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랑’ 겪고 일어선 사정 권력 1번지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9.09.01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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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규 검찰총장이 부임하자 검찰이 안정기로 접어든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안팎에서는 그가 힘 있게 일을 추진할 수 있겠느냐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총장은 검찰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검

ⓒ시사저널 박은숙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 서거(5월23일)→임채진 검찰총장 사퇴(6월5일)→‘박연차 게이트’ 수사 결과 발표(6월12일)→이인규 중수부장 사퇴(7월7일)→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7월13일)→천후보자 낙마(7월14일)→검찰 고위 간부 인사(8월10일)→김준규 후보자 인사청문회(8월17일)→김준규 총장 취임(8월20일)→중간 간부 인사(8월25일).’

지난 석 달 동안 검찰은 그야말로 풍랑의 연속이었다. ‘스폰서 문제’ 등으로 천성관 후보자가 낙마했을 때는 “어떻게 저런 사람을 총장 후보로 내정했느냐”라는 검찰 내부의 강한 불만이 청사 담장 밖으로 흘러나오기도 했다. 국민의 신뢰는 떨어졌고, 검찰의 자존심은 심하게 구겨졌다.   

김준규 후보자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여러 차례 위장 전입했던 사실과 다운계약서 등이 도마에 오르자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을 한 것에 대해 사과드린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국회 법사위 민주당 위원들은 “사퇴할 의향이 없느냐”라고 강하게 몰아붙였다. 청문회 다음 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함으로써 ‘김준규 후보자 문제’는 여론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그는 ‘조문 정국’이던 지난 8월20일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다.

“김총장, 법무부와의 관계 잘 해나갈지 걱정”

▲ 이명박 대통령이 김준규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주고 있다. ⓒ연합뉴스

어찌 되었든 김총장이 부임하면서 표면적으로 검찰은 ‘안정기’로 접어든 것으로 보이지만, 검찰 안팎에서는 벌써부터 ‘김준규호’에 대해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과연 김총장이 힘 있게 일을 추진할 수 있겠느냐’라는 것이다. 그는 수사 경력이 그리 많지 않은 ‘국제통’으로 비교적 ‘젊은’ 검찰총장에 속한다. 사법연수원 11기(사법시험 21회) 출신으로 전임 임채진 총장(연수원 9기)보다 두 기수 후배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의 한 간부는 “청와대가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을 검찰총장 후보로 내정했을 때부터 간과한 부분이 있다. 그동안 검찰총장은 대법원의 중간급 수준인 연수원 기수가 맡아왔다. 그런데 김총장의 연수원 기수는 지방법원장급이어서 향후 법원과의 관계에서 밀리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그리고 김경한 법무부장관과 비교해서도 나이로 보나 연수원 선후배로 보나 한참 후배여서 법무부와의 관계를 잘 해나갈 수 있을지도 걱정된다”라고 말했다. 청와대의 ‘기수 파괴’를 통한 파격 인사가 검찰 조직 발전에 긍정적으로만 작용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임채진 총장이 물러난 후 후임 총장이 거론될 때 검찰 안팎에서는 연수원 10기인 권재진 당시 서울고검장이 유력하게 점쳐졌다. 천후보자가 낙마했을 때도 권 전 고검장이 다시 부상했으나 청와대는 김준규 전 대전고검장을 최종 낙점했다. 김총장을 비교적 잘 아는 한 부장검사는 “김총장이 겉으로는 약한 것처럼 보이나 함께 지내보면 ‘성깔’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유약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강단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김총장은 어떻게 검찰을 이끌어갈 것인가. 지난 8월17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그는 “검찰이 변모해야 된다는 것이 내 기본 생각이다. 그중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은 검찰의 수사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사하는 방식, 일하는 방식, 수사하는 사람들의 자세, 이런 것이 바뀌어야 된다”라고 말했다.

역대 검찰총장들이 취임 일성으로 강조했던 ‘검찰 개혁’을 김총장은 ‘변모’라는 부드러운 표현으로 대신했다. 특히 ‘수사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수사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것은 두 가지의 교체를 의미한다. 조직 구조의 개편과 인사 이동이다. 

그 첫 단추는 인사 문제에서 시작되었다. 검찰청법 34조1항에 따르면, 검사의 임명과 보직은 대통령이 행한다. 법무부장관은 거기에 제청권을 행사하고, 검찰총장은 법무부장관의 제청권 행사를 돕기 위해 의견을 제시하도록 되어 있다. 김총장은 내정자 신분이었던 지난 8월10일 단행된 검사장급 이상 고위 간부 인사 때 김경한 법무부장관에게 ‘충분한 의견’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인사에는 김장관의 의중이 상당 부분 실려 있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당시 고위 간부 인사와 관련해 이른바 ‘K·K·K 출신’이 검찰 인사를 휩쓸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고려대·공안·대구·경북(TK) 출신’이 대거 영전했다는 것이다. 특히 ‘공안통’의 약진이 눈에 띄었다(60~61쪽 기사 참조).

김총장이 취임한 후인 지난 8월25일 단행된 3백9명의 중간 간부 인사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법무부는 전통적으로 ‘특수통’이 이끌었던 자리에 ‘기획통’이 기용되면서 관행이 파괴되었다는 점에 방점을 찍었다. 대표적으로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와 대검찰청 중수부장을 보좌하는 수사기획관에 김주현 법무부 대변인과 이창재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이 각각 보임된 사례를 꼽는다. “새로운 수사 패러다임을 모색하려는 조치였다”라는 것이 법무부의 설명이다. 중간 간부 인사는 김총장의 의견을 대폭 수용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인사가 김총장의 ‘첫 작품’이라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김총장의 ‘변모’ 의지가 상당히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에 강한 의문을 갖게 했던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이 대거 영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박연차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했던 중수부 출신들이 잇따라 승진하거나 요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으로 임명된 우병우 대검 중앙수사1과장은 ‘박연차 게이트’ 수사 당시 ‘이인규 중수부장-홍만표 수사기획관’ 등과 함께 ‘환상의 트리플’로 불렸다. 김총장과 지난 2005년부터 2년여 동안 법무부 법무실에서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는 우과장은 인사청문회 준비팀에도 참여했다. 검찰 내에서 범죄정보기획관 자리는 검사장 승진을 위한 발판으로 여겨지는 핵심 요직으로 꼽힌다. 노 전 대통령 수사 당시 언론 브리핑을 담당했던 홍만표 전 수사기획관은 ‘피의 사실 공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승진이 불가능할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고위 간부 인사에서 서울고검 송무부장으로 영전했다.

인사, ‘K·K·K’ 출신이 휩쓸고 공안통 약진 눈에 띄어

▲ 세금 소송 취하로 KBS에 손실을 끼친 혐의로 기소된 정연주 전 KBS 사장이 무죄를 선고받은 뒤 서울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 지난 8월18일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정연주 전 KBS 사장을 기소했던 박은석 법무연수원 교수도 요직으로 꼽히는 법무부 정책기획단으로 기용되었다. 올해 1월 MBC <PD수첩> 제작진의 기소 여부를 놓고 검찰 수뇌부와 마찰을 빚었던 임수빈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이 사직서를 낸 후 이 사건을 넘겨받아 제작진을 기소했던 전현준 형사6부장은 ‘경제 특수부’로 불리는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장으로 발탁되었다.

이밖에 이명박 대통령이 연루되었던 BBK 사건을 수사한 김기동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은 특수3부장으로, 이명박 정부의 첫 청와대 민정2비서관이었던 김강욱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장은 법무부 대변인으로 각각 임명되었다. 김총장은 향후 ‘공안 분야’를 더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공안 분야에 대해서 전문 인력을 좀 확보해야 되겠다는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총장은 지난 8월27일 검찰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출신지와 출신 고교를 삭제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연과 학연 등으로 얽힌 ‘검찰 내 집단 문화’를 없애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검찰의 인사제청권을 갖고 있는 법무부 인사 자료에는 출신지와 출신 고교가 그대로 남아 있어 김총장의 아이디어가 실현될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출신지와 출신 고교를 삭제하면 출신 대학에 비중을 두는 것 아니냐”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을 비롯해 국정원·경찰·국세청 등 이른바 4대 권력기관과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각 기관마다 독립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것이 노 전 대통령의 원칙이었다. 검찰 역시 정권에 크게 휘둘리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검찰이 지나치게 정권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냐”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현 정부 들어 ‘표적 수사’ ‘짜 맞추기 수사’ ‘과잉 수사’라는 시비가 부쩍 늘었다. 특히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과 진보 성향의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검찰 수사에 불만이 많다.

당장 검찰의 촛불 집회 참가자들과 MBC <PD수첩> 제작진 무더기 기소를 비롯해 ‘박연차 게이트’ 등 노 전 대통령 측근 인사들에 대한 수사, 정연주 KBS 사장 기소,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긴급 체포 등 현 정부 들어 벌어진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게 했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기자와 만났던 전직 검찰총장은 “정권이 교체되면 전 정권을 수사해야 하는 것이 검찰의 숙명이고 운명이다. 안타깝지만 그것이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검찰이 정치적으로 편향성을 보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더군다나 검찰에 의해 기소되었던 ‘미네르바’ 박대성씨와 정연주 전 KBS 사장이 무죄 판결을 받음으로써 또 한 차례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도마에 올랐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한국학 교수는 자신의 저서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에서 “이명박 정부의 검찰은 공안 기관이 아닌 사안(私安) 기관이다”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인사 문제를 일단 마무리지은 김총장의 다음 수순은 검찰 조직의 구조적인 개편으로 전망되고 있다. 가장 먼저 거론되고 있는 것이 내부 감찰 기능의 강화이다. 노 전 대통령 서거로 존폐 논란이 일었던 대검 중수부 폐지나 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과 같은 정책은 김총장이 자신의 책상 서랍에 그냥 넣어둘 가능성이 크다. 그 대신 일선 지방검찰청의 특수부 역할을 강화하는 방식을 채택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중수부는 흩어져 있다가 필요할 경우에 소집되는 ‘예비군 방식’을 채택할 가능성이 크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김총장은 어떤 일을 빨리 진행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특히 조직 구조 개편은 쉽게 내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각 조직별로 자신들의 권한을 빼앗겼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에 예민한 문제이다. 따라서 김총장이 내부에서 반발하지 않는 선에서 조직 개편을 단행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시사저널 유장훈
검찰은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경제토론방에 지난해 7월30일 올렸던 ‘드디어 외환보유고가 터지는구나’라는 글과 12월29일 게재했던 ‘대정부 긴급 공문 발송-1보’라는 글 등이 허위 사실에 해당한다며 지난 1월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대성씨를 긴급 체포했다. 하지만 박씨는 지난 4월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그러면서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또 한 차례 논란을 빚었다. 현재 재테크 관련 서적을 제작하고 있는 박씨를 지난 8월25일 만났다.

검찰에서 조사받은 과정을 설명해달라.

검찰 조사를 받고 나니 나처럼 법적으로 당한 사람들이 왜 외국으로 나가려고 하는지 그 심정을 이해하겠더라. 지난 1월 임의동행 형식으로 검찰에 갔다. 듣도 보도 못한 ‘전기통신기본법’ 위반이라고 했다. 당시에는 경황이 없었지만 임의동행 형식이어서 굳이 검찰에 따라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도 해명을 하려고 갔는데 바로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되었다.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사법권의 오·남용이다.

당시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것인가?

나는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글을 썼다. 하지만 검찰에서 언론에 내 이름과 주소, 학교 등을 일부러 흘렸다고 본다. 인격 모독이다. 프라이버시를 침해한 여론 재판이었다.

검찰은 당신의 글이 정부의 외환 관리에 피해를 주었다고 했는데.

내 글이 우리 정부의 외환 관리에 얼마나 피해를 주었는지 구체적인 물증이 없었다. 추정치로만 피해를 입혔다고 하는데 납득할 수 없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다시는 글을 쓰지 않겠다’라고 했는데, 다시 글을 쓰고 있다.

당시 출퇴근 식으로 조사를 받았다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수갑을 차고 밧줄로 손이 묶인 채 고무신을 신고서 조사를 받는데 어떻게 정상적인 대답을 할 수 있나. 조사받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될 수 있는 한 빨리 조사받고 돌아오고 싶은 마음뿐이다. 검찰의 조사에 부인하고, 부인하다 나중에는 귀찮으니까 일정 부분 시인하고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마음대로 해라’라고 자포자기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조사받은 나 같은 젊은 사람도 이런데 나이 든 사람은 어떻게 버티겠나.

검찰 조사가 무리했다고 보는가?

내 글이 정부의 외환보유고에 22억 달러 피해를 입혔다면 구체적인 증거를 대야 할 것이 아닌가. 증거도 없이 그저 막연하게 추정한 것을 가지고 무리하게 수사를 했다. 정부의 정책 실패를 개인 탓으로 떠넘기는 것이 어디 있나. 건전한 비판 의식을 갖고 글을 썼는데 잡아넣으면 결국 ‘비판은 너희 집에서 해라’라는 말밖에 안 된다. 사회적 비판은 10명이 하는 것보다 100명이 하는 것이 더 좋은 창의적 결과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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