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던 리그에서 박지성 대 이어라
  •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 ()
  • 승인 2009.07.28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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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직행하는 FC서울 이청용

▲ 잉글랜드 프로축구 볼턴 원더러스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은 FC서울 이청용 선수가 출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FC서울의 이청용이 꿈에 그리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로 향한다. 행선지는 볼턴 원더러스. 이적료는 4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무리 절차를 밟기 위해 영국으로 떠난 이청용이 볼턴 선수로서 그라운드를 밟는 것은 시간 문제로 보인다. 박지성·이영표·설기현·이동국·김두현·조원희에 이은 일곱 번째 프리미어리거의 등장인 셈이다.

한국 선수들의 유럽행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박지성·이영표·설기현으로 대별되는 ‘단계형’과, 안정환·이동국(여러 해 전 잠시 독일을 경험하기는 했다)·이천수 같은 ‘직행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는 빅리그가 아닌 유럽 리그 혹은 빅리그의 하부리그를 경험한 후 단계적으로 최고 무대에 입성했다. 후자는 이탈리아, 잉글랜드, 스페인을 향해 단숨에 대륙을 건너뛰었다. 이들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성공적이었는지는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마무리가 불운하기는 했으나 페루자에서 나름대로 선전을 펼쳤던 안정환을 제외하더라도, 이동국과 이천수가 빅리그에서 선보인 기량은 큰 실망감을 주었다. 반면, 여전히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주전 선수로 활약하는 박지성과, 이제는 정점으로부터 내려오고 있는 이영표·설기현도 빅리그에서 ‘괜찮았던 한때’를 보냈다. 한마디로 ‘단계형’의 경우는 실패율이 낮았다. 미래가 어찌될지는 알 수 없지만 모나코의 박주영도 일단은 적절한 수준의 리그에서 경험치를 늘려가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 분류법에서 이청용은 ‘직행형’의 길을 선택했다. 따라서 위험 부담은 필연적이다. 무엇보다 프리미어리그는 수준도 수준이거니와 지금의 축구 세계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리그이다. 잔류냐, 강등이냐에 따라 클럽의 제반 사정이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하는 프리미어리그의 속성상, 특히 중하위권에서 헤매는 클럽들에게 이적료를 들인 외국 선수에게 하염없는 인내심을 가질 수 있는 여유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제 만 21세가 된 청년이 생소한 이국땅에서 맞이할 이러한 상황은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실패율이 높았다는 사실만으로 또 다른 실패를 예상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이청용은 나이는 적지만 이전에 진출했던 선수들에 비해 ‘신세대’라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요즘 신세대 선수들은 프리미어리그를 시청하며 성장했고, 그곳의 선수들을 모방하려 든다. 몸으로는 경험해 보지 못했으나 적어도 머릿속에서만큼은 생소하지 않다. 

전방위 찬스메이커 역할 가능해

가장 궁금증을 자아내는 의문은 이청용과 볼턴의 궁합이다. 이 의문에 대한 필자의 견해는 “나쁘지 않다”라는 것이다. 우선 볼턴은 현재 측면 자원이 확실하지 않은 팀이다. 볼턴의 가장 확실한 측면 미드필더는 주로 왼쪽에서 활약하는 매튜 테일러. 그리고 왼쪽 윙백으로서 돌파력이 있는 리카르도 가드너를 미드필드로 올려 기용하는 정도이다. 4-5-1 포메이션을 채택하면 볼턴의 오른쪽에는 간판 공격수 케빈 데이비스가 활용되고는 했으나 그는 돌파형 날개와는 거리가 멀다. 새로 영입된 숀 데이비스가 오른쪽 측면을 얼마간 소화할 수 있지만 측면보다는 중앙 미드필드에 더 적합한 선수이다. 조이 오브라이언에게 오른쪽 미드필드를 믿고 맡기기도 어렵다.

따라서 볼턴에게 있어 이청용은 오른쪽 미드필드 옵션으로 매우 제격인 선수가 된다. ‘선 수비, 후 역습’을 지향할 공산이 큰 볼턴임을 감안할 때, 역습시에 볼을 몰고 달릴 수 있는 민첩한 날개의 존재는 전술상 큰 의미를 갖는다. 게다가 볼턴에는 몸싸움에 능한 투사형 선수들에 비해 개인 전술과 센스를 지닌 선수가 드물다. 볼턴이 강인하지만 투박한 스타일의 팀인 까닭에 이청용이 지닌 축구 센스가 소금 같은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이는 이청용이 측면뿐 아니라 전방위적인 찬스메이커 역할을 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이청용의 앞에 ‘잠재적 적수들’이 놓여 있기는 하다. 포르투갈의 21세 이하 대표 출신인 공격수 히카르두 바스테는 부상의 불운 속에 지난 두 시즌 동안 단 네 차례 출전에 그쳤지만, 부상 이전의 경기력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측면의 한 자리를 꿰찰 수 있는 재능을 갖추고 있다. 스페인 레반테에서 에이스급 활약을 펼쳤던 공격수 무스타파 리가는 지난 시즌 주로 교체 선수로 출전해 골을 터뜨리지는 못했으나 적응도가 높아지면 출전 시간이 늘어날 여지가 있다.

최우선 과제는 리그와 팀 분위기, 현지 생활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이다. 신체적, 물리적 측면에서의 부족함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지만 어차피 이것은 삽시간에 좋아질 수 있는 측면이 아니다. 지니고 있는 장점을 극대화해 볼턴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면서 자신을 어필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 리그 13호골을 넣고세리머니를 펼치는 이동국 선수. ⓒ연합뉴스
순탄치 않은 축구 인생을 걸어온 이동국이었다. 그러던 그가 미들즈브러의 실패에 이어 성남에서도 ‘저조하다’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2009 K리그 후반부를 맞이하는 지금, 이동국은 한국 축구사의 대기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의 득점포는 한마디로 불이 붙었다. K리그 14경기에 14골이라는 경이적인 득점력을 비롯해 컵대회 1골, FA컵 4골까지 포함해 올 시즌 출전한 20경기에서 무려 19골을 작렬시켰다. 지금 기세대로라면 K리그가 40경기로 치루었던 2003년, 김도훈이 수립한 K리그 기록(28골)에도 도전할 수 있어 보인다.

원동력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지난해 성남에서 뛸 당시 이동국의 몸 상태는 100%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전북에 입성한 올 시즌 마침내 정상적인 상태로 올라온 것이 지금의 골 사냥을 가능케 했다. 둘째, 대표 선발에 마음을 비웠다고 말하는 이동국이지만, 그라운드에서의 그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의욕을 불태우는 모양새이다. 성숙해진 동시에 정신력과 집중력이 매우 좋아졌다. 셋째, 이동국을 잘 활용하는 시스템을 정착시킨 전북 최강희 감독의 공로를 빼놓을 수 없다. 에닝요, 루이스, 최태욱과 더불어 돌아가는 이동국의 위력을 막아내기란 쉽지 않다.

이렇다 보니 그를 둘러싼 ‘국가대표 논쟁’이 화제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의 상태를 이어갈 경우 이동국의 선발은 당연하다. 기본적으로 현재의 대표팀은 박주영-이근호 투톱을 중용하고 있고, 이는 자체로 일리가 있다. 움직임의 폭이 넓고 다양한 기능을 지닌 투톱이 박지성·이청용 기성용과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갈 때 득점 기회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주전 기용에는 100% 공감한다 해도, 다른 한편으로 최종 엔트리에는 박주영, 이근호와는 ‘다른 유형의 공격수’도 포함될 필요가 있다. ‘플랜 A’와 더불어 유사시를 대비한 ‘플랜 B’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동국은 그 ‘다른 유형의 공격수’들 가운데 가장 앞서 있음에 틀림없다.

이에 대한 반론이 충분히 있을 법하다. 그것은 골 실적과는 별개로 이동국이 여전히 ‘게으른 천재’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월드컵 본선에서 정말로 ‘한 골’이 필요한 상황에 직면한다면, 이동국보다 골 실적이 현격하게 떨어지는 공격수를 선발했을 때의 효용성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도 고려해야 한다. 지금 당장 대표팀을 선발한다고 가정하면, 이동국이 들어가는 쪽이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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