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드레스에 기모노 선 응용 ‘유미 라인’ 만들어”
  • 김세원 편집위원 ()
  • 승인 2009.07.21 16:5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계적인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유미 카츠라 인터뷰

ⓒ시사저널 임영무

평생을 웨딩문화 보급에 바친 일본의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유미 카츠라씨(79)는 늘 그렇듯이 커다란 흑백의 터번에 같은 무늬의 흑백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일본은 물론, 서울 뉴욕 파리 로마 바르셀로나 모스크바 모나코 베이징 등 지난 30여 년 간 세계 곳곳의 대도시에서 열린 자신의 콜렉션쇼 피날레 때면 그녀는 모델들의 박수를 받으며 터번을 쓰고 무대로 걸어 나왔다. 1993년 부활절 때 당시 교황인 고 요한 바오로 2세가 착용했던 제복을 디자인하고 교황과 만났을 때도, 1999년 동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이탈리아 오트쿠튀르협회의 정회원이 되어 로마 오트쿠튀르 컬렉션에 참가했을 때도 흑백의 터번과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서울에 자신의 부티크를 설립하기 위해 2박3일의 짧은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한 그녀를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만났다.

언제부터 터번을 쓰기 시작했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부터인 것 같다. (도쿄 근교에 패션학교를 설립해 운영하던 어머니는 오늘의 카츠라 씨를 있게 만든 멘토이자 후원자였다.) 장례를 치르랴, 패션학교 운영을 떠맡으랴, 미용실에 갈 시간이 없어 터번을 썼다.”

그런데 왜 하필 터번인가? 모자도 아니고.

“이왕 머리에 뭔가를 쓰려면 유미만의 스타일을 만들라고 조언한 것은 남편이었다. 남편의 권유로 터번을 써보았는데 써보니까 잘 어울렸다. 머리 손질에 시간을 들일 필요도 없어 계속 쓰게 되었다.” (그녀는 100가지가 넘는 터번을 가지고 있다. 모두 같은 디자이너의 작품으로 상당히 고가라고 한다.)

카츠라 씨는 일본 쿄리츠 여대 가정경제학부 양재학과를 졸업하고 어머니가 운영하던 패션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서양 복식을 지도했다. 어머니의 권유로 1960년 서른 나이에 유학길에 올랐다. 파리의상학교에서 오트쿠튀르를 공부하고 돌아와 1964년 첫 매장을 열었다. 그해 일본 최초로 서양 웨딩드레스 패션쇼를 열었다. 당시만 해도 일본에서는 신부들이 혼례용 기모노를 입고 결혼하던 때였다. 많은 이가 웨딩드레스의 아름다움에 찬사를 보냈지만 기모노면 되었지 무슨 웨딩드레스냐는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그녀는 기모노의 선을 응용한 서양식 웨딩드레스를 보급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다시 유럽으로 날아가 유럽의 다양한 웨딩문화를 체험하고 돌아와 이른바 ‘유미 라인’을 창안했다. 수직으로 떨어지면서도 풍성한 곡선이 가미된 디자인으로 서양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얼굴이 크고 하체가 짧은 동양 여성의 신체적 결점을 보완하는 데 효과적인 스타일이었다.

지금까지 45년 동안 지구상에서 65만명이 넘는 세계 각국의 신부들이 유미의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그 신부들 중에는 일본의 왕세자비도 있고 올림픽 체조요정 나디아 코마네치가 있는가 하면, 최정상으로 등극했던 스모 선수 고니시키의 부인과 일본 출신 세계적인 재벌의 딸도 있다. 지난주에는 한국의 한 재벌가가 도쿄에 있는 매장에서 드레스를 맞췄다. 그동안 그녀가 디자인한 웨딩드레스들 중에서 미키모토 진주와 1천개의 다이아몬드를 수놓은 1백20억원짜리 웨딩드레스는 2002년 세계 최고가 웨딩드레스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2001년 일본 고베시의 신년회를 위해 만든 2천1m짜리 면사포도 세계에서 가장 긴 면사포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캐서린 터너와 마이클 더글라스가 주연한 할리우드 영화 <나일의 보석>에서 캐서린 터너가 결혼식 때 입었던 드레스도 그녀의 작품이다.

유미 카츠라 씨가 한 해 벌어들이는 돈은 약 1백30억 엔(약 1천8백억원). 도쿄 오사카 치바의 직영점 네 곳을 비롯해 파리, 상하이, 대련 등 일본과 세계 각지에 75개 프랜차이즈 부티크를 운영 중이다. 작은 궁전처럼 꾸며진 그의 부티크에 들어서면 웨딩드레스뿐만 아니라 층마다 결혼을 앞둔 커플을 위한 다양한 혼수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홈인테리어·식기·장갑·신부 모자·옻칠 장식함·앨범·앞치마·스카프에서 신랑 예복과 넥타이까지 34개 웨딩 관련 라이선스 사업도 전개 중이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자세 한 번 흐트러뜨리지 않고 아직도 웃을 때면 여학생처럼 얼굴을 가리며 웃는 이 여성이 자신의 이름을 딴 ‘유미카츠라 인터내셔널’과 ‘유미카츠라 웨딩시스템’이라는 두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글로벌 CEO라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스스로 “신부를 위해 태어났다”라고 할 만큼 카츠라 씨는 웨딩드레스 디자인뿐만 아니라 낭만적이고 품위 있는 웨딩문화를 보급하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그녀는 1969년 웨딩 관련 컨설턴트를 양성하기 위해 전일본웨딩협회를 창설해 40년 동안 수천 명의 웨딩컨설턴트를 길러냈다.   

웨딩문화 전도사로서 결혼 풍속도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

옛날 신부들은 여성스럽고 품위가 있었던 반면 갈수록 나라를 불문하고 여성들이 더욱 적극적이고 강해지는 것 같다. 몇 년 전 <프러포즈>라는 책을 출판할 때 젊은 커플 6백명을 대상으로 누가 청혼을 했는지 조사해 보니 남녀 비율이 5 대 5였다. 1970년대만 해도 상상도 못할 일이다.” (2006년 출판 후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프러포즈>는 일본 전역에서 최고의 청혼 장소 100곳을 선정해 소개했다.)

카츠라 씨는 서울시가 젊은 연인들을 위해 낭만적이면서도 품위 있게 청혼할 수 있는 프러포즈 장소를 지정해 줄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서울, 부산 등에서 여러 차례 패션쇼를 열어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한 그녀는 서울의 경우는 서울광장이나 남산, 서울타워를 후보 장소로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갈수록 결혼 연령이 늦어지는 추세인데, 이런 현상이 혹시 웨딩드레스의 스타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나?

나이가 많은 신부들일수록 밑단이 넓게 퍼지는 풍성한 드레스보다는 몸매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인어 스타일을 선호하는 것 같다. 섹시미를 추구한다고 할까.

한국에서도 재혼 커플이 부쩍 늘어나고 있는데, 재혼의 경우에 웨딩드레스 패션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재혼하는 여성들은 신랑이나 어머니와 같이 오기보다는 혼자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드레스 스타일도 소녀 같은 느낌을, 공주형보다는 이브닝드레스에 가까운 슬림라인을 선호하는 편이다.

한국과 일본의 결혼 풍속을 비교한다면.

처음에 웨딩드레스를 입었다가 나중에 전통 의상으로 갈아입는 점은 비슷한 것 같다. 한국에서도 폐백을 할 때 한복을 입는다고 들었다. 일본에서도 결혼식을 한 뒤 기모노를 입는 의식이 있다. 일본에서는 거의 신부가 신랑과 함께 웨딩드레스를 고르러 온다. 신랑과 신부를 함께 보면 결혼식장에서 서로 어울리는 커플패션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신랑의 예복도 시대 변화를 타는가?

1970~80년대는 비즈니스 정장, 1990년대에는 턱시도 정장을 많이 입었는데 요즘 일본에서는 앞쪽이 짧고 뒤가 긴 튜닉코트를 많이 입는다. 원래 오후 6시 이전에는 턱시도를 입지 않는 것이 서양의 예절이다.

그녀는 고희를 훨씬 넘긴 나이에도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으로 세계를 누비며 활동하고 있다. 2003년 파리의 명품 거리로 유명한 캉봉가 샤넬 부티크 바로 앞에 자신의 웨딩드레스 숍을 열었고, 지난해에는 일본 콜롬비아 수교 100주년 기념 패션쇼를 개최하면서 ‘유미 로즈 라인’을 창안해 3천송이의 장미로 장식한 웨딩드레스를 선보였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