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은 정국 주도권 잃고 야권, ‘포스트 DJ’ 경쟁 불붙는다”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09.08.25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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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전문가 5인이 본 ‘정국 행로’ / “여야 모두 정치적 부담 커 공백 상태 올 수도”

▲ 연세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 전 대통령의 빈소에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 허태열 최고위원, 이윤성 국회부의장이 조문을 하고 있다. ⓒ주간사진공동취재단


폭풍 전야의 고요가 흐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에 정치권은 예정된 모든 일정을 중단한 채 일제히 추모와 애도에 들어갔다.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에 이어 두 번째 맞는 ‘조문 정국’인 셈이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향후 정국이 어떻게 흘러갈지를 예의 주시하며 지켜보는 분위기이다. 3개월 전 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 때와는 상황이 사뭇 다르지만, 민주 세력의 구심점 역할을 해 온 DJ의 위상을 볼 때 후폭풍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8월 개각설, 9월 정기국회와 10월 재·보선 등 굵직한 정치 일정을 눈앞에 둔 상황이라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한 여야의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DJ를 ‘아버지’라고 여기는 민주당의 앞날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불투명성이 커졌다.

<시사저널>은 고원 상지대 학술연구 교수,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 이경헌 포스커뮤니케이션 대표,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황인상 P&C 정책개발원 대표 등 정치 전문가 다섯 사람으로부터 ‘DJ 서거 이후의 정국’이 어떻게 흘러갈지 들어보았다.

▒ 여권, 두 번의 ‘국상’에 망연자실

▲ 국회 빈소에 조문하러 온 박근혜 의원. ⓒ시사저널 이종현

여권 입장에서는 올해에만 두 번째 맞게 된 ‘조문 정국’이 달가울 리가 없다. 지난 5월 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 이후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지지율이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는 아찔한 경험을 했다. ‘DJ 서거’ 역시 현 정권이 정국을 주도하는 데 장애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중도 실용’이라는 국정 운영 기조 아래 집권 2기 드라이브를 걸어온 이대통령이 정국 주도권을 계속 잡아가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청와대가 의도와는 무관하게 정국 주도권을 상당 부분 상실하게 되었다”라고 내다보았다. 신교수는 “분위기 쇄신을 위해 단행하려던 개각 일정이 뒤로 밀리고, 서민 행보도 상당 부분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로서는 이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당장은 민심의 향배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한 해에 ‘국상’을 두 번 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 자체가 민심을 동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여권이 발 빠르게 조문 행렬에 합류하고, 국민장에서 한 단계 격상한 국장을 치르는 등 최대의 예우를 갖추려 노력한 것도 민심을 고려한 행보로 여겨진다. 실제 여권 내에서는 김 전 대통령이 병상에 있을 때부터 다방면으로 민심 파악에 나서 ‘서거 이후’를 준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황인상 P&C 정책개발원 대표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정국이 담고 있는 ‘교훈’을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황대표는 “현 정권은 과거 두 정권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세워졌는데, 서거 정국을 거치면서 재평가 작업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다. 이제는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일방적인 평가가 더 이상 먹혀들지 않을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과거 정권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만으로 정국을 주도하기는 힘들어졌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국정 운영에 대한 여권의 책임이 더 부각될 것으로 예상했다. 황대표는 “국정 운영의 실패를 과거 정권 탓으로 돌릴 수 없게 되면서 수권자의 책임이 더 강해질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대통령이 굳이 정치적 메시지를 들고 나와 정국을 주도하려 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당분간 추모 분위기에 동참하면서 서거 정국을 조용히 마무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설명이다. 황대표는 “조문 정국에서 강경 드라이브를 거는 것은 일단 우리 정서에 맞지가 않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때 이미 경험했다. 정치적으로 예민한 감정 싸움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에게 생채기를 낼 수 있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여권이 반드시 불리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때와 달리 이번에는 ‘반(反)MB(이명박)’ 민심이 들불처럼 확산되지는 않고 있다. 오히려 DJ 서거 전 ‘병상 정국’을 통해 화해 무드가 형성되기도 했다. 그런 만큼 여권은 대립보다는 화해 쪽으로 분위기를 이끌어가려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경헌 포스커뮤니케이션 대표는 “여권에서 정국을 주도하기 위한 키워드는 화해와 상생이다. 그 연장선 속에서 당·정·청 개편이 이루어질 것이고, 선거구제와 행정구역 개편 등 정치 개혁 이슈도 주도하려고 할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 민주당, 정국 주도권 잡기 힘들어

그렇다면 민주당 등 야권이 정국을 주도하는 반전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전망이 많았다. 고원 상지대 학술연구 교수는 “객관적인 측면에서 민주당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된 것은 사실이지만, 내적 역량이 충분하지 못한 상황에서 주도권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고교수는 “과거 두 전직 대통령에게 덧씌워진 부정적인 부분이 사라졌지만, 대신 구심점도 없어져 앞으로 원심력이 작용할 가능성이 상당하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정국 공백 상태가 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신율 교수는 “민주당은 스스로 고아가 되었다고 했는데, DJ의 부재로 인해 전통적인 지지 기반인 호남이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결국,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야 하지만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미디어법 장외 투쟁 추동력도 서거 정국에서 상당 부분 묻힐 가능성이 크다”라고 지적했다.

이경헌 대표는 “화해와 상생 분위기가 형성되면 장외 투쟁과 같은 강경한 대여 투쟁이 힘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DJ 서거는 여권은 물론 민주당에게도 정치적 부담을 안겨준 셈이다. 그런 만큼 조문 정국 이후 전략을 잡는 데 상당히 신중할 수밖에 없다. 우선 DJ의 정치 철학이 의회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국회 등원으로 가닥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황인상 대표도 “그동안 여·야 대치 국면에서 야당이 반사 이익을 얻은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런 대응 방식이 여전히 유효한지는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서거 정국 이후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비전을 제시할 의무가 생겼다. ‘3김 시대’를 벗어나 정치가 한 단계 성숙하기 위한 비전을 제시해 평가받는 과정이 있을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포스트 DJ’를 향한 후계자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범민주계의 인적 구조상 그 과정에서 다소 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홍소장은 “민주 진영에서 DJ는 너무 큰 산이었다. 이는 후계 구도가 미리 형성되지 못한 배경이기도 하다. 정신적인 지주가 사라지면서 단기적으로 민주 진영의 위축이 예상되지만, 장기적으로 DJ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노선과 리더십이 등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8월18일 민주당 당사에서 열린 긴급 지도부대책회의에서 정세균 대표(오른쪽 두 번째)가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범민주 세력 대통합’ 가능성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김 전 대통령이 생전에 강조해 온 ‘범민주 세력 대통합’이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당장은 그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지만 각 정파별로 처한 상황에 따라 입장 차를 보일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일단 DJ 서거로 적통성을 인정받은 민주당이 통합 논의를 주도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경헌 대표는 “DJ의 유지이기도 한 연대와 통합을 적극적으로 실현시킬 막중한 임무를 민주당이 떠안게 되었다. 분열과 갈등으로 인해 실패할 경우 정치적 타격도 그만큼 커질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황인상 대표는 “범민주계에서는 서거 정국을 강력한 대여 투쟁을 위한 연대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통합의 대의에는 찬성하지만 정치적 이해가 얽힌 현실을 비춰볼 때 균열 요인이 더 강해 보인다. 특히 지역으로 내려가면 그 정도가 훨씬 심하다. 서거 분위기에 따라 당장은 통합을 강조하지만 아직은 통합이냐 분열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라고 밝혔다.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로 ‘상실감의 연대’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눈에 띈다. 노 전 대통령 서거로 부산·경남 지역에 상실감이 강하고, 김 전 대통령 서거로 호남 지역에 상실감이 커진 상황이 친노 진영과 민주당의 연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신율 교수는 “과거 영·호남 대결 구도에서 벗어나 ‘PK(부산·경남)+호남’ 대 ‘TK(대구·경북)+충청’ 구도가 형성될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이처럼 연대 또는 통합 논의는 최근 창당을 공식화한 친노 신당의 정치적 영향력과 맞물려 진행될 수밖에 없다. 황인상 대표는 “스타급 정치인의 영입은 주춤하고 앞으로도 움직임이 더딜 것이다. 반면, 민주당 기반이 취약한 영남 지역에서 대중적 파급력은 있다고 봐야 한다. 흥행과 실패 요소를 동시에 갖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경헌 대표는 “정당으로서 독자적인 깃발을 올린 만큼 이번 10월 재·보선에서 영향력을 보여주려고 할 것이다. 결국, 양산 지역 선거가 친노 신당의 성공을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예상했다.

DJ 서거로 민주당의 호남색이 옅어질 것이라는 전망은 통합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홍형식 소장은 “그동안 친노 진영은 민주당의 지역주의 행태를 비판해왔다. DJ에 의존하는 정치에도 반감이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서거 정국 이후에는 좀더 자유로운 관계 속에서 논의를 진행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 10월 재·보선, 여야 모두 전면전

DJ 서거가 오는 10월에 있을 재·보선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경헌 대표는 “선거의 실질적인 규모가 커지고 후보 구도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다. 특히 야당의 경우 두 지도자의 업적을 계승하면서 반MB 전선을 확대해야 하는 만큼 민주 정부 10년을 대표할 거물급 후보를 전략 공천할 가능성이 커졌다. 마찬가지로 민주 세력 단일 후보에 대한 요구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여당도 사활을 건 전면전을 펼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신율 교수는 “안산 지역의 경우 호남 출신이 많다. DJ 서거가 노 전 대통령 서거 때처럼 정치적 의사로 표출될 경우 선거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고 내다보았다. 반면, 홍형식 소장은 “두 전직 대통령이 있을 때와 달리 상대를 공격하는 선거 양상은 아무래도 약화할 것이다. 과거처럼 배제 선거 형태로 선거가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과 DJ가 생존해 있을 때는 따르는 측도 공격하는 측도 정치적 이해득실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게 되었다”라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계파 갈등 다시 시작?

최근 3개월 간격으로 잇따르게 전개되고 있는 ‘서거 정국’이 지나가면 잠시 수면 아래 있던 한나라당 내의 계파 갈등이 다시 본격적으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외부의 도전이 있을 경우 내부 단합이 요구되지만, 한나라당의 경우 그런 경험이 별로 없다. 박근혜 전 대표는 계속 견제구를 던지고,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복귀에 집중할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고원 상지대 교수는 “반대편에도 마찬가지로 관성이 작용한다. 한나라당 내에도 구심력보다 원심력이 강할 것이다. ‘친박(친박근혜)계’측에서 지분을 늘리려 할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이경헌 포스커뮤니케이션 대표는 “선거구제와 행정구역 개편 등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내놓은 정치 개혁 이슈가 오히려 갈등의 도화선이 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대표는 “박 전 대표와 사전 협의가 없었다. 그런 데다 이슈 자체가 박 전 대표의 정치 생존권을 위협하는 모양새이다. 영남 세력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것인데, 이는 박 전 대표의 정치적 영향력을 축소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반발을 살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반면, 황인상 P&C 정책개발원 대표는 “지금의 조문 정국에서는 계파 갈등을 극명하게 노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라며 갈등이 당분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황대표는 “조기 전대는 이미 불가능해졌고, 입각 문제는 적당한 안배가 있을 것이다. 당분간 계파 간 대충돌을 추진하기보다는 일부 보완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라고 관측했다. 친박 인사의 입각,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복귀 등이 계파 간 조정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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