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결해도 표 안 나오는 곳에서 분열로 씁쓸해진 ‘충청의 맹주’
  • 이철희 |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수석애널리스트 ()
  • 승인 2009.09.08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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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선진당, 심대평 탈당으로 위기 맞아…‘충청 총리론’ 띄웠던 여권도 별 소득 없어

▲ 8월31일 서울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열린 자유선진당의 정기국회 대비 의원연찬회에 참석한 이회창 총재. 심대평 대표의 탈당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연찬회가 진행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충청은, 비유하자면, 2인자의 땅이라 부를 수 있다. 충청 출신 정치인 중에서 최고 권력자가 나온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지역 출신인 윤보선이 대통령을 지냈지만, 당시 권력은 총리에게 있었다. JP(김종필)는 오래, 아주 오랫동안 2인자로 지냈다. 거의 대권을 손에 움켜 쥔 듯했던 이회장 총재도, 무서운 기세로 부상했던 이인제 의원도 역시 1인자가 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일종의 ‘한’을 가질 만하다. 또, 핫바지라는 자괴감을 갖는 것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1960년대 이후 충청은 어느 특정인에게 몰표를 주지 않은 지역이다. 특정인에게 다수표를 몰아주는 것을 선거에서 표출되는 지역주의라고 한다면, 충청은 그 지역주의의 강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지역이다. 지난 대선만 놓고 보더라도, 영남과 호남은 각각 특정 후보에게 거의 몰표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충청에서는 세 후보가 표를 나눠 가졌다. 물론 이명박(MB) 대통령이 가장 많이 득표(36.8%)했으나, 영남권 득표율은 고사하고 그가 수도권에서 얻은 53.0%에도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충청 지역 유권자들은 어떤 후보가 그 지역 출신이라고 해서 ‘묻지 마 투표’를 하지 않는다. 여러 선거에서 확연하게 드러나는 패턴으로, 이는 충청의 투표 특성이다. 지난 16대 대선에서 이 지역 출신인 이회창 후보는 40.9%를 얻어 영남 출신 노무현 후보에 비해 거의 11% 포인트 뒤졌다. 이번 17대 대선에서도 이회창 후보는 28.9%를 얻는 데 그쳤다. 16대와 마찬가지로 영남 출신 MB에게 많이 뒤지는 수준이었다. 15대 대선에서도 지역 출신인 이회창 후보(27.4%)와 이인제 후보(26.6%)의 득표를 합해 보더라도 54.0%에 불과하다. 당시 영·호남이 결집한 것에 비하면 많이 떨어진다.

우리 선거 역사상 가장 극심한 지역주의 투표라고 일컬어지는 것이 1987년의 13대 대선이다. TK(대구·경북)의 노태우, PK(부산·경남)의 김영삼, 호남의 김대중, 충청의 JP가 출마한 ‘사국지’였기 때문이다. 이 선거에서조차 JP의 충청 득표율은 34.6%에 불과했다. 경쟁 후보들의 각 지역 득표율에 비해서도, 지역 맹주로서 자부하기에도 부족한 수준이었다. 이처럼 역대 선거 결과에서 드러나는 패턴을 감안하면, 당장 충청이 어떤 인물이나 정치 세력에게 확 쏠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당분간 ‘맹주’ 없이 분열 양상 계속될 듯         

▲ 충청 출신 이인제 의원도 지역 지지기반은 취약했다. ⓒ시사저널 이종현

물론 역대 충청 출신 대권 주자의 경우 결정적인 흠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JP나 이인제의 경우와 이회창의 세 번째 도전은 당선 가능성이 희박했다. 이회창의 첫 도전 때는 도덕적 결점이 있었고, 두 번째에는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하는 태도를 취했다. 따라서 이런 점 때문에 충청이 자기 지역 출신 후보에게 몰표를 주지 않았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단점으로부터 자유로운 인물이 유력 정당(relevant party)의 후보가 된다면 사정이 달라질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다. 다음 대선에서 충청 대표성을 경합할 만한 다른 후보가 없다는 전제 하에, 만약 충청 출신의 유력 후보가 있다면 충청이 과거보다는 높은 결집도를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아직 전적으로 가능성의 영역일 뿐이다.

현재 충청의 판도는 전국(戰國) 시대를 방불케 한다. 이를 확인해주는 지표가 정당 지지도이다. 지난 8월25일에 실시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에서, 충청권의 정당 지지율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각축하는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민주당이 15.3%, 한나라당이 11.8%였다. 자유선진당은 5.3%였다. 모름·무응답 층이 58.4%였다. 이 수치는 모름·무응답 층의 전국 평균 규모(39.5%)에 비하면 대단히 높은 것이다. 결국, 아직 마땅히 강자라거나 대세를 장악한 세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8월22일에 실시한 동아시아연구원(EAI)의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충청권 정당 지지도에서 민주당은 24.7%, 한나라당은 14.8%였다. 자유선진당은 11.6%였다. KSOI 조사에 비해 민주당 우위가 더 확실하다. 이 조사에서 자유선진당은 한나라당과 엇비슷한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30.2%에 달하는 모름·무응답 층을 감안하면, 누군가에 대해 확실한 강세라고 말하기 힘들다.

현재의 여론조사에서 주목해서 볼 점은 한나라당 지지율이 계속 하락하고 있는 점이다.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다. KSOI 조사에서 한나라당의 충청 지지율은 전국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다. EAI 조사에서도 한나라당은 충청권에서 맥을 못 추고 있다. 전국 평균이 27.6%인데, 충청권에서는 14.8%다. 이런 흐름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 이른바 충청 총리론이다. 충청 출신 총리를 통해 이런 흐름을 반전시켜보자는 것이다. 당연히 과거에도 숱하게 등장했던 지역연합 전략을 추진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그런데 어찌 좀 이상하다. 명실 공히 지역 연합이 되려면 인물뿐만 아니라 지역의 이해를 수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충청 지역에서 가장 큰 현안은 세종도시법의 처리 여부이다. 따라서 지역 연합이 되려면 이것을 수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회창 총재가 세종도시법의 원안 처리와 강소국 연방제라는 강력한 분권 정책의 수용을 제안했으나, MB가 거부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총리 발탁과 세종도시법 처리의 선후 관계에 대해 이견 때문에 결렬된 것일까, 아니면 여권의 의도 자체가 연합에 있지 않았던 것일까. 단언하기는 힘들지만, 결과만 보면 여권은 낮은 수준의 연대를 목표로 한 것으로 보인다. 또는, 이총재나 자유선진당에게 사실상 투항할 것을 권유한 것으로 풀이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호남을 제외하면 충청이 MB 정권에서 기반이 가장 취약한 곳이다. 향후 충청권의 정치 지도는 당분간 ‘맹주’ 없이 분열 양상을 띨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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