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위기에도 ‘스포츠마케팅’은 살아 있다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09.07.28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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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현대·기아차, LG 등 국내 기업들, 브랜드 인지도 끌어올리려 세계 주요 경기와 선수·팀 후원하는 데 적극적 활동 펼쳐

▲ 2009년 5월2일 첼시 홈구장에서 삼성이 후원하는 첼시의 존 오비 미켈(오른쪽)과 LG가 후원하는 풀럼의 바비 자모라(왼쪽)가 공중 볼을 다투고 있다. ⓒ로이터

글로벌 시장에서의 스포츠마케팅은 운동 경기의 속성과 비슷하다. 전력 분석을 통해 결과를 예측할 수 있지만 장담할 수는 없다. 그래서 스포츠마케팅 전략을 짜기 위해 기업은 고심을 거듭한다. 스포츠 경기의 속성처럼 스포츠마케팅은 종종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삼성, 현대·기아차, LG 등 국내 글로벌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약진하고 있지만 아직은 우승 후보라기보다는 다크호스에 가깝다. 다크호스가 우승할 수 있는 것이 스포츠이다. 국내 기업들은 스포츠마케팅을 발판으로 글로벌 시장의 패자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세계 금융 위기 여파로 불황이 지속되는 탓에 삼성전자는 긴축 경영 체제를 이어가고 있다. 이명진 삼성전자 IR팀장은 지난 7월2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소재 우리투자증권 4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투자자를 상대로 한 2분기 실적 발표에서 “실적이 뚜렷하게 개선되고 있지만 예산 축소 기조는 2010년에도 이어 가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이에 삼성전자는 최고경영진이 이용하는 전용기 1대를 팔려고 내놓았다. 스포츠마케팅 예산도 30% 이상 줄인다는 계획이다. 판매 증진으로 직접 이어지지 않는 마케팅 예산은 줄인다는 취지이다.
그럼에도 삼성전자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클럽 첼시를 후원하는 계약을 2013년 5월까지 연장했다. 삼성전자는 첼시에서 뛰고 있는 유니폼에 ‘삼성(Samsung)’이라는 브랜드를 붙이고, 경기장 광고를 마케팅 활동에 활용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2012년 런던올림픽까지 후원한다. 아무리 마케팅 예산은 줄이더라도 축구와 올림픽 마케팅은 포기할 수 없다는 뜻이다. 삼성전자는 스포츠마케팅이 세계 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끌어올리며 판매 증진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삼성전자, 첼시와 런던올림픽 결합하는 마케팅 전개

▲ 풀럼 구단 용품 판매점에서 한 모녀가 LG 마크가 선명한 유니폼을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전자는 세계 스포츠마케팅 시장에서 큰손이다. 삼성전자의 스포츠마케팅은 축구와 올림픽을 두 축으로 해서 펼쳐지고 있다. 축구와 올림픽을 연계한 스포츠마케팅을 통해 최고 브랜드로 도약하겠다는 목표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05년부터 첼시를 후원하고 있다. 첼시에 소속된 스타플레이어들이 입고 있는 푸른색 유니폼에는 ‘SAMSUNG’ 로고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삼성전자의 파란색 CI(기업 이미지 통합)와도 잘 어울린다. 첼시는 세계 3대 프로축구리그 중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프리미어 최강팀 중 하나이다.

삼성전자와 첼시의 이미지가 잘 어우러지면서 삼성전자는 유럽 시장에서 만족스러운 성과를 얻어내고 있다. 삼성전자의 유럽 전체 매출은 2004년 1백35억 달러에서 첼시를 후원하기 시작한 2005년 이후 급격히 증가하며 2008년에는 2백47억 달러로 83% 성장했다. 시장조사 전문업체인 GfK의 통계에 따르면, 주력 제품인 액정표시장치(LCD) TV는 2004년 12.9%의 점유율로 3위에 머물렀으나 2009년 5월 23.7%로 증가해 1위로 올라섰다. 휴대전화 단말기도 마찬가지이다. 2004년 9.5%로 4위였던 것이 2009년 5월에는 23.1%로 점유율 2위를 기록했다. 매출 신장에 고무된 삼성은 지난 7월15일 첼시와 후원 계약을 연장했다. 계약식에 참석한 신상흥 삼성전자 구주총괄 부사장은 “9천만명이 넘는 고정 팬을 보유한 명문 구단 첼시를 후원하면서 유럽 시장에서 주력 제품의 시장 점유율이 눈에 띄게 성장했다. 아울러 매출과 브랜드 인지도도 대폭 상승하는 효과를 거두었다”라고 말했다.

2012년 올림픽은 런던에서 개최된다. 삼성전자는 첼시와 런던올림픽을 결합하는 마케팅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한다. 삼성전자는 1997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첫 후원계약을 체결하고 1998년 나가노올림픽부터 무선통신분야 공식 후원사로 참여하고 있다. 올림픽은 축구와 함께 삼성 스포츠마케팅의 주요 투자 대상이다. 올림픽 후원은 글로벌 기업 삼성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데 기여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10년간 올림픽 후원을 통해 브랜드 가치를 다섯 배 이상 끌어올렸다. 휴대전화 판매량도 아홉 배 이상 늘어났다. 스포츠마케팅에서 올림픽이 차지하는 효과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삼성전자가 중국 시장에서 거둔 성과가 잘 보여준다. GfK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 휴대전화 시장에서 2007년 9월 11.4%였던 시장 점유율이 베이징올림픽이 끝난 9월에는 21.2%로 치솟았다. 불과 1년 사이에 2배 이상 성장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스포츠마케팅 분야에서 선전하고 있으나 경쟁 브랜드와 비교해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가 지난해 4월 발표한 ‘2008년 100대 글로벌 브랜드’ 조사에 따르면,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지난 2007년 44위(1백27억4천만 달러)에서 2008년 58위(1백18억7천만 달러)로 하락했다. 주요 경쟁사인 애플(7위, 5백52억6백만 달러)과 노키아(9위, 4백39억7천5백만 달러)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비보조 인지도(삼성 42%, 소니 62%, 노키아 43%), 브랜드 호감도(삼성 81%, 소니 91%, 노키아 87%), 구매 의향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삼성전자는 전세를 반전시킬 해결사를 찾아야 한다. 삼성전자에게 해결사는 축구 마케팅이다. 첼시가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하지 못한 점도 아쉽겠지만 삼성은 재계약을 맺으며 다시 한 번 기대를 걸었다. 삼성은 2005년부터 아시아축구연맹(AFC), 2008년부터 아프리카네이션스컵(CAF) 등을 후원하고 있다. 하지만 축구 최대의 제전은 누가 뭐라 해도 월드컵이다. 월드컵을 빼고 축구 열기를 논하기는 어렵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월드컵 마케팅에 참여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민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공식 후원업체 경쟁에서 소니에게 밀린 탓에 대놓고 월드컵 마케팅 활동을 벌이지는 못한다. 따라서 올림픽은 본사가 주축이 되어 진행하지만 월드컵은 현지 법인이 주축이 되어 제한적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 2009 호주 오픈 테니스대회 3라운드에서 라파엘 나달이 서비스를 넣고 있다. ⓒ연합뉴스

현대·기아차, 호주 오픈 테니스대회에 메이저 스폰서로 나서

삼성전자가 월드컵 마케팅에 차질을 빚는 것과 달리 현대·기아자동차는 FIFA 자동차 부문 공식 후원업체(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정몽준 FIFA 부회장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FIFA 파트너인 현대·기아자동차에게 다가오는 남아공월드컵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공을 향해 매끈하게 뚫려 있는 고속도로와 같다. 지난 2002년 월드컵 공식 후원사로 활동하며 6조원 이상의 마케팅 효과를 거둔 바 있는 현대차는 기아차가 가세하면서 장기적으로 8조원 이상의 마케팅 효과를 거둘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월드컵을 제외하면 현대·기아자동차의 글로벌 스포츠마케팅 전략은 대부분 기아차가 담당하고 있다. 월드컵이라는 스트라이커를 받쳐줄 미드필더진을 기아차가 채워주고 있는 것이다. 기아차의 중앙 미드필더는 호주 오픈 테니스대회이다. 기아차는 지난 2002년부터 2013년까지 테니스 4대 메이저 대회 중 처음으로 열리는 호주 오픈의 메이저 스폰서이다. 경기장 내부 TV에서부터 네트에 이르기까지 테니스 경기장 곳곳에 KIA 로고가 선명하게 보인다. 대회 후원과 동시에 세계 랭킹 1위인 라파엘 나달을 2006년부터 후원하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 김봉경 홍보담당 부사장은 “기아차 홍보대사인 라파엘 나달 선수가 올해 호주 오픈에서 우승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올해 기아차는 호주 오픈에서 6억 달러에 이르는 홍보 효과를 본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테니스 마케팅에 관심과 지원을 쏟은 것이 어느 때보다 큰 결실을 맺은 셈이다”라고 평가했다.
첼시를 후원하는 삼성전자처럼 기아차도 프로축구단 후원을 하고 있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프랑스 르 샹피오나의 지롱댕 보르도이다. 이 두 팀의 유니폼에는 기아 로고가 박혀 있다. 2008~09 시즌에는 기아가 후원하는 두 팀이 모두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다음 시즌에도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확보한 상태이다. 이 팀과의 후원 계약은 2011년까지 계속된다. 김봉경 부사장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후원 계약에 많지 않은 비용이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 비용 대비 성과로 보면 효과적인 투자이다”라고 말했다.

LG, 풀럼과 중남미 축구대회 등 후원

LG는 삼성과 현대·기아차에 비하면 스포츠마케팅에 대한 투자가 적은 편이다. LG전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LG의 글로벌 스포츠마케팅은 올림픽과 월드컵이라는 투톱을 버리는 대신 투자 대상을 다각화했다. LG의 이런 전략은 LG가 후원 계약을 맺은 프리미어리그의 풀럼이라는 팀의 색깔과도 비슷하다.

풀럼은 축구팬들에게 크게 인상을 줄 만한 팀은 아니다.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중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풀럼은 런던을 연고로 하고 있다. 런던을 연고로 하고 있는 네 팀(첼시, 아스날, 토트넘, 풀럼) 중 풀럼이 위치한 지역은 첼시와 함께 부촌에 속한다. 구단주도 명품 백화점인 해롯 백화점을 소유한 알 파예드 회장이다. 많지 않은 예산으로 1등에 버금가는 2등 이미지를 가져가기에 최적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LG의 선택을 이해할 만하다.

LG전자가 강세를 보이는 중남미 시장에서의 투자는 좀더 적극적이다. LG전자는 중남미 최대의 A매치 축구대회인 코파아메리카를 후원한다.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대회로 중남미의 유로 2008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LG전자는 2007년 베네주엘라 대회를 후원해 최소 1억 달러 이상 마케팅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프로축구팀에 대한 후원도 폭넓어 브라질 상파울루, 페우 시엔시아나노 등 6개 남미 프로팀을 후원하고 있다. 이밖에도 LG는 F1 자동차경주대회와 익스트림스포츠에 후원을 하고 있다. F1대회는 국내 인지도는 약하지만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로 꼽히기도 한다. 익스트림스포츠는 젊은이들이 타깃이다. LG전자는 2003년 11월 ‘LG 액션스포츠 챔피언십’을 개최한 이래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 삼성의 신상흥 부사장(오른쪽)과 첼시의 피터 캐년 사장(왼쪽)이 공식 후원 계약서에 서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전자는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이 다가오는 것이 달갑지 않다. 삼성전자가 지난 2005년 국제축구연맹(FIFA) 공식 후원업체 선정 경쟁에서 소니에 패퇴한 탓이다. 소니는 처음에 삼성전자에게 밀리다가 막판 뒤집기에 성공해 FIFA 공식 후원업체로 선정되었다. 삼성전자는 2014년까지 경쟁 업체인 소니가 FIFA 주최 축구대회를 브랜드와 제품 마케팅에 활용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한다. 소니는 2010년부터 ‘디지털 라이프’라는 행사를 통해 소비자 가전을 포함해 게임기기 광고권을 갖고 방송에 관한 FIFA의 기술자문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시사저널>은 당시 ‘삼성전자가 2007~14년 FIFA 공식 후원업체가 되기 위해 소니와 치열하게 경쟁했으나 소니에 밀려났다’라고 특종 보도했다.

삼성전자가 당시 소니에게 진 것은 의외였다. 삼성전자 홍보그룹 산하 스포츠마케팅담당 부서인 마케팅홍보그룹은 발표 전날만 해도 삼성전자가 FIFA 공식 후원업체로 선정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사태가 극적으로 반전된 것은 이데이 노부유키 당시 소니 회장의 활약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성급히 샴페인을 터뜨리는 사이 노부유키 전 회장은 발표 전날 일본 도쿄에서 제프 블래터 FIFA 회장을 비밀리에 만났다. 그는 블래터 FIFA 회장을 일본 도쿄 본사로 초대해 스포츠 이벤트 후원 역사상 최고액인 ‘현금 3억5백만 달러 +α’를 제시했다.

이 경쟁에서 패퇴한 삼성전자는 올림픽과 월드컵 투톱 체제로 가져간다는 스포츠마케팅 계획을 포기해야 했다. 삼성전자의 월드컵 악몽은 2014년 브라질월드컵까지 이어진다. 소니가 2014년 브라질월드컵 공식 후원업체 자격까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 소속 축구클럽 첼시와 스폰서 계약을 연장하며 월드컵 마케팅에서 좌절을 달래고 있다.

 


▲ 첼시 선수 마이클 에시앙에게 환호하는 관중들. ⓒEPA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표 시장을 설정하는 것이다. 목표 시장 설정에는 체계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소비자 욕구, 경제성, 시장 경계를 분석하고 목표 시장을 더 세부적으로 나누어 마케팅을 집중해야 할 하위 시장을 선택해야 한다. 목표 시장이 설정되면, 기업들은 고객관계관리(CRM), 게릴라, 일대일 마케팅 같은 혁신적인 수단을 동원해 목표 시장에 접근하려 한다. 목표 시장 접근 수단으로 마케팅 담당자가 가장 주목하는 분야가 스포츠이다. 스포츠는 목표 시장을 공략하는 데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알려졌다. 제품이나 브랜드가 소구하고자 하는 소비자층이 있듯이 스포츠도 종목마다 소구하고자 하는 팬과 관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마케팅에 나선 기업들은 목표로 삼은 소비자가 많이 몰리는 종목을 선택한다. 해당 종목 경기가 텔레비전을 비롯해 갖가지 대중 매체에 노출되는 시간 분량과 시간대를 조사한다. 제품이나 브랜드 노출로 거둘 수 있는 광고 효과를 판단하는 것이다. 그 다음 경쟁 업체나 브랜드의 움직임까지 파악한 후에 세부 커뮤니케이션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스포츠마케팅 담당자들은 해당 종목 선수뿐만 아니라 클럽 소유주, 흥행업자, 후원업체, 대리인, 매체, 팬을 개별적으로 관리한다. 해당 종목에서 벌어지는 마케팅 활동 전 과정에서 일관성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기업은 스포츠에 대한 소비자의 열정을 제품이나 브랜드에 담고자 한다. 스포츠마케팅 컨설팅업체 RTR스포츠마케팅 소속 리카도 타파  컨설턴트는 “스포츠마케팅은 단지 축구팀 유니폼이나 경기장 광고 보드에 자사 상표를 노출시키는 것만이 아니다. 기업이나 브랜드에게 스포츠의 긍정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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