29명으로 집계되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6일 제네바 유엔 유럽본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상대적으로 진정세를 보이는 신종플루 상황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신종플루는 전세계의 문제이므로 국제적인 연대가 요구된다”라며 신종플루에 대한 경계를 늦출 때가 아님을 강조했다.

세계 각국은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유럽연합(EU)은 신종플루의 급속한 확산에 대처하기 위해 유럽 차원의 공동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지난 6일 스웨덴에 모인 EU 보건장관들은 지금보다 더 치명적일 수 있는 신종플루 2차 감염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하고 오는 10월 다시 유럽 보건장관 회담을 열기로 했다. 스웨덴의 마리아 라르손 보건장관은 “어린이들이 여름휴가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갈 때 바이러스가 급속히 퍼질 위험이 있다. 경미한 형태의 신종플루뿐만 아니라 좀더 강력한 형태의 신종플루에도 대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U 질병통제센터에 따르면 현재 영국의 7천5백명을 포함해 약 1만3백명의 신종플루 감염자가 유럽 전역에 퍼져 있다.

현재까지 1천7백90명의 감염자가 생긴 일본은 연내 2천만명분의 백신을 확보하기로 했다. 후생노동성은 백신 제조사들이 7월 초순부터 제조에 들어가므로 11월에는 백신 접종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일본 도쿄 의대는 1주일에 감염자 12만명이 발생할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일본은 치밀하게 백신을 확보할 계획을 세우면서도 외부로 구체적인 내용을 알리지 않고 있다. 가난한 나라에 백신을 먼저 제공해야 한다는 국제 사회의 압박을 받게 되면 자칫 자국민을 위한 백신을 확보하는 데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전세계 신종플루 감염자의 거의 절반이 있는 미국은 신종플루 문제를 심각한 수준으로 보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지난 2일 “지난 한 주 동안 미국 내 신종플루 환자가 거의 3만4천명으로 증가했다”라고 밝혔다. 미국 내 사망자 수는 지난 2일 1백70명으로 전주 대비 34%나 급증한 수치이다. 실제 감염자는 확인된 숫자보다 더 많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CDC의 린 피넬리 박사는 지난달 25일 백신자문회의에서 “미국의 신종플루 감염자가 100만명에 이를 수 있다. 수학적 모델에 바탕을 두고 추정한 결과 신종플루에 감염되었지만 검사를 받지 않은 사람이 그 정도 규모가 될 수도 있다”라고 밝혔다.

한국 정부는 신종플루 백신을 국민 27%(약 1천3백만명, 2천6백만도즈)까지 확보한다는 방안을 밝혔다. 필요한 예산은 1천9백30억원이다. 독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영국은 인구 대비 100% 백신을 확보했다. 프랑스, 호주, 홍콩도 25~40%까지 확보했다. 더 큰 문제는 백신 개발 완료 시기이다. 정부는 11월 말부터 접종할 수 있도록 물량을 확보할 계획이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독감 백신 제조 시설을 갖춘 녹십자도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감염자 크게 늘면 백신 가격 급등할 것

그러나 정부와 녹십자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를 지켜보는 국민은 걱정스럽다. 정부는 백신 1도즈당 7천원 수준으로 예정하고 있다. 반면, 외국계 제약사들이 요구하는 백신 가격은 1만~1만3천원 수준이다. 가격 협상이 난항을 거듭할 경우 백신 개발 완료 시기는 불투명해질 수 있다. 게다가 가을철 신종플루 감염자가 급속하게 증가할 경우 백신 가격은 더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

감염질환 전문가인 이환종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정부는 백신을 만든 경험이 있는 다국적 제약사로부터 백신을 확보하지 못했다. 다른 나라는 이미 다국적 제약사와 계약을 맺어놓은 상태이다. 이제 우리는 녹십자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충분한 백신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라고 우려했다. 신종플루 전문가들의 시각을 종합해보면, 신종플루 현황은 국민 건강을 볼모로 잡고 있는 살얼음판과 다름이 없다.


▲ 인천공항의 검역관들이 입국자들을 검역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종플루 공포에 국민은 불안하다. 불안 심리는 사회적 현상으로 배어나오고 있다. 환율 하락 등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 신종플루 여파까지 겹친 악재로 인해 특히 항공·여행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매달 전년 대비 10∼25%씩 급증하던 외국인 관광객 증가율이 7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국관광공사와 여행업계에 따르면 지난 5월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입국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57만2백24명보다 불과 0.8% 늘어난 57만4천5백59명으로 나타났다. 5월 한 달간 해외로 출국한 내국인 수는 지난해 5월 1백9만9천9백77명보다 33% 줄어든 73만7천3백96명에 그쳤다. 올 1~5월까지 출국한 내국인 역시 3백74만6백63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5백56만5천6백88명보다 32.8%가 감소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인천국제공항을 이용하는 여행객도 6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 올해 6월까지 국제선과 국내선을 이용한 여행객은 1천3백57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2.3% 줄었다. 대한항공은 올 2분기 영업적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왔다. 현대증권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2분기 약 3백47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이에 대해 오석중 대한항공 홍보부장은 “본래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신종플루 여파까지 겹치면서 여행객이 감소했다”라고 분석했다. 한편, 외교통상부는 7일 신종플루 확진 환자가 새로 발생한 몰타와 보스니아ㆍ헤르체고비나, 팔라우 등 3개국을 여행경보 1단계인 여행 유의 지역으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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