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가 다시 일어서야 하는 이유
  • 소종섭 편집장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9.08.18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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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또래의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성과물인 대통령 직선제로 치러진 그해 12월의 대통령 선거전 말이다. 전두환 정권이 ‘직선제로 독재 타도!’를 외치는 시민들의 파도 같은 함성에 놀라 직선제를 받아들이겠다고 했을 때 새 세상이 눈앞에 펼쳐진 듯 보였다.

아직도 눈에 선하다. 노랑색과 빨강색의 물결. 민주 세력은 분열되었다. DJ는 평화민주당을 창당해 노랑색을, YS는 통일민주당을 창당해 빨강색을 상징으로 내세웠다. 유세장은 어디에서건 정권 교체를 열망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빨강과 노랑으로 갈라진 순간부터 패배는 정해진 수순이었다. YS와 DJ, 두 사람은 이때부터 동지, 라이벌이 아닌 ‘정적’이 되었다.

그때로부터 20여 년이 흘렀다. 둘 다 대통령을 지냈다. 한국 현대 정치사를 움직여온 두 사람은 그렇게 정점까지 갔다. 2005년 9월, 두 사람 관계에 미묘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그해 8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한 DJ가 한 달 만에 다시 입원하자 YS가 전화를 걸었다. “회복되실 것입니다. 힘내세요.” 짧았지만 의미 있는 전화였다. 지난해 7월에는 DJ가 서울대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YS에게 쾌유를 기원하는 난을 보냈다. 하지만 가까워질 듯하다가 멀어지곤 했던 것이 두 사람의 관계였다. 그만큼 두 사람의 감정의 골은 깊었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 8월10일 YS가 느닷없이 DJ가 입원해 있는 세브란스병원을 방문한 것은 두 사람의 관계가 ‘역사적인 화해’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날 YS는 “화해한 것으로 보아도 좋다. 이제 그럴 때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YS의 탁월한 정치 감각과 순간 포착 능력을 엿보게 하는 역사적인 장면이다. 그러나 아직 ‘화해’는 미완이다. 두 사람은 이날 서로의 체온을 느끼지 못했다.

“두 분이 화해하는 것이 지역 감정을 푸는 지름길이다”라며 물밑에서 YS와 DJ의 화해를 추진해 온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은 평소 “두 분이 손잡고 광주 망월동 묘역을 참배하는 것이 소원이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김의원은 올 초 기자와 만났을 때도 “그것이 두 분이 역사 속에서 영원히 사는 길이고 시대적인 소명을 다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모든 심부름을 다할 생각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렇다. 한국 현대사에서, 아니 세계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두 사람의 애증은 질적으로 새로이 승화되어야 한다.

YS의 바람대로 DJ는 다시 일어서야 한다. YS와 손잡고 영호남을 함께 방문해 맹목적인 갈등과 반목을 끝내고 화합의 시대를 여는 감동을 온 국민에게 선사해야 한다. 한국 정치의 고질인 ‘이전투구의 정치’라는 패러다임을 바꿀 물꼬를 터야 한다. DJ에게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 이것이 그가 병상에서 다시 일어서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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