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전도사, ‘실사구시’로 불신의 벽 넘다
  •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통일학연구소 소장) ()
  • 승인 2009.08.19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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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관계 / 실현 가능성 중시해 방법 제시 남북 정상회담 첫 성사…교류 협력 물꼬 터

 

▲ 2000년 6월14일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북 정상 간 합의문에 서명한 후 손을 맞잡고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반세기 동안 ‘통일’을 말해 온 지도자는 적지 않다. 물론 무엇이 ‘통일’인지에 대한 논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실천에 옮기고 남북 협력 사업을 공동으로 진행할 수 있는 환경과, 주변국들이 남북 협력을 반대하지 않는 통일 환경을 만들어낸 것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커다란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북한이 ‘백기를 흔들면서 투항’하기만을 희망하는 쪽에서는 그의 행동에 동의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1백20만 대군이 존재하는 북한이 스스로 쉽게 ‘투항’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 것은 대단히 요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와는 달리 남북 교류 협력을 통해 북한 사회가 자본주의 체제를 좀더 이해하고, 우리 체제와 조금씩 비슷해져가는 데 의의를 두는 쪽에서는 이른바 ‘대북 포용 정책’에 지지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이 또한 50여 년간의 사회주의식 또는 북한식 습관을 바꿀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하기에는 역부족인 측면이 없지 않다.

독일의 경험에서 보듯, 20여 년간의 꾸준한 교류와 협력은 한 순간에 통일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물론 급속한 흡수 통일로 인한 폐해도 적지 않다. 그러나 반세기 이상 반목해 온 민족이 하나가 되어가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실행에 옮겨야 하지, 서로 비난만 해서는 어떠한 성과도 낼 수 없을 것이다. 요컨대 통일을 할 것인가, 아니면 분단 고착화로 갈 것인가, 또한 ‘감나무 아래서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릴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 중요할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통일에 대한 생각을 하나의 방향에서 실천에 옮긴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좀더 정확한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이명박 정부에서조차 남북 관계에서의 성과를 언급하면서 과거 10년의 통계를 바탕으로 한 자료를 활용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외에는 남북 관계에서 달리 성과라고 말할 것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민의 정부 때 남북 관계에서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남북 교류 협력의 대폭 확대와 이산가족 상봉이 정례화하는 틀을 만들게 된 것 등은 일시적인 권력자들의 정치 행위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즉, 통일이라는 것은 대통령이 된 이후 ‘단기적으로 숙고해 보는’ 일반 정책 사업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민족의 중대사 중의 중대사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미 1970년대부터 오랜 기간 통일 문제에 관심을 집중해왔고, 자신의 ‘3단계 통일론’을 집대성한 내용을 1990년대에 출판한 경험도 가지고 있다. 과거 정치 지도자들 중에 오랜 기간의 노력을 묶어 완성된 통일 방안을 제시한 인물은 김 전 대통령 외에는 사실상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는 책 한 권을 발간하는 일상적 행위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대통령이 되기 직전까지 수십 년간 끊임없이 고민하고 각계 전문가들과의 논의를 통해 자신의 통일 논리를 발전시켜나가는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왔기에 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의지가 있었기에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그러한 ‘관성’을 멈출 수 없었으며, 결국 역사상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을 이끌어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 과정이 순탄하게만 진행된 것은 아니다. 과거 1990년대 초, 옛 소련과 수교를 위해 20억 달러가 넘는 차관 지원이 필요했던 것과 유사하게도 4억 달러에 이르는 대북 지원과 교류 협력을 위한 자금이 북한에게 건네지기도 했으며, 이로 인해 당시 사업을 추진했던 핵심 인사들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전쟁을 경험한 동족이 화해하는 자리는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처럼 논란이 존재하기도 하고, 6·15 합의문에 대해서 우리 사회의 한편에서는 불만 또는 의구심을 갖고 있기도 하다.

6·15 공동선언 이끌어 내며 통일 방안 실천에 옮겨

 

▲ 평양 순안공항에서 김대통령의 평양 출발에 앞서 포옹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합의가 이루어지고 ‘통일 3원칙’이 만들어져 오늘날까지 이어오는 바와 같이 6·15 공동선언은 몇 가지 논란에도 그 기본 정신과 협력 사업에 대한 약속은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10년여에 걸쳐 발전을 거듭해 온 것이 사실이다.

관심을 둘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영역은 그가 주창해 온 ‘3단계 통일 방안’에 있다. 그런데 그는 대통령직에 있는 동안 새로운 통일 방안(3단계 통일 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 김영삼 정부에서 제안한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이 유효한 상태로 통일 정책을 전개했다. 과거 전두환 전 대통령부터 노태우-김영삼 전 대통령으로 이어져오면서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통일 방안을 제시했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오히려 이러한 길을 답습하지 않은 것이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통일 방안이 좋다고 해서 통일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즉, 통일을 위해 중요한 것은 명시적인 최종 통일 방법을 제시하는 것보다,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방안들을 하나하나 실현해가야 한다는, 이른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다. 특히 남북 간에 반세기 동안 쌓여온 불신의 장벽은 대단히 높으며, 이에 어떠한 미사여구를 동원하는 것도 시급한 것이 아니라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남북 관계에서 불신의 벽을 허물어나가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데 최선을 다한 것으로 평가된다. 군사지역인 금강산과 개성 지역을 관광할 수 있게 되었음에도 전혀 변화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평양의 도심 한복판에 ‘대한민국’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쓰인 (쌀)자루가 여기저기서 눈에 띄는데도 달라진 것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들의 기대치에 걸맞게 변화하기를 희망하는 것은 정당한 우리들의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를 보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남북 관계에서 가장 나쁜 상황은 ‘팔짱 끼고 불구경하는’ 사태라고 할 수 있다. 통일을 원한다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야 한다는 것은 독일의 경험에서도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실사구시의 인식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명박 정부의 ‘실용적 대북 정책’의 근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 불신과 반목으로 대립해왔던 남북한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말 한마디로 원수가 되는 비실용성이 아니라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통일 과정에서 남측만이 자존심을 구겨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안목에서 남북 체제가 점차 유사해지고 통일에 다가갈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를 판단하고 서로 양보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나가는 지혜는,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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