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난장판 국회
  • 송진혁 (언론인) ()
  • 승인 2009.07.28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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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진혁 (언론인)
우리 정치에서 잘잘못을 따지기도 이제 지쳤다. 지난주 미디어관계법을 처리한 국회의 난장판은 정말 꼴불견이었다. 얼마 전 서울에 온 해외 한인회 간부들이 외국에 살면서 가장 부끄러웠던 일이 모국의 국회 난장판이었다고 했다는데, 국회는 이번에 또 해외 동포들을 크게 부끄럽게 만들었다. 해외 동포뿐이겠는가. 오히려 그들보다 훨씬 더 크게 좌절감을 느끼는 국민이 많을 것이다. 이런 국회 꼴을 보고 국민이 기댈 지도층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인가 하는 절망감을 느끼는 국민도 많을 것이다.  TV에서 그날의 난장판을 지켜본 많은 사람으로부터 “저런 국회는 해산시켜야 해!” “저런 X들에게 세비는 왜 주나”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국민이 직접 뽑은 국회가 한마디로 커다란 ‘국민적 스트레스’의 근원이 되고 있는 셈이다. 아무리 미디어관계법이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해도 그것을 성사시킨 그 과정의 추악함으로 인해 당분간은 그 법을 지지하는 사람조차 넌더리를 낼 판이다.

국회 난장판은 정말 우리 정치의 고질이다. 군사 정권 때에는 소수 야당이 거대 여당에 맞서 몸으로 막고 회의장을 점거하고 의사봉을 빼앗는 등의 극한 투쟁이 정당화되었다. 그로 인해 발생한 국회 폭력 사태는 여당의 책임으로 간주되었다. 야당의 극한 투쟁은 오히려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야당의 저지를 피하기 위해 여당이 국회도서관으로, 휴게실로 장소를 바꾸어 환장(換場) 본회의를 열어 ‘환장(換腸) 국회’라는 조롱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민주화가 되었다고 한 지 2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난장판·폭력 사태는 마찬가지이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이 원인을 분석하고 처방을 제시했지만 정치 집단의 체질은 바뀌지 않았다. 이번 미디어관계법을 보아도 여야가 정말 죽기 살기로 싸울 일이었는지는 의심스럽다는 전문가가 많다. 야당이 극한 반대한 대기업과 신문의 방송 참여도 지분율 조정으로 타협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 법이 다음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염려에 대해서도, 대선이 있는 2012년 말까지 시행을 유보키로 해 문제가 될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야당은 미디어법에 관한 한 거의 타협 거부의 자세로 나왔다. 큰 신문과 대기업의 방송 진출은 안 된다는 것이다. 야당의 이런 비타협적 자세가 곧 여당의 등을 떠밀어 의장 직권상정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쓰도록 강요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그리고 의회 정치에서 소수가 자기 주장만 고집하는 것은 여당에 의해 대표되는 더 많은 국민을 결과적으로 무시한다는 논리가 되기 때문에 문제가 많다.

민주화된 지 20년 지났는데도 구태 못 버려

앞으로가 더 심각하다. 야당은 벌써 의원직 사퇴를 말하고 다시 장외 투쟁을 벼르고 있다. 바로 정권 퇴진 운동을 시작하자는 소리도 나온다. ‘법처리 과정에서 대리 투표가 있었다’ ‘일사부재의(一事不再議) 원칙에 어긋나는 방송법 처리는 무효이다’ 하는 등의 시비도 제기되어 파문은 오래 끌 전망이다. 여야 간 감정 대립도 격화되었다. 정치 마비가 오래갈 것이 뻔하고, 모처럼 제기된 개헌론 같은 것도 제대로 논의될 분위기가 아니어서 물 건너 갈 공산이 커진 것 같다. 10월 재·보선, 내년의 지방선거를 겨냥한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대선을 향한 사생결단의 대결 준비를 서두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결국, 정치는 재개되어야 하고 국회는 정상화해야 한다. 아무리 싸우고 밉더라도 정치 집단은 서로 만나야 하고 국회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야당이 장외 투쟁 운운하지만 국회보다 유리한 투쟁 장소가 없다. 의원직 사퇴를 말하지만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 쉽게 버리지도 않겠지만 버려서는 안 될 무거운 책임과 의무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대립 기간은 짧을수록 좋고 국회 정상화는 빠를수록 좋다는 점을 여야 모두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기네 이해관계와 감정보다는 상심하고 화난 국민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과연 국민 볼 얼굴이 있는가. 여야 당내에는 그런대로 생각도 깊고 반듯한 인물들도 여럿 있는 것으로 아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런 사람은 보이지도 않고 억지나 쓰는 사람들만 자주 나와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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