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안 보이는 북·미 간 대결 아직도 ‘먼 길’
  • 김동현 (존스홉킨스 대학 국제대학원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09.07.28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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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미국 제재에도 생존 가능하다 자신 2012년 강성대국 선포 끝나야 해법 보일 듯

▲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오른쪽)이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만성병을 앓고 있는 북한 핵 문제는 모두에게 피로감을 준다. 그렇지만 사안의 중요성 때문에 주의를 안 기울일 수도 없다. 북핵 문제에 대한 칼자루는 어디까지나 북한이 쥐고 있다. 북한이 움직이지 않으면 해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과연 북한의 지도부가 핵을 포기할 의도가 있느냐에 있다. 많은 전문가가 추정하는 것처럼 북한이 핵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면, 미국이 협상을 추구할 이유가 줄어든다.
미국 국방부의 마이클 나트 세계전략담당 차관보는 청문회에서 “미국은 모든 가능한 북한 사태 발생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겠다”라고 말한 바 있다. 소위 ‘북한 급변 사태’를 언급한 셈이다. 한국의 온건파들은 “북한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라며 우려를 표시한다.

북한의 권력 승계 문제와 급변 사태 가능성에 대한 한·미 간의 대비책은 그동안 심심찮게 논의되어왔다. 한국 국방부는 북한 정권이 붕괴하면 북한에 예비사단을 투입시켜 민사 평정 작전을 펼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북한의 급변 사태에 대처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들은 오래전부터 한·미 동맹 차원에서 ‘한·미작계 5029’ 등의 이름으로 연구되어왔다.

강경한 미국 국방부, 쫓아가는 국무부

미국의 대외 정책은 군사력에 상당한 바탕을 두고 있고, 외교가 실패할 경우 군사 대결이나 군사 개입으로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미국 국방부의 임무는 일차적으로 전쟁 억지에 있고, 유사시 명령이 떨어지면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따라서 미국 국방부가 북한 급변 사태에 대한 군사적 대비책을 강구하는 것은 이곳 시각에서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 다만, 이 과정에서 한·미 공조는 필수이며, 중국의 전략적 입장 등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런 가상적 대안(급변 사태 대비 시나리오)들은 현재까지 구상 단계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국방부가 국무부에 비해 북한 문제에 있어 좀더 강경한 태도를 취해 온 것은 상식에 해당한다. 나트 차관보가 비록 세계전략담당 책임을 맡고 있기는 하지만 그가 한반도에만 치중하는 인사는 아니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월러스 그렉슨 국방부 아태담당 차관보의 역할이 더 주목된다. 해병대 장성 출신인 그는 지난 1999년 5월 페리 전 국방장관이 평양을 방문할 때 함께 수행해서 북한을 다녀온 적이 있다. 북·미 관계에 비교적 밝은 인사라는 점에서 더 강경한 입장을 취할 수도 있다. 그는 평소 전쟁 억지력을 강조한다. 따라서 억지력 효과를 노리는 강경 행보에 대해 긴장을 조성한다는 주변의 우려도 제기된다.

국방부도 그렇지만,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최근 국무부의 태도 변화도 주목된다. 실제 미국은 북한의 자국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 별로 대수롭지 않은 수준이라고 보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7월20일 “북한이 또 어린애들처럼 주의받기를 바라지만 주의 집중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않기 위해서 북핵 문제를 낮게(low profile) 취급한다”라는 말로 북한을 자극하기도 했다. 태국에서 열린 아세안 지역 포럼에 참석한 클린턴 장관은 북한 참석대표(박근광 대사)와의 만남을 거절했고,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 폐기(CVID)를 약속해야 포괄적인 협상안을 논의할 수 있다”라고 확인했다.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담당 차관보가 서울에서 말한 내용을 장관급에서 재확인한 것이다.

미국, 김정일 체제에서 핵 문제 해결 더 쉽다는 것 알아

▲ 미국 국무장관인 힐러리 클린턴(오른쪽)과 국방부장관인 로버트 게이츠. ⓒEPA

미국은 북한이 대화에 나오는 것만으로는 보상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거듭 밝혔다. 그러나 캠벨 차관보가 언급한 포괄적인 해결책의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다. 다만, 그 속에는 관계 정상화와 평화 협정, 경제 지원 등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지금까지의 핵 협상에서와 같이 북한이 합의 사항을 깨고 비핵화 진전을 역전시키는 경우를 다시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이번에 협상 가능성을 다시 제기한 것은 언뜻 제재와 협상이라는 두 접근책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미국 대북 정책의 방향은 제재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지난 4월 북한의 로켓 발사와 5월의 2차 핵 실험 이후 유엔안보리 ‘1874 결의안’의 이행이 철저히 추구되고 있다. 물론 이 제재 결의안은 무력으로 강제 수색을 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가 제재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데 적극 참여한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한편, 미국은 추가적으로 독자적인 제재 방안을 모색하면서 제재 담당자(필립 골드버그 전 대사)까지 임명했다. 클린턴 장관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명하기 위한 증거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복귀할 때까지 압력과 제재의 고삐를 늦출 기색이 없다.

최근 워싱턴에서는 북·미 대화 가능성과 관련해 ‘다시 불기 시작했다’(straw in the wind)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발설의 진원지는 게리 세이모 백악관 핵확산방지담당관이다. 물론 아직 그 근거는 미약하다. 세이모 담당관은 유엔 결의안 통과 후 북한의 반응이 예상보다 거세지 않았다는 주장을 근거로 삼고 있을 뿐이다. 

아직까지는 북한이 6자회담이나 혹은 다른 형태의 회담에 응하겠다는 징후는 전혀 없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설사 북한이 대화에 나온다고 해도 6자가 아닌 다른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우선, 예상 가능한 형식은 중국·미국·북한이 3자회담을 열고, 그 속에서 북·미 협상을 거쳐 한국과 러시아 등을 포함시킬 수 있다. 북한은 일본의 참여는 끝까지 반대할 것으로 보인다. 즉, 북한을 제외한 5자가 아니라 일본을 제외한 5자회담의 형식이 되는 셈이다. 남북한과 미국의 3자회담 형식에는 북한이 절대 응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제재 속에서도 생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과 함께 나온 권력 승계 문제도 북한의 핵 실험, 미사일 발사 등의 근본 동기라는 일반적인 분석보다는 북한 지도부가 나름대로 생존과 체제 수호를 위해서 제 갈 길을 가는 것으로 봐야 한다. 그래서 2012년 강성대국 선포와 승계 작업이 끝나야 북핵 문제의 해결 방향이 나올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북한의 부자간 혈통 승계는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현 김정일 체제에서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크다는 사실이고, 이는 미국도 잘 알고 있는 일이다. 

김위원장의 정확한 건강 상태와 그의 수명에 대해 여러 설이 분분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미국 입장에서 가장 바람직한 것은 중국의 협력으로 제재가 성공하면, 북한이 압력에 못 이겨 대화의 장으로 나와 비핵화 협상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제재와 압력에 못 이겨 대화를 먼저 하자고 나올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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