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계장·부화장은 공개 불가” 안전성 확인 외면한 식약청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9.09.08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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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플루 백신 만드는 녹십자 공장 현장 취재 / “생산·부화는 농가 관할”

ⓒREUTERS


지난 9월2일 신종플루에 감염된 40대 여성이 숨졌다. 이로써 신종플루로 인한 사망자는 모두 네 명으로 늘었다. 신종플루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면서 국민의 시선이 백신으로 쏠리고 있다. <시사저널> 취재진은 9월2일 오후 백신 생산 현장을 찾았다.

광주 공항에서 차량으로 30분 거리에 있는 녹십자 전남 화순공장. 기자는 손을 소독한 후 방역 신발과 모자를 쓰고 ‘플루관’에 들어섰다. 플루관은 신종플루 백신을 만드는 핵심 시설이다. 플루관에는 배양한 바이러스를 수확하는 채독실, 바이러스를 걸러내는 원심분리실 등 여러 작업실이 있다. 작업실에는 외부인이 들어갈 수 없다. 플루관 주변에 있는 복도를 따라가며 유리창 너머로 각 작업실을 엿볼 수 있다.

먼저 부란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거대한 냉장 설비가 있다. 양계업자가 납품한 유정란을 하루 정도 보관하면서 안정시키는 곳이다. 유정란은 백신을 만드는 데 필수 재료이다. 양계업자가 부화시킨 유정란이 하루 13만5천개 입고된다.

복도를 따라 이동하면 유정란 멸균실에 닿는다. 알코올을 분사해 유정란을 소독하는 곳이다. 소독 과정을 마친 유정란은 접종실로 이동된다. 신종플루 바이러스를 유정란에 주사하는 곳이다. 한 번에 36개 유정란에 바이러스를 주입하는 주사 바늘이 있다. 그 옆에는 배양실이 있다. 유정란에 주입된 바이러스를 3일 동안 배양하는 곳이다. 이 기간 동안 바이러스가 증식한다.

발걸음을 옮기면 채독실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바이러스가 배양된 유정란 윗부분을 날카로운 칼로 잘라낸다. 채독기가 유정란 속에 있는 바이러스를 흡입한다. 채독 과정을 거친 유정란은 ‘쿠킹’실로 모인다. 유정란에서 수분 등을 제거해서 그 양을 3분의 1로 줄인다. 이후 75℃ 이상에서 5분 정도 노출시켜 남아 있는 바이러스를 죽인다. 잘게 부수어서 비료 등으로 활용한다.

채독한 바이러스를 정제하는 곳이 원심분리실이다. 바이러스 크기는 80~1백20나노미터(nm·10억분의 1m)이다. 분당 4만번 회전하는 원심분리기를 이용해 바이러스 입자를 분리한다. 바이러스 입자는 불활화(不活化)와 희석 과정을 거치면서 백신  원액으로 거듭난다. 백신 원액은 플라스틱 통에 담아 보관한다. 녹십자는 현재 백신 원액을 생산해 차곡차곡 보관하고 있다. 이 과정이 열흘 정도 걸린다. 대부분 자동화 기기로 작업이 이루어져 화순 공장 전체 직원 2백50명 가운데 50명이 백신 생산에 관여한다.

조민 녹십자 생산본부장은 “화순공장은 사노피, GSK 등 세계적인 백신업체들의 시설보다 뛰어난 장비와 자동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하루 24시간 공장을 가동하며 백신 원액 확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윤여표 식품의약품안전청 청장은 이날 녹십자 화순공장에서 “올 연말까지 백신 1천만 도즈(5백만명분)를 확보할 계획이다. 녹십자 생산분 7백만 도즈와 외국 제약사로부터 수입하는 3백만 도즈를 합한 물량이다. 녹십자는 내년 1~2월 5백만 도즈를 추가로 생산할 예정이다. 만일 면역증강제를 사용하면 2~4배 확대 생산이 가능하므로 1천만~2천만 도즈를 생산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면역증강제 넣은 백신도 안전성 의문

▲ 외부인 출입이 통제된 백신 생산 시설은 유리창 너머로 겨우 확인할 수 있다. ⓒREUTERS

녹십자는 국내 유일의 백신 생산 업체이다. 정부가 이 업체에 우호적일 수밖에 없다. 한 예로 식약청은 ‘신속대응단’을 8월31일부터 가동했다. 국가 검정을 신속하게 수행하기 위해서이다. 국가 검정이란 함량 시험, 무균 시험 등 아홉 개 항목을 통해 백신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약 35일 걸리는 이 기간을 20일로 단축하겠다는 것이다.

윤청장은 “식약청은 백신 허가 심사를 정확하고 신속히 진행하기 위해 기존에 운영해 오던 신종플루 신속대응 T/F팀을 신속대응단으로 확대했다. 신속하게 진행한다고 해서 절차를 생략하는 것이 아니라 신종플루 백신에 모든 역량을 집중시키겠다는 의미이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방점을 찍어야 할 부분이 백신의 안전성이다. 국민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백신 안전성 확보는 유정란으로부터 시작된다. 유정란은 백신 생산의 주요 재료이다. 녹십자에 공급된 유정란이 오염되어 있다면 백신도 오염될 수밖에 없다. 오염된 백신을 접종하면 경우에 따라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서상희 충남대 수의과대학 교수는 최근 <시사저널>을 통해 유정란의 오염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제1037호 참고).

유정란은 양계장에서 생산되고 부화장에서 10일 동안 부화된 후 녹십자에 공급된다. 양계장과 부화장에서 유정란이 어떻게 취급되는지 국민에게 공개된 바 없다.  

기자는 정부측에 양계장과 부화장을 국민에게 공개할 것을 요청했다. 윤청장은 “유정란 생산과 부화는 양계농가 관할이다. 녹십자는 그들과 맺은 계약에 따라 유정란을 공급받는다. 따라서 우리가 양계장과 부화장을 공개하라 마라 할 수 없다”라며 사실상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또 다른 식약청 관계자는 “양계농가와 부화장은 농림수산식품부 소관이다”라며 책임 소재를 떠넘겼다.

정부는 9월7일부터 11월 중순까지 성인 4백72명과 소아 2백50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한다. 문제가 없다는 결과가 나오면 식약청 허가를 받아 녹십자가 백신 원액을 0.2㎖(소아용), 0.5㎖(성인용) 주사 용기에 담아내어 배포한다.

임상시험이란 만에 하나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미리 확인하는 작업이다. 식약청은 임상시험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의료 기관, 소비자, 제조사 등으로부터 보고받아 식약청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사후 조치이다.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한 대응책 등 사전 조치는 마련해두었을까. 이에 대해 윤식약청장은 “예상되는 부작용은 발진 등…”이라고만 말했다. 부작용이 발생하면 그때 대책을 논의하겠다는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빠르면 연말이나 내년 초에 면역증강제를 넣은 백신이 생산될 전망이다. 면역증강제를 넣은 백신은 아직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면역증강제를 사용하면 백신의 순도를 떨어뜨려 심할 경우 쇼크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정부와 녹십자는 백신 물량을 늘리고 생산 시기를 앞당기는 데에 전력을 쏟고 있다. 작은 허점이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사후 조치보다 사전 조치를 철저하게 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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