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평대군 명필 <금니사경> 두 얼굴
  • 혜문 스님 (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총장) ()
  • 승인 2009.07.21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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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하버드 대학 소장품, 동일인 아닐 가능성 커

▲ 하버드 대학 소장품 .

우리나라 역대 최고의 명필 중에 ‘안평대군’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세종대왕의 아들로 태어나 예술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그의 글씨는 당시 명나라까지 이름을 떨쳤고, 조맹부체(송설체)에 능해 조선 시대 서체의 최고봉을 이루었다.

안타까운 것은 안평대군의 친필을 쉽게 접할 수 없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안평대군의 진품으로 확인된 것은 국보 제238호 <소원화개첩>이 유일하다. 하지만 이마저도 1987년 분실된 후 행방이 묘연하다. 공식적으로 안평대군의 진품으로 감정된 작품은 한 점도 없는 셈이다. 안평대군의 우아한 서체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일본까지 가야 한다. 일본 천리 대학이 소장하고 있는 <몽유도원도> 발문에서나 볼 수 있다. 우리 문화재를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필자는 지난 5월28일 미국 하버드 대학 아서세클러 박물관에서 안평대군의 <지장경 금니사경>을 만나 볼 수 있었다. 푸른색 감지 위에 금니로 써내려간 이 <금니사경>(금가루를 아교에 개어 불경을 베껴 쓴 경문)은 표구를 포함해 세로 40.5cm 가로 21.6cm의 크기이다. 여기에는 <지장경> 7행 20줄이 적혀 있다. 표구의 비단에는 후대 누군가가 ‘안평대군 진적’이라는 감정을 적어 놓았다.

이 작품은 원래 주한 미국 대사관 문정관으로 근무한 그레고리 헨더슨이 수집한 컬렉션 중의 하나이다. 지난해 10월 말 헨더슨 컬렉션이 경매로 처분되기 시작했고, 하버드 대학이 이를 구입하면서 하버드 대학 소장품이 되었다. 이 작품의 진품 여부에 대해 하버드 대학 로저마우리 교수는 ‘아마도’라고 답했다. 진품이라는 말이다.

하버드 대학은 미술사 학자들을 동원해 지질, 품격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한국 전문가의 의견도 들었다고 한다. 다만, 이 작품이 사경첩 중에 일부이고, 낙관이 없어서 ‘진품’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그럼에도 여러 정황과 작품 수준을 근거로 판단할 때 진품일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공통점 많지만 필적 달라 의구심

안평대군의 <금니사경>은 국내에서도 몇 번 소개된 적이 있다. 지난 2005년 김명성씨는 ‘매죽헌필첩’이라고 쓴 오동나무 표지 안에 16폭으로 꾸민 안평대군의 <금니사경>을 공개했다.

이것은 보존 상태가 완벽하고 글씨도 좋아 안평대군의 추정 유품 가운데 최고 수준의 작품으로 꼽힌다. ‘안평대군의 글씨는 탁본이나 비문 외에도 아주 드물어 존재 자체만으로도 국보급’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글씨는 지난해와 올해 예술의전당과 전북도립미술관 등에서 ‘아라재 소장 명품전’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된 적이 있다.

하버드 대학 <금니사경>과 아라재 <금니사경>을 보면 여러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먼저 두 작품 모두 조맹부체이며, 지장보살 본원경의 내용을 사경했다. 또, 가로 7줄, 세로 20자로 규격이 동일하고 감지에 쓰인 점 등이 같다. 이렇게 볼 때 아라재 소장작과 하버드 소장작은 동일한 지장보살 사경첩이 각각 흩어진 것이 아닐까 추정해 본다. 

그런데 두 작품은 한 사람이 쓴 것이라고 보기에는 의문점이 있다. 동일인의 필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글씨 수준으로 본다면 하버드 대학 소장품이 더 나은 것 같다. 두 작품을 비교 분석하고 연구하는 활동이 활발해지면 진위 논란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에 있는 <몽유도원도>와 하버드 대학의 <금니사경> 등 해외에 흩어져 있는 안평대군의 작품이 국내로 모이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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