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의원 해산 이후 자민당, 막판 세 결집 중
  • 도쿄·임수택 편집위원 ()
  • 승인 2009.07.28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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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세·연금·외교안보 정책 둘러싼 한판 승부…대세는 민주당 쪽

▲ 아소 다로 일본 총리가 자민당 의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AP연합

지난 7월21일 일본의 고노 중의원 의장이 중의원 해산을 선언한 순간 아소 총리와 민주당 하토야마 대표의 모습이 극명하게 대조적이었다. 하토야마 대표는 드디어 때가 왔다는 자신감을 보인 반면, 아소 총리의 얼굴에는 착잡함과 고뇌가 가득 배어 있었다. 지지도가 민주당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서 선거에 임해야 하는 자민당 의원들 중에 얼마나 살아서 돌아올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해산 당일 자민당 내 분위기는 먼저 살아야 한다는 모습이 역력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아소 총리를 규탄하던 각료들과 반아소 세력들은 막상 선거에 돌입하자 단결하지 않으면 전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보였다. 중·참의원 양당 간담회에서 아소 총리는 “내 발언이 국민들에게 정치의 불안과 불신을 주어 결과적으로 자민당의 지지율을 떨어지게 했다. 깊이 반성한다”라고 자세를 낮췄다. 도쿄 도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대패했을 때만 해도 자신의 책임을 애써 외면하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이에 대해 그간 ‘반아소’의 선봉에 섰던 나카가와 히데나오 전 간사장도 아소 총리와 굳은 악수를 하며 아소 총리의 자책론이 당의 결속을 다지는 데 긍적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번 선거가 의미하는 바는 크다. 첫째는 자민당의 55년 체제가 청산이 되는냐 하는 것이다. 둘째는 소선거구제를 도입한 이후 15년이 되어 양대 정당 구도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국민들이 선거에 의해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선진국 중에서 선거에 의하지 않고 정권 교체를 해 온 나라는 일본뿐이었다. 민주당의 하토야마 대표가 이번 선거를 “메이지유신 이후 관료주의 정치로부터 국민이 참가하는 정치로 만들겠다. 혁명적으로 커다란 목적을 갖는 정권 교체이다”라는 역사적 사명을 강조한 이유이다.

민주당은 자민당과 관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지난 54년간의 통치를 종식시키는 것을 주요 선거 쟁점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에 반해 자민당은 민주당의 수권 능력 부족과 경기 대책이 중요하다는 것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아소 총리가 비록 선거에 악재가 될 수 있지만 소비세를 올리겠다며 일성을 토해낸 것도 수권 능력을 강조하며 민주당과의 차별화를 꾀하려는 시도이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재원이 필요하고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소비세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논리이다.

이처럼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소비세 인상을 결정한 막후에는 민주당 재원 정책의 허구성을 공격하고자 하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민주당은 그동안 자민당이 방만하게 운영해 온 낭비성 예산을 줄여 재원을 확보한다면 최소 4년간은 소비세 인상을 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휘발유세의 잠정 세율을 폐지하는 등 기본적으로 국민들의 세금 부담을 줄이려는 정책을 만들고 있다. 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소비세 인상 문제와 재원을 둘러싸고 자민당과 민주당 간에 치열한 격전이 예상된다. 또, 연금 문제에서도 양당 간에 두드러진 정책적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은 직종마다 다른 연금 제도를 일원화해서 소비세를 재원으로 하는 월 7만 엔(91만원)의 최저보장연금을 만들 계획인 반면, 자민당은 현행 제도를 유지하면서 저소득자의 무연금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양당 간 두드러진 정책 차이는 외교·안전 보장 분야에서도 눈에 띈다. 자민당은 전통적으로 미·일 동맹을 중시하는 정책이다. 민주당도 미·일 동맹을 중시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큰 차이가 없지만 미·일 지위 협정 개정 등을 요구하며 각론에서는 자민당과 사뭇 다르다. 또, 민주당 내 과거 자민당 출신의 보수적 정치인과 사민당 출신, 시민단체 등 진보적 정치인들 간의 의견 통일 여부도 중요한 이슈이다. 지난 7월22일 자민당 중진인 이시하라 노부테루 의원이 거리 유세에서 민주당의 외교 안보 정책을 “물과 기름 관계인 사람과 정당이 모여 있는 야합이다”라고 비난한 것에서 보듯 선거가 진행될수록 쟁점화가 예상된다. 사민당, 국민신당 등 야당 간의 외교 안보 정책 차이를 줄여야 하는 문제도 민주당이 넘어야 할 과제이다.

▲ 일본의 고노 중의원 의장이 중의원 해산을 선언하자 의원들이 만세를 부르고 있다. ⓒAP연합

투표까지 40일 남아 승부 예측은 어려워

 지금 일본 국민들의 시각은 대체적으로 정권 교체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정권 교체를 하기 위해서는 대약진이 필요하다. 현재 민주당의 중의원 해산 전 의석 수는 1백12석이다. 과반수인 2백41석을 달성하려면 1백29석 이상이 필요하다. 오카다 간사장이나 아카마츠 선거대책위원장 등은 현재의 분위기로는 단독으로 과반수를 얻을 수 있다고 호언하고 있다.

그러나 선거 기간 중에 사민당, 국민신당 등 야당과의 공조에 균열이 생기고 국민들의 견제 심리가 발동하면 과반수 획득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하토야마 대표가 당내 인사들에게 신중함을 당부하는 이유이다. 하토야마 대표의 자금 관리 단체에 의한 정치 자금 수지 보고서 허위 기재 문제도 민주당으로서는 아킬레스건이다. 오자와 전 대표가 비서의 정치 자금 스캔들로 낙마한 경험이 있는 민주당으로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투표에 들어가기까지는 아직 40일 가까이 남아 있다는 점도 민주당에게 그리 유리하지 않다. 전통적으로 학연, 혈연, 지연, 기업과 강한 유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자민당과 공명당은 긴 선거 기간을 십분 활용하겠다는 전술이다.

오는 중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비록 과반수를 얻는다 하더라도 참의원의 의석 수는 현재 과반수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각종 법안을 안정적으로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사민당과 국민신당 등의 협조가 불가피하다. 이런 구조적 문제로 인해 민주당이 선전해서 과반수를 얻어 단독으로 정국을 주도하고자 하는 경우 자칫 야당 공조가 무너져 정국이 혼란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주당이 단독으로 과반수를 얻지 못하고 사민당과 국민신당을 합해서 과반수인 경우 연립 정권으로 갈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제1당이 어느 당이 되느냐에 따라 정국의 주도권이 달라진다. 여하튼 여야 간의 대립이 불가피하다. 한편, 자민당과 공명당이 과반수를 유지하는 경우도 현 참의원을 민주당·야당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국회 운영이 파행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다만, 자민당이든 민주당이든 중의원에서 법안의 재가결이 필요한 2/3 이상을 획득하는 경우에는 안정적인 국정 운영이 가능하지만, 이 수치는 자민·민주 양당이 현실적으로 달성하기가 쉽지 않다. 이래저래 일본 정국은 선거 이후에도 당분간 지속적으로 혼란과 대립이 예상된다. 8월 선거 후 자민당을 포함한 정계 재편의 이야기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런 배경과 맞물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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