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엣지’만 살고 ‘리얼’은 죽었다
  • 배정현 (쇼핑 칼럼니스트) ()
  • 승인 2009.09.01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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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스타일> 속의 패션, 과장 심해

▲ SBS 드라마 가운데 한 장면. 오른쪽은 주인공을 맡은 김혜수. ⓒSBS 제공

잡지사 패션 에디터(편집인)가 인기 직업으로 떠올랐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덕분에 패션 에디터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면, 이번 SBS 드라마 <스타일>을 통해서는 아예 여자들이 꿈꾸는 가장 멋지고 스타일리시한 직업으로 정의되어버렸다. 잡지사의 패션 에디터라는 직업은 겉으로는 여자들의 동경을 받을 요소를 넉넉히 가지고 있다. 백화점에도 출시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신상(신상품)’을 제일 먼저 경험할 수 있으며, 파리, 뉴욕, 런던, 밀라노에서 열리는 해외 패션쇼는 물론 국내 디자이너 패션쇼에 초대되고 함께 유행을 만들어가는 화려한 직업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모든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그러하듯 드라마에서 보이는 것이 진실이거나, 전부는 아니다.

그동안 의사, 변호사, 교수, 비행기 조종사, 건축가, 소믈리에(와인 감별사), 바리스타(커피 제조 전문가) 등 성공한 전문직을 다룬 드라마가 많이 있었다. 하지만 잡지사의 편집장과 패션 에디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화려한 패션 영역을 소개하는 국내 드라마는 <스타일>이 처음이다. 기존 드라마들이 실제 종사자들로부터 현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는 불평을 받았듯이 이번 드라마 <스타일>에 대해서도 현직에서 근무하는 잡지사 패션 에디터들과 편집장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드라마 <스타일>의 원작은 2008년 상금 1억원이 걸린 제4회 세계문학상을 받은 백영옥씨의 소설이다. 그녀는 잡지사 에디터(연재 기사 담당)로 일했던 경험을 소설에 담았다. 드라마는 이와 달리 원작의 기본 얼개만 남겨두고 세부 내용은 과장된 허구로 채웠다. 지난 10년 동안 잡지사 패션 에디터로 일했고 지금도 ‘패션 영역’에서 있는 한 사람으로서 이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부끄럽다 못해 손발이 오그라드는 불편함을 느낀다. 과장되게 부풀려진 화려함 탓이다.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의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일하는 촬영장에서 박기자는 혼자 우아하게 맥시 드레스를 입고 걸어다닌다. 심지어 높이 10cm 킬힐도 부족해서 높이 15cm의 ‘핀힐’을 신고 다닌다(핀힐은 패션모델들도 가끔 넘어지는 위험한 신발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잡지사 패션 에디터는 박기자처럼 백화점 명품 매장에서 금방 꺼내온 화려한 옷을 입을 것이라고 생각할 듯하다. 하지만 필자는 지난 10년간 잡지사 패션 에디터로 근무하면서 단 한 명도 그런 사람들을 만나 본 적이 없다.

그리고 패션 에디터는 억대 연봉자가 아니다. 남들이 보기에 화려한 직업임에는 틀림없지만, 드라마 속 김혜수처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명품으로 도배할 만큼 억대 연봉자나, 3억원짜리 자동차를 발행인에게 선물받는 편집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한 달 반 이상을 야근하고, 마감이 걸린 1주일 동안은 사생활도 포기한 채 새벽까지 일해야 하는 패션 에디터는 월급에 기자수당, 여기에 야근수당과 주말 출근수당을 모두 합친다 하더라도 대기업 사원의 연봉 수준이다. 

패션 잡지에서 ‘에지(edge)’와 ‘시크(chic)’를 빼면 쓸 원고가 없다고 할 정도로 패션업계 종사자들은 영어를 필요 이상으로 사용한다. 의상이나 스타일을 소개하는 두세 줄도 안 되는 패션 화보의 원고에서는 조사만 빼고 모두 영어 단어를 쓰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패션 에디터를 꼬집기라도 하듯 드라마 속 주인공은 “원고도 엣지(에지가 정확한 표현) 있게, 섭외도 엣지 있게, 전부다 엣지 있게 해!”라며 ‘엣지’를 입에 달고 산다. 그러다 보니 60세가 훌쩍 넘은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저녁 식사 후 ‘설거지도 엣지 있게!’라고 할 만큼 ‘엣지’는 대한민국 여자들의 최고 유행어가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과연 ‘엣지’는 뭘까? 사전적인 의미는 모서리, 끝, 테두리, 날이라는 뜻이지만 패션 필드에서는 멋진 스타일의 총칭이다. 포인트를 주어 밋밋하지 않게 만들거나, 나만의 독특하고 새로운 스타일을 의미한다. 단순하지만 보는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는 힘, 바로 그것이 에지이다.

주인공 박기자 역을 연기하는 김혜수는 엣지 스타일을 대변하고 있다. 그 스타일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갖가지 명품으로 도배한 ‘럭셔리’ 스타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대중들이 원하는 엣지 스타일이 아니며, 따라 입고 싶은 워너비 스타일은 더욱 아니다. 예쁘지만 과해서 대중들로서는 따라 할 수 없는 스타일이다. 얼마 전 종영한 MBC 드라마 <내조의 여왕>의 주인공 김남주는 ‘천지애룩’이라는 신드롬을 일으켰다. 드라마 <스타일>은 패셔니스타 김혜수를 내세워 패션이라는 화려한 소재를 다루었음에도 지나치게 잠잠하다.

‘김혜수 패션’ 신드롬도 없어

김남주가 극 중에서 두른 스카프는 방송 이후 ‘완판(완전 판매)’되었다. 천지애 재킷과 가방은 동대문시장에까지 모사품이 나와 인기리에 판매되었다. 김남주는 드라마에서 리얼 워너비 패션을 소개하고 ‘완판녀’라는 애칭으로 각종 광고모델로 발탁되었다. 드라마 <스타일>에서 보이는 김혜수 패션과 스타일은 이와 다르다. 체형적으로 김혜수 의상을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는 한국인은 드물고 그 스타일을 그대로 입고 다닐 수 있는 곳은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으니까!

시청자는 드라마의 구성, 줄거리, 주인공의 연기에 주목하는 것 못지않게 드라마 패션을 감상하는 재미를 즐긴다. 드라마 속 패션은 시청자들에게 드라마를 보는 재미 이상으로 쏠쏠한 정보들을 제공한다. 문제는 드라마에서 박기자가 입고 나오는 옷들이다. 드라마 요소상 과장은 필요하지만 지나친 과장은 허황되게 보일 뿐이다. 심지어 그녀가 모델도, 연예인도 아닌 출퇴근하는 커리어우먼을 연기하면서 연예인도 입기 힘든 의상들을 소개하고 있으니 더욱 더 남의 나라 이야기로 보일 뿐이요, 드라마의 몰입을 방해하는 가장 큰 문젯거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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