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이 한 일은 ‘소통’이었네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09.08.04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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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베스트셀러 순위 1~3위, 국내 여성 작가들이 석권

▲ 한비야의 , 신경숙의 , 공지영의 (왼쪽부터).

올해 여름, 여성 작가들의 책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인기 남성 작가가 쓴 남성미 넘치는 역사 소설도 나와 있지만 여성 작가들이 서점을 ‘접수’한 모양새이다. 

소설가 신경숙씨가 홀로 독주하던 봄이 지나고 여름이 되자 공지영씨의 소설 <도가니>와 ‘바람의 딸’ 한비야씨의 에세이집 <그건, 사랑이었네>가 엎치락뒤치락하며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 1, 2위를 다투고 있다. 올봄 3개월 이상 종합 순위 1위를 이어갔던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는 3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시크릿>으로 대표되는 자기 계발서 열풍이 계속되어 올해 출판계 흐름에서도 빠지지 않나 했는데, ‘위기’까지 거론되어온 문학 분야에 독자들이 몰리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출판계는 올해 상반기의 흐름을 지켜보며 경제 위기로 상처 입은 사람들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줄 ‘이야기’를 찾게 되었는데 이에 작가들이 내놓은 신작과 조우하게 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자기 계발서나 경제·경영서들이 끊임없이 ‘무엇을 하라’고 주문하는 것에 식상한 독자들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속에서 울고 웃으며 자신을 돌아보기를 원했던 것이다. 여성 작가 세 사람의 책을 모아 보면, 일자리가 줄고 벌이가 적어지고 경쟁이 심해지는 사회에서, 뒤처지거나 쓰러진 동료를 외면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개인들이 엄마의 품을 그리워하고 잠자던 분노를 일깨우고 포기했던 꿈을 다시 꾸고 싶었던 것이리라.

한비야씨의 <그건, 사랑이었네>는 세상의 경쟁에 지치고 무기력한 얼굴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우리를 깨워,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도록 만들어준다. 세상에는 정글의 법칙 외에도 사랑과 은혜의 법칙, 나눔의 법칙이 있다고 말하며 그런 세상에 대한 꿈을 현실로 이루어가는 모습을 몸소 보여주는 것이다. 그녀는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굶주리는 아이가 없는 세상, 모두가 공평한 기회를 갖는 세상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 세상이 올까? 청춘과 인생을 바치고 목숨까지 바친다고 한들 그런 세상은 오지 않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보면 이것은 한마디로 이룰 수 없는 꿈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도 이 꿈을 가슴에 가득 안고 바보들의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이룰 수는 없을지언정 차마 포기할 수 없는 꿈이기 때문이다. 아니, 포기해서는 안 되는 꿈이기 때문이다”라며 독자들과 공감하기를 바랐다.

독자들, ‘공감하는 이야기’에 다시 지지 보내

공지영 작가의 <도가니>는 2005년 TV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광주의 모 장애인 학교에서 자행된 성폭력 사건에 대한 취재를 바탕으로 쓰인 소설이다. 작품 곳곳에 묘사된 폭력과 성폭행 장면은 끔찍해서 독자들로부터 가슴을 쓸어내리고 숨을 고르게 만들었다는 평을 듣는다. 하지만 작품을 읽다 보면 사회의 극단적인 이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작가는 현실에 잠재되어 있거나 부끄러운 듯 애써 외면하려는 거짓과 폭력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파헤쳐 진실을 보라고 다그친다. 이 과정에서 공감하게 되는 고민과 아픔은 이 소설이 독자를 강하게 끌어들이는 흡인력이다. 공씨는 “진실은 가끔 생뚱맞고 대개 비논리적이며 자주 불편하다. 진실 아닌 것들이 부단히 노력하며 모순된 점을 가리고 분을 바르며 부지런을 떠는 동안 진실은 그저 누워서 감이 입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 도처에서 진실이라는 것이 외면당하는 데도 실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면 있는 것이다”라고 소설 속에서 떠든다. 그 떠드는 소리에 독자들도 같이 분노하고 목소리 높여 외치고 싶은 욕구를 가지게 되었을까. 이 책 역시 소통이 잘 안 되는 사회에서 공감하는 이들을 마당에 불러놓고 이웃하게 만들고 있다. 소설인데도 욕심이 무척 많아 보이는 책인 것이다.

신경숙씨의 <엄마를 부탁해>는 지난해 연말 ‘잃어버린 엄마’를 찾아야 한다고 독자들을 다그치더니 공감한 독자 수가 100만을 넘어서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리고 있다. <엄마를 부탁해>는 지난 시대 희생과 헌신으로 가족을 꾸려나가야 했던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담은 내용이다. ‘어머니의 실종’을 계기로 온 가족(어머니도 포함)의 시점에서 어머니의 지난날을 추적하며 관계를 복원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출판사 휴머니스트의 김학원 대표는 “지난해 한국의 독자들은 역량 있는 동시대의 국내외 작가들의 소설에 연이어 주목했다. 올해도 독자들은 새로운 이야기를 찾았고, 공감하는 이야기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한비야씨가 책 서문에 밝힌 내용은 독자들이 원하는 소통과 공감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이 책을 쓰는 내내 행복했다. 내 눈앞에 여러분이 있는 것만 같았다. 환한 미소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보다가 ‘어머 맞아요!’라는 추임새를 넣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았다. 까르르 웃는 소리와 아하, 하는 탄식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 다 털어놓고 나니 알 수 있었다. 세상과 나를 움직이는 것이 무엇인지 보였다. 세상을 향한, 여러분을 향한, 그리고 자신을 향한 내 마음 가장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지도 또렷하게 보였다. 그건,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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