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안 대고 침만 맞아도 가슴 커진다?
  • 석유선 (의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09.08.10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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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한의사들 “침으로 성형 시술 가능” 성형외과 전문의 “말도 안 되는 소리”

ⓒ미형한의원 제공

남들은 손꼽아 기다린다는 여름휴가를 빈약한 가슴 때문에 매년 두려워했다는 임채원씨(가명·회사원·31세). 그런 그녀가 올해는 당당하게 비키니를 입고 남자친구와 함께 해수욕장을 활보했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이런 경우 가슴 확대 수술을 받았겠거니 하겠지만, 그녀는 놀랍게도 ‘침’으로 가슴을 키웠다고 털어놓았다.

‘성형외과 대신 한의원이라니….’ 처음에는 그녀도 반신반의했지만 3개월간 꾸준히 자세 교정과 침시술을 받으면서 만족스럽게 ‘보기 좋은’ 가슴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코히시브젤이나 식염수백 등 보형물을 삽입하지 않고 한의학적 치료로 과연 가슴 확대가 가능한 일일까.

최근 ‘자흉침(刺胸鍼)’을 앞세워 한방 가슴 성형을 주도하고 있는 미형한의원 한주원 원장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라고 주장했다. 한원장은 인체에 막혀 있던 기(氣)의 흐름을 원활하게 만드는 것만으로 가슴 확대, 리프팅, 탄력 강화가 가능하고 짝가슴이나 가슴 사이가 벌어진 경우도 교정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동의보감 내경편에서 아이디어 얻었다”

▲ 침으로 가슴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등(위쪽)과 다리에도 침을 꽂아 막힌 혈을 뚫어 가슴 성장을 촉진시킨다고 한다. ⓒ미형한의원 제공

가슴에만 놓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가슴을 통과하는 경락이 있는 가슴을 비롯해 등, 다리 부위에 침을 꽂아 유방 및 큰 가슴 근육(대흉근)에 자극을 줌으로써 막힌 혈을 뚫어 가슴 성장을 촉진시키는 원리이다. 한원장은 5년 전 <동의보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시술로 발전시켰다.

<동의보감> 내경편을 보면 ‘탁음양도주이성형(託陰陽陶鑄而成形, 음양의 조화에 의하여 형체를 이룬다)’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에 한원장은 유방의 저장 기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빈약한 가슴이 생긴다며 건강한 체질을 만든 뒤 체형 보완을 하면 저장 기능이 살아나 자연스럽게 가슴이 커진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나쁜 체질을 변화시키는 추나요법과 한약 치료를 병행해 건강한 몸을 먼저 만들고 난 뒤, 침 시술에 들어간다. 때문에 총 10회 시술 비용은 3백30만원으로 다소 비싼 편이다. 그러나 한원장은 시술 3개월 뒤 만족하지 못할 경우에는 전액 환불도 한다며 다행히 지금까지 환불 사태는 없었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미형한의원에서는 7백명 이상을 상대로 자흉침을 시술했고, 평균 2.5cm 이상 확대되는 등 환자들의 만족감이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한주원 원장은 지난해 12월 모교인 대전대 한의과대학과 공동으로 자흉침 연구 논문을 대한침구학회지에 발표하기도 했다. 논문에 따르면 2007년 10월부터 2008년 9월까지 유방 확대를 위해 내원한 브래지어 치수 70A 미만인 20대 여성 환자 20명을 대상으로 10회의 자흉침을 시술한 결과, 가슴이 평균 2.6cm 커지는 효과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2.6cm는 한국산업규격(KS) 브래지어 치수상 한 컵에 해당된다.

자흉침 같은 한방 침 시술은 비단 가슴 성형뿐만 아니라 주름 제거, 광대뼈·사각턱 교정 등 그동안 성형외과에서 흔히 보톡스로 치료하던 얼굴 성형 범주까지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미형한의원 역시 자흉침뿐만 아니라 청룡침(주름 제거), 현무침(좌우·상하 대칭 교정), 미소침(안면윤곽 교정), 비형침(코 교정), 정둔침(엉덩이 교정) 등 다양한 침술을 펴고 있다.

분당 경희믿음한의원 노연흥 원장도 ‘약실침’을 통해 얼굴에 콤플렉스가 많은 환자를 남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변화시키면서 환자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그가 주력하는 분야는 얼굴 광대뼈 돌출과 사각턱 교정이다.

노원장은 ‘한방 성형’이라는 표현보다 ‘한방 침술 교정’이 더욱 적합한 표현이라고 전제하면서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다만, 이같은 한방 침 시술의 장점은 그가 시술한 환자들의 치료 사례를 볼 때, 부작용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약실침은 인체에 무해한 실을 멸균 처리한 뒤 특별하게 만든 한약을 발라 침을 시술하는 방식으로, 처음에는 어느 정도 열감을 느끼다가 이내 통증이 가라앉은 뒤에 얼굴 라인이 살아나게 된다는 설명이다. 보통 3~4회 시술을 받고 나면 얼굴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다고 한다.

노원장은 “한방을 통해 얼굴 변화를 원하는 이들은 외과적 성형으로 남의 이목을 끌기 싫은 40~50대 연령층에서 특히 많이 이루어진다. 어떤 환자는 남편이 ‘무언가 달라진 것 같은데’ 하면서도 결국, 눈치채지 못했다고 기뻐했다”라고 시술 사례를 설명했다.

약실침은 경증의 치질환자에게도 사용되는데, 치루의 뿌리를 약실침을 통해 제거하는 원리를 통해 상당수 효과를 보기도 했다고 노원장은 전했다. 하지만 그는 “재발이 많은 중증의 치질환자에게서는 완벽한 효과를 꾀하기 힘들어 경증 환자들에게만 종종 시술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노원장은 “침 시술 역시 의학적 치료처럼 환자마다 그 효과와 효능이 다르게 나타난다. 다만, 과거에 비해 한방 치료에 대한 환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믿음도 커지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라고 주장하며 최근 한방 침 시술이 널리 쓰이는 이유를 설명했다.

“물리적 조작 없이 가슴 커질 수 없어”

이처럼 한방의 침 시술이 일부분이지만 기존의 외과 시술을 대체할 만큼 광범위하게 번지자, 의학계(양방)는 겉으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면서도 언짢아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특히 한방 성형 침 시술에 대해서는 그 효능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반론이 거세다.

우선 자흉침 시술을 놓고 성형외과 전문의들은 “한방 가슴 성형은 의학적으로 말이 안 된다”라고 잘라 말한다. 성형외과학회 쪽에서는 자흉침을 허위 광고로 고발하겠다는 목소리도 나올 정도로 격앙된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15년 동안 성형외과 전문의로 활동한 압구정동 그랜드성형외과 유상욱 대표원장은 “한방에서는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시술 원리를 설명하기 일쑤이다. 자흉침 역시 마찬가지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남자의 경우 가슴 근육을 침으로 해서 부풀린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여성의 가슴은 유선과 지방조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침 시술로 확대한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유원장은 이어 “가슴 사이즈는 유전적으로 정해져 있고, 인종적으로 평균적인 컵 사이즈가 정해져 있는 것도 이를 반증한다. 보형물 삽입을 통한 물리적 조작 없이는 가슴 사이즈가 커질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강남의 한 성형외과 전문의도 “막말로 숨 한 번 들이쉬고 내쉬고만 해도 가슴 사이즈는 달라질 수 있다”라며 한방 가슴 성형의 효능에 손사래를 쳤다. 침 시술에 따른 가슴 확대 효능이 있는지 여부는 비단 가슴 둘레 치수만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 조직과 다량의 통계적 데이터가 기반이 되어야 학술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최근 들어 경영이 힘든 한방 개원가에서 기존 성형외과 영역을 무분별하게 침범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객관적으로 검증되지 못한 한방 치료는 유행처럼 번지다가 소리 소문 없이 시들해지는 것을 여러 차례 보아왔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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