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안 만드는 ‘눈먼 돈’ 샌다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9.09.01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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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사업 지원금 부정 수급 많아…감시 체계 없이 “인력 부족하다” 타령

▲ 서울 중구 장교동에 위치한 서울 종합고용지원센터. ⓒ시사저널 임준선

사회적 일자리 창출 사업 지원금이 줄줄 새고 있다. 지난해 1천3백98억원에서 올해 5백억원 가까이 늘어난 1천8백80억원의 예산이 책정되었지만 상당 금액이 ‘눈먼 돈’이 되어 사라지고 있다. 그동안 공공연하게 떠돌던 ‘지원금 빼먹기’가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서울 남부지검 형사 6부는 지난 7월27일 노동부에서 추진하는 사회적 일자리 창출 사업의 지원금을 편취한 일당을 적발했다. 이 중 3명을 구속하고 나머지 15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들의 지원금 편취 수법은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검찰에 따르면 ㅂ식품회사 대표였던 이 아무개씨는 지난 2006년 1월 사단법인 형식의 탈북자협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씨는 자신의 회사에 근무하는 탈북자 직원들을 협회에서 고용한 것처럼 서류를 꾸몄다. 이런 방식으로 3년6개월 동안 노동부로부터 9억2천여 만원을 챙겼다.

이 사건을 수사한 김현덕 검사는 “2007년 7월 관련법이 개정되기 전까지만 해도 지원금은 비영리 법인만 수령이 가능했다. 피의자는 보조금 신청 5일 전에 협회를 결성했는데도 전혀 걸러지지가 않았다”라고 말했다. 제도의 허점을 알아챈 이씨의 범행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가짜 서류 꾸며놓고 양쪽에서 중복 수령하기도

이씨는 통일부 지원금에도 손을 댔다. 현재 통일부가 운영하는 ‘탈북자 정착을 위한 고용 지원금’과 ‘취업 장려금 제도’를 통해 탈북자를 고용한 업주는 최장 3년까지 매월 50만~70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1인당 최고 2천2백80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는 것이다. 탈북자가 1년 이상 같은 직장에 근무해도 3회에 걸쳐 매년 4백50만~5백50만원이 지원된다. 이씨는 이같은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통일부로부터 3천5백만원을 중복 수령했다. 

자동차 외형 복원 전문 업체인 ㅇ사도 비슷한 방법으로 노동부뿐 아니라 통일부로부터 1억2천2백만원을 빼냈다. 이 회사는 지난 1월 교도소 재소자와 출소자 30명을 고용해 자동차 정비 사업을 하겠다는 취지의 신청서를 노동부에 제출했다. 노동부는 이 회사가 신청한 30명에 대한 3개월 지원금 8천100만원을 우선 지급했다. 하지만 이 회사는 단순히 탈북자들을 교육시킨 후 창업시킨 것에 불과했다. 노동부가 지난 2003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사회적 일자리 창출 사업 지원금 제도’에 따르면 탈북자, 장애인, 재소자 등 취약 계층을 고용하면 지원금을 주게 되어 있다.

김현덕 검사는 “이 회사의 경우 사회적 기업에 선정되었기 때문에 향후 2년간 6억4천만원을 수령할 예정이었다. 검찰에 적발되지 않았다면 이 예산이 고스란히 낭비될 수도 있었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처럼 1천억원이 넘는 사회적 일자리 창출 사업 지원금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줄줄 새고 있는데도 관련 부처인 노동부는 여전히 팔짱만 끼고 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공염불에 그쳤다. 똑같은 형식의 부정 수급 사례가 매년 되풀이되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시사저널>이 민주당 김상희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노동부의 ‘사회적 일자리 부정 수급 현황’ 자료에 따르면 단속 건수는 지난 2005년 6건에서 2009년 7월 현재 16건으로 증가했다. 단속 실적도 세 배가량 늘어났다. 하지만 ‘속빈 강정’에 불과하다. 올해 단속된 16건의 부정 수급액이 1억5천3백만원에 불과한데, 이것은 최근 검찰에 적발된 액수의 5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최근 5년간 노동부가 단속한 액수를 다 합쳐도 검찰이 단속한 액수의 절반 정도에 그치고 있다. 때문에 노동부의 지원금 점검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지원받아야 할 소외 계층은 손가락만 빨아”

▲ 한승수 총리가 일자리를 창출하는 한 영세 제과 공장을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대해 노동부측은 현실적인 한계를 토로한다. 노동부의 한 관계자는 “일선 고용지원센터에 가보면 한두 명이 관련 일을 처리하고 있다. 사업 규모에 비해 관리 인력이 턱없이 모자라다 보니 현장 실사를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라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도 “문제가 드러난 곳은 일부일 뿐이다”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대부분은 건실하게 운영되는데, 일부 미꾸라지들이 흙탕물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관련 시민단체는 반대 의견을 내놓고 있다. 지금까지 적발된 부정 수급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박찬우 나눔과 희망 대표는 “탈북자뿐 아니라 장애인을 수용하는 사회복지 시설 역시 지원금을 받고 있지만 실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시설 대표자나 직원이 이 돈을 유용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게 나타나고 있다. 어느 정도까지 예산이 빠져나가고 있는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임수철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책실장도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빼낼 수 있는 것이 사회적 일자리 창출 사업 지원금이다. (예산이 새는 탓에) 정작 지원을 받아야 할 소외 계층은 손가락만 빨고 있다. 문제는 노동부의 시스템이다. 일이 터지면 그때만 몇 군데 선택해서 조사해 실적을 올리는 것이 노동부의 현실이다. 전수조사를 하면 더 나올 수도 있는데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현장 조사를 하지 않아 지원금을 신청한 기업이나 단체는 지원금을 ‘눈먼 돈’으로 여기고 있다.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노동부의 검증 시스템을 종합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고용지원센터를 통해 지원자를 알선해주는 것도 ‘짜고 치는 고스톱’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이번에 사건을 조사한 남부지검 형사6부 역시 비슷한 의견이다. 김현덕 검사는 “지금 하는 실사는 직원을 고용했는지 여부만 서류로 확인한다. 그런 탓에 부정 수급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사회적 기업이 취약 계층을 고용해 서비스를 제공할 능력이 있는지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사회적 기업 인증 제도에 대한 손질도 요구되고 있다. 김검사는 “사회적 일자리 창출 사업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는 우선 노동부장관으로부터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을 받아야 한다. 제도를 악용할 우려가 높음에도 노동부는 사회적 기업 선정을 위한 실사를 외부 용역으로 하고 있다. 노동부와 실사 업체가 공동으로 실사함으로서 효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최근 재계에서 사회적 기업이 화두가 되고 있다. 포스코, 현대·기아차, SK 등 주요 그룹들이 많게는 5백억원 규모의 자금을 조성해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는 데 나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노동부의 관리 체계에는 구멍이 뚫려 있다. 사회적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업 지원금이 원래 취지에 맞게 집행되지 않는다면 재계의 노력 또한 공염불이 될 것이라는 것이 한결같은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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