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덮치는 ‘혁신’ 태풍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09.08.25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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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선진화 계획에 자구책 찾아 분주…정부는 계속 압박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4월18일 경기도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공공기관 선진화 워크숍’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기업들의 혁신 작업이 분주하다. 과거 정치권이나 퇴직 관료의 낙하산 보직으로 통하던 공기업 사장도 민간 기업 출신 최고경영자가 부임하면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경영 성적표를 매기고 퇴출 기관장이 나오는 등 혁신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공기업들의 이런 분위기는 기획재정부의 올해 보도자료를 훑어보아도 한눈에 드러난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이 지난 3월 6차까지 발표되면서 인력 감축과 조직 개편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었다. 이어 같은 달에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조사, 6월에 2008년도 공공기관 경영 평가 결과 발표, 7월에 공공기관 민영화 추진 현황 점검 등이 줄을 이었다. 공공기관의 경영 혁신 문제가 9월에 열리는 국정감사 기간에 단골 메뉴로 끼어 있는 점을 감안하면 공공기관장의 목줄이 1년 내내 좌불안석이라는 표현이 빈말이 아닌 시대가 온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8월부터 10월까지 1~3차 선진화 계획을 수립해 추진하면서 민영화·통폐합 등의 작업을 추진했고, 이어 지난해 12월에 발표한 4차 선진화 계획에서는 69개 기관에 대한 경영 효율화 계획을, 지난 1월에 발표한 5차 선진화 계획에서는 출자 기관의 지분 매각(1백13개사), 청산·폐지(17개사), 모기업 흡수·통폐합(2개사)을 발표했었다.

지난해 1차에서 3차까지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이 발표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잣대가 적용된 지난해 공공기관 성적표 평가에서 합격점을 받은 공공기관이나 기관장은 일단 한숨을 돌렸다고 볼 수 있다. 기관장 평가에서 우수 평가를 받은 기관장은 한국수자원공사, 한국조폐공사, 한국지역난방공사 등 24명이고, 기관 평가에서 A등급을 받은 기관은 한국수자원공사와 한국전력공사, 한국광물자원공사 등 18개 기관이다.

공기업 고객만족도 조사에서는 수자원공사, 석유공사, 한전 등이 우수 등급을 받았고, 준 정부기관 중에서는 한국농어촌공사 등 9개 기관이 우수 등급을, 한국전기안전공사 등 23개 기관이 양호 등급을 받았다. 반면, 국민연금공단, 근로복지공단 등 19개 기관은 ‘고객 만족도 미흡 기관’으로 평가되었다.
기관장 평가와 기관 평가, 고객만족도 평가에서 최하위를 기록한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7월 결국 불명예 퇴진했다. 반면, 세 개 분야 조사에서 모두 최상급의 결과를 얻어낸 수자원공사는 트리플 경사에 흥겨워하고 있다. 목표 제시와 추진, 실적 평가라는 시스템이 불러낸 새로운 풍경 때문에 각 공공기관 기관장들은 내부 실적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한전 최초로 민간 기업 출신 사장이 된 김쌍수 사장은 LG전자 최고경영자 시절에 효과를 보았던 경영 시스템을 벤치마킹해 한전에 적용시키고 있다. 정치인 출신인 전기안전공사 임인배 사장은 ‘1초 경영’이라는 슬로건으로 시간 중심 경영 체제로 경영 혁신을 꾀하고 있다. 전기안전공사는 기관 평가에서 B등급을 받았지만 지난해 10월에야 임사장이 부임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1초 경영’ 슬로건도 등장

일각에서는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계획이 도표상에 제시된 수치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순수예술 지원이 목표이지 공연장으로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닌 예술의전당이나 국제 간 상호 교류의 창인 국제교류재단을 재무제표상의 수익 개념이 뚜렷한 공기업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그것이다.

또, 1년 만에 인원 감축률 20~50%대를 기록한 선진화 대상 기관별 정원 조정 내용에 대해서도 우려가 나오고 있다. 대한에이즈예방협회는 인원 감축률이 54.1%로 인원이 1년도 안 되어 반 이상 날아갔고, 한국체육산업개발㈜는 46.3%, 대덕연구개발특구지원본부는 26.1%, 대한결핵협회는 18.9%의 인원 감축률을 보였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 위성백 정책총괄과장은 “업무가 바뀌거나 축소된 현실을 반영해 조직이 방만했던 것을 바로잡은 것이다. 현재의 업무량을 감안해서 인원 조정을 시도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올해 안에 7차, 8차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한다거나 안 한다거나 못 박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이미 발표했던 공기업 선진화 계획을 달성하기 위해 계속 혁신을 추진한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에서 밝혔던 선진화 추진 실적 점검을 연중 계속할 것이고, 통폐합 기관 등의 경영 효율화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대졸 신입사원 초임 인하는 100% 달성을 위해 확산을 ‘유도’하고 있고, 청년 인턴 채용은 이미 목표를 달성했다. 성과 중심의 운영 시스템 개편 방안도 마련 중이다.

지난 6월 발표된 ‘2008년 공공기관 경영 평가’는 현 정부 들어서 새로 들어선 공공기관 수장들의 경영 능력이 제대로 반영된 것이 아니라는 한계가 있었다. 이들 대부분이 지난해 하반기에 임명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경영 혁신 작업이 본격 반영된 올해의 경영 성적 평가는 내년 6월께 발표될 것이다. 그때는 현 정부에서 추진했던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이 정말로 성공했는지 여부도 함께 판가름 날 것이다. 지금 공기업들이 어떻게 혁신에 몰두하고 있는지 주택공사, 마사회, 한국전력, 수자원공사 등을 중심으로 알아본다.


갈길 먼 공공기관 민영화

현 정부는 지난해 3차례에 걸쳐 24개 공공기관에 대한 민영화 계획을 확정 발표했다. 이 중 그랜드코리아레저, 안산도시개발, 한국지역난방공사 등 아홉 개 기관은 올해 안으로 매각될 예정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나 대한주택보증, 한전KPS 등 대형 물건은 매각이 2010년 이후에 예정되어 있다.

이 중 관심을 끄는 민영화 대상 기관은 그랜드코리아레저, 지역난방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등이다.

그랜드코리아레저와 지역난방공사는 국내 대기업에서도 크게 관심을 보일 만한 공기업이고 정치적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라 정재계에서 두루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강원도 정선에서 내국인 입장이 가능한 카지노를 운영하는 강원랜드의 경우 국민의 정부 시절 설립되고 증시에 상장된 이후 끊임없이 정치인 배후설에 휘말리는 한편, 친정부 인사의 낙하산 착륙지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랜드코리아레저는 외국인 전용 카지노로 서울 남산의 밀레니엄그랜드힐튼 호텔과 서울 코엑스의 세븐럭 강남점, 부산의 롯데점 등 요지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미 민영화를 위한 자산 평가를 완료한 그랜드레저코리아는 매각 공고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경우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흘러나오는 정치적 커넥션에 의한 매각설로 현 정부를 당황스럽게 만들고 있는 경우이다. 2010년 이후로 매각 작업이 잡혀져 있어서 실제로 현 정부에서 매각이 이루어질지는 속단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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