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도 쓰나미급 한국 영화를 들다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09.08.0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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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개봉 첫 주말에 1백55만명 동원 24개국에 수출 확정돼 해외 성공도 기대

ⓒJK텔레콤 제공


<해운대>의 흥행 조짐이 예사롭지 않다. 개봉 첫 주말(7월24~26일) 박스오피스에서 관객 1백55만명을 동원했다(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 같은 기간 44만명을 동원한 2위 <해리포터와 혼혈왕자>를 멀찌감치 제쳤다. 개봉 2주차를 맞아서도 흥행세가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또 다른 한국 영화 기대작 <국가대표>가 개봉했음에도 상영관 수는 큰 차이가 없다. <해운대>는 개봉 첫 주 서울 1백59개, 전국 7백5개 상영관을 확보했는데 둘째 주를 맞이해서 서울 1백47개, 전국 6백98개 상영관에서 여전히 관객을 맞이하고 있다.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 반응도 좋아 장기 흥행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한다.

<해운대>는 블록버스터 재난 영화이다. 순제작비만 해도 1백29억원에 달한다. 제작 규모가 큰 만큼 볼거리를 충실하게 전달했는지에 관객의 관심이 몰리게 마련이다. 부산을 덮치는 대규모 지진해일(메가 쓰나미)을 어떻게 구현했는지에 영화의 성패가 달렸다고 볼 수 있다. 적어도 영화가 공개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막상 뚜껑을 열고 나니 해운대 해변 빌딩들을 무너뜨릴 정도로 거대한 쓰나미에서, 재난에 빠진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드라마로 관심의 초점이 옮아갔다. 할리우드와 국내 기술이 합작해서 내놓은 시각효과에 대한 평가가 나쁘지는 않다. 기술적 완성도가 떨어졌다면 영화에 대한 몰입이 방해받았을 것이다.

그래도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은 압도적인 볼거리보다 영화 속 인물들이 보여준 삶과 행동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한다. 인간적인 드라마가 관객을 웃고 울리기 때문이다. 신파에 기반한 최루성 이야기 전개가 관객들의 감성을 움직이고 있다. 비중을 보더라도 본격적인 쓰나미는 영화가 시작하고 1시간 20분이 지나고 나서부터이다. 윤제균 감독은 “애초부터 전체 3분의 2에 드라마를 배치할 생각이었다. 재난이 덮쳐오는 나머지 3분의 1도 드라마를 해결하는 과정으로 보면 된다. 준비 과정에서 재난 영화를 100편 넘게 보았는데 천편일률적으로 재난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약-중-강으로 재난을 증폭시키는 전형적인 구성은 예산이 많이 들기도 하고, 거대한 자연재해를 맞아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사람들의 삶과 인연에 대해 말하고자 했던 본래 의도에서도 벗어난다”라고 설명했다.

<킹콩을 들다> <국가대표> 등도 웃기고 울려

▲ 영화 속에서 동춘이 만식의 어머니와 아들을 데리고 재난을 피하고 있다. ⓒJK텔레콤 제공

유독 올해 여름 극장가에서 분투하고 있는 한국 대중 영화를 살펴보면, 제작비 규모에 관계없이 웃음, 눈물, 감동을 한데 버무린 새로운 ‘신파 휴먼스토리’가 주를 이룬다. <해운대>가 그랬고, 7월 초 개봉한 <킹콩을 들다>가 그랬으며, 이번 주부터 <해운대>와 경쟁을 펼치는 <국가대표>가 그렇다. <킹콩을 들다>는 시골 처녀 역사들의 성공 신화를 다루면서 신화를 있게 만든 코치의 죽음을 끼워 넣음으로써 감동을 배가시킨다. <국가대표>는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찾기 위해 고국에 돌아온 입양아, 약물 복용으로 동료 선수까지 수렁에 몰아넣었던 나이트클럽 웨이터, 할머니와 동생의 생계를 위해 군대를 갈 수 없는 청년 가장 등 약자 입장에서 늘 소외받았던 인물들의 이야기로 눈물을 자아낸다.

이 작품들이 예전의 신파 코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웃음을 잃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점에서 멈출 수 없는 눈물을 이끌어내기 위해 슬픈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것이 기존 신파가 보여주었던 방식이라면, 최근의 신파는 웃음과 눈물을 쉴 새 없이 번갈아가며 배치한다. 관객을 웃기고 울리다가 결국에는 눈물을 죽죽 흘리면서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게 하는 감성적인 이야기가 흥행 포인트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해운대>가 집중한 요소 역시 웃음과 눈물의 어울림이다. 이를 위해 영화는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서로 다른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쓰나미를 경고하는 해양지질학자 김휘 박사(박중훈 분)와 문화엑스포를 준비하는 국제 이벤트 전문가 이유진(엄정화 분) 커플, 해운대 토박이로 시장에서 일하는 최만식(설경구 분)과 강연희(하지원 분), 해양구조대원 최형식(이민기 분)과 피서를 온 삼수생 김희미(강예원 분) 등 중심이 되는 세 쌍의 면면을 보더라도 이런 의도가 잘 드러난다. 이밖에 재개발을 추진하는 기업가, 재력만 믿고 안하무인인 부잣집 아들, 사고나 치는 동네 한량, 한량 아들의 취직을 위해 구두를 사주는 어머니, 막힌 변기를 뚫는 배관 수리공 등이 등장해 작지만 울림 있는 이야기를 전한다.

할리우드에서 만들어내는 일반적인 재난 영화와 다른 점도 이 부분이다. 할리우드는 거대한 재난의 위력을 구현해내고 이를 극복하는 영웅들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할리우드가 <해운대>를 다시 만든다면 주인공은 김휘 박사가 될 것이 분명하다. 대마도 해저 지반 붕괴로 야기되는 대형 쓰나미가 올 가능성을 예측하고 이에 대한 대비를 주장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투모로우>의 데니스 퀘이드, <볼케이노>의 토미 리 존스, <단테스 피크>의 피어스 브로스넌 등 할리우드 재난 영화의 주인공은 모두 재난 조짐을 먼저 알아챈 과학자이다. 자신을 희생해 생명을 구하는 구조대원 최형식도 할리우드가 좋아할 만한 인물이다. 자신만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연적을 구하기 위해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로 다시 뛰어드는 영웅의 면모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휘 박사와 최형식은 <해운대>에서 그저 조연 중 하나일 뿐이다.

<해운대> 드라마의 힘을 가장 잘 드러내는 인물은 오히려 동네 양아치 동춘(김인권 분)이다. 감독도 가장 애정을 가지는 캐릭터로 동춘을 꼽았다. 동춘은 영화 말미에 이르기 직전까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인물이다. 초등학교 동창생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밥이나 얻어먹고, 아무에게나 시비를 걸어 얻어터지기나 하고, 면접을 보라는 어머니 말에 면박이나 주는 인물이다.

영웅 아닌 동질감 느끼게 하는 캐릭터

그가 재난의 중심에서 천운으로 살아남는 모습들을 이해 못하는 관객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동춘이 악한 사람은 아니다. 세상에 좌절하고, 일신의 안위를 위해 나쁜 편에 서더라도 살려고 발버둥치며, 인간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가족의 정을 버리지 않는 그의 모습은 우리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영화 말미에서 동춘이 보여주는 의외의 모습에 거부감보다는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해운대>의 인물들은 빼내는 과정에서 태어났다. 시나리오 단계서부터 수백 커플을 도표로 그려내 하나씩 지워가면서 최종 등장인물을 가려냈다. 마지막 단계에서 빠진 커플 이야기도 있다. 7년 만에 임신을 해서 처음으로 해운대로 휴양을 온 기자 커플이다. 특종 때문에 기자인 남편이 해운대를 떠난 사이 쓰나미가 몰려와 생사의 갈림길에 선 부부 이야기이다. JK필름 이지승 프로듀서는 “드라마를 더욱 풍성하게 해 줄 수 있었겠지만 상영 시간의 한계로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한양대 토목공학과 조용식 교수, 부산소방서 항공대장, 해운대 시장 상인 등과의 인터뷰를 통해 캐릭터와 이야기 구조를 정교화할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제 <해운대>는 해외 시장을 노크하고 있다. 영국, 독일, 프랑스, 중국 등 유럽과 아시아권을 비롯한 24개국에 수출이 확정되었다. 특히 외국 영화 쿼터가 있어 할리우드 영화가 주를 이루는 중국에서 개봉이 확정된 것은 인정할 만한 성과이다.

드라마를 강화한 <해운대>의 한국적 블록버스터 전략이 국내에서의 성공을 넘어 숙명적으로 가야 할 해외 시장에서의 성공을 이루어낼 수 있을지 기대된다.


ⓒJK필름 제공
영화 <해운대> 제작진은 대형 쓰나미를 시각적으로 구현해내는 데 성공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물 CG(컴퓨터그래픽)가 고난이도 작업이고, 대낮을 배경으로 하면 어려움이 더 크다는 것을 감안하면 완성도가 제법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시각 효과는 <해운대>를 성공하게 만든 밑거름이 되었다. 제작비 절반을 투입하고, 언론 시사회 직전까지도 CG를 다듬었던 제작진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해운대>가 성공한 것은 한국 CG업계가 한 단계 도약했음을 의미한다. CG업계는 시각 효과를 앞세운 영화와 함께 성장한다. 뉴질랜드 웨타 스튜디오만 보아도 그렇다. 이 업체는 영화 <반지의 제왕>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할리우드 굴지 CG업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한국 CG업계도 시각 효과 비중이 높은 블록버스터와 함께 발전했다. 문제는 대부분이 실패작이었다는 점이다. <청연> <중천> 등은 CG 완성도에서 훌륭하다고 평가되었지만 흥행에서는 참패했다.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연이은 실패는 한국 CG업계가 나래를 펼칠 자리를 점점 좁혀왔다. 이런 상황에서 <해운대>가 반전의 계기를 만들었다. <해운대>가 거둔 성과는 앞으로 제작될 <로보트 태권브이> 같은 작품에 대한 기대로 이어지고 있다.

국내 CG 기술은 효율성이 높다. 미국 폴리곤엔터테인먼트와의 공동 작업을 통해 <해운대>라는 성과물을 만들어낸 모팩스튜디오의 장성호 대표는 “창의적인 면과 기술적인 면을 절대치로 보면 할리우드 수준과 아직 차이가 있다. 그러나 국내 업체의 강점은 효율성에 있다. 조건 대비 완성도를 뽑아내는 것에는 자신 있다. <해운대> 작업을 통해서 우리 작업 체계의 효율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시스템 인프라 구축이라는 측면에서 뒤지는 것이 아쉽다. 지금까지 쌓아놓은 경험에 인프라까지 따라준다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시사저널 임준선
<해운대> 윤제균 감독은 이전까지 영화 네 편을 연출한 흥행 감독이다. 그가 연출한 <두사부일체> <색즉시공> <1번가의 기적>은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쓴맛을 본 것은 <낭만자객>이 유일하다. 그럼에도 윤감독이 제작비 100억원이 넘는 재난 영화를 내놓는다고 했을 때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코미디 영화 감독이라는 선입견 때문이다. 그는 영화사 이름도 바꾸며 <해운대>를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의 바람대로 영화는 대박을 치고 있고 ‘윤제균 감독’이라는 브랜드도 새롭게 평가되고 있다.

재난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걱정은 없었나.

<해운대>는 들어가기 어려운 기획이었다. 첫째는 기술적으로 국내에서 물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심이었다. 둘째는 코미디 영화 감독이 재난 영화를 만들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었다. 이 때문에 처음에 투자를 못 받았다. 투자를 받아내기까지 1년이 걸렸다. 영화에 들어가는 전체 컴퓨터그래픽(CG) 6백 컷, 물 관련 CG 1백10컷을 3D 동영상으로 만들어 직접 프리젠테이션을 하며 투자자를 설득했다.

코미디 영화 감독이라는 선입견에 자존심이 상하지는 않았나.

내가 투자자나 관객이라도 코미디 영화 감독이 재난 영화를 만든다고 나서면 못 믿을 것 같다. 그런 인식을 뛰어넘는 작품을 만들어야만 했다. <해운대>가 잘못되면 다시는 영화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임했다. 재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몇 없다. <투모로우>의 미국, <플러드>의 영국, <일본 침몰>의 일본 정도이다. 한국 최초 재난 영화라고 하면 세계가 주목하고 자국 작품과 비교할 텐데 내용이나 기술적으로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들면 관객도 이해할 것이라고 믿었다. 10년 전까지 월급쟁이였다. 월급쟁이가 영화감독이 되는 것이 어렵겠나, 코미디 영화 감독이 재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어렵겠나. 겁날 것이 없었다. 감독은 방향만 잡으면 된다. 전문가들이 옆에서 도와준다. 그들을 잘 이끌고 모아서 최고의 작품이 나올 수 있도록 하면 된다.

개봉 전까지 <해운대>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

처음 시도되는 재난 영화이다 보니 CG 구현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언론 시사 직전까지 목줄을 잡고 힘들게 했던 부분이다. 공개 전에 보지도 않고 “재난 영화가 아니라 영화가 재난이더라”라는 말이 나왔다. 인간적인 이야기를 앞세웠다고 하니까 “CG가 안 되니까 드라마를 민다”라는 소문도 나왔다. ‘카더라’ 통신이 난무해 속상했다. 열심히 한 죄밖에 없는데 보지도 않고 얘기하는 사람이 주위에 너무 많았다. 보고 나서 얘기를 하면 시각의 차이를 인정했을 것이다.

<해운대>에도 윤제균식 유머가 살아 있다. 감동적인 장면을 넣으려는 노력도 여전히 보인다. 의도된 것인가.

영화는 감독하고 똑같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나라는 사람이 원래 웃음과 눈물이 많다. 성격도 낙천·긍정적이다. 사람이 잘났는지, 못났는지도 중요하게 생각 안 한다. 감동 코드는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표현된 것이다. <두사부일체>는 상문고 사태를 보면서 비분강개했던 감정을 나타낸 것이다. 돈이 없어 공부를 할 수 없는 사태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색즉시공>도 임신과 낙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사랑하면 조심해야 하고 실수를 했다면 옆에서 정신적으로 따뜻하게 지켜봐주어야 한다. <1번가의 기적>에서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꿈과 희망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싶었다. 나 자신이 웃기는 사람이다 보니 영화를 포장하는 과정에서 코미디를 선택한 것이다. 코미디는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부분이다.

사직구장 장면에서는 감독의 야구 사랑이 느껴지더라.

롯데 골수 광팬이다. 사직구장 바로 옆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니며 100번이 넘게 야구장에 갔다. 이 장면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투자사 사람들도 빼기를 바랐다. 하지만 부산을 이야기하면서 야구와 자이언츠를 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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