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협회와 프로연맹, ‘공생의 그라운드’는 없는가
  • 오광춘 | 스포츠서울 기자 ()
  • 승인 2009.09.15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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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게모니 싸움의 원인은 스포츠 토토 배분율…양측 모두 ‘파이’ 키울 방법론 먼저 고심해야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은 호주와 축구대표팀 평가전(A매치)을 마치고 9월8일 영국으로 출국하며 “앞으로 축구 행정이 발전하기를 바란다”라는 말을 남겼다. 축구계 쟁점에 좀처럼 의견을 내지 않던 그는 입국 당시 호주와의 A매치(9월5일)와 K리그 경기(9월6일)의 일정 조율이 실패하자 “이런 행정에서 축구를 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라고 했다. 영국으로 돌아가는 날에도 서로의 이익을 앞세운 행정이 축구 본연의 정신을 위협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정리의 말까지 내놓고 간 셈이다.

사실 9월5일 한국-호주전, 6일 K리그 7경기가 연달아 열리며 논란을 낳았던 대한축구협회와 한국프로축구연맹의 힘겨루기는 9월 한국 축구의 화두였다. 협회는 5일이 국제축구연맹(FIFA)이 정한 A매치 데이여서 호주전을 치르는 데 문제가 없다고 했고, 연맹은 일찌감치 협회가 대표팀이 2010 남아공 월드컵에 진출하면 주말 A매치 데이(5일)를 양보하기로 구두 합의를 했다며 6일 K리그 경기를 강행했다.

다행히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선수와 감독들은 연이틀 열리는 경기를 앞두고 전전긍긍했다. 허정무 대표팀 감독은 호주전에서 K리그 선수들의 출전을 최소화하고 해외파의 비중을 높임으로써 다음 날 열리는 K리그에 나설 선수들의 체력 고갈을 덜어주는 노력을 해야 했다. K리그 각 구단도 전날 경기를 뛴 선수들의 출전 시간을 조절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아이러니하게도, 협회와 연맹의 시비는 ‘노이즈 마케팅’으로 전화되었다. 5일 열린 호주전은 주말 경기 특성까지 더하며 4만명 이상의 관중 유입 효과를 보았고, 6일 열린 K리그는 전국 7개 구장에 11만1천25명의 관중이 들어차 올해 3번째로 많은 관중 동원 기록을 낳았다).

그러나 협회와 연맹의 충돌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여지는 남겼다. 원인에 대한 근본 처방 없이 ‘시간이 약’이라는 말과 함께 갈등을 덮어두기만 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양측은 스포츠 토토의 수익금 배분을 놓고 으르렁대고 있다. 협회는 기존 50% 대 50%의 배분율을 깨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60%(협회) 대 40%(연맹)의 배분율을 확정해, 이미 정부의 승인까지 받아냈다. 연맹은 이같은 배분율을 수용할 수 없다며 협회의 배분금 수령을 아예 거부하고 있다.

▲ 지난 9월5일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호주와의 국가대표팀 평가전에서 한국팀은 3 대 1로 승리를 거뒀다. 왼쪽은 염기훈이 볼을 다투고 있는 모습.  ⓒ시사저널 유장훈

연맹의 사단법인화와 관련해 정관 문구에 대한 시비도 계속되고 있다. 협회는 국제축구연맹(FIFA)이 내건 ‘1개국 1협회’ 원칙에 입각해 연맹은 산하단체로서 협회의 승인 절차를 선행적으로 거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맹은 ‘대한축구협회의 이념과 정관을 준수한다’라는 상징적인 문구로 이같은 산하단체로서 성격을 규정하자고 말한다. 그 근저에는 연맹이 협회와의 수직적 관계는 인정하지만 보다 독립적인 기구로 남고 싶다는 갈망이 담겨 있다.

최근 협회와 연맹의 충돌은 한국 축구 문화의 특수한 상황에서 비롯했다. 협회와 연맹의 수직적 관계가 아니어도 한국 축구 문화에서 대표팀은 프로팀보다 언제나 우선했다. 한국 축구의 주된 흐름은 대표팀과 연관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축구 행정의 큰 방향은 협회 위주로 정해질 수밖에 없었다. 최근 갈등이 잦아지는 것은 프로리그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양자 간 힘의 균형을 맞추어가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올 한 해 진행되는 협회와 연맹의 헤게모니 싸움의 연속선상이라는 풀이가 지배적이다. 그리고 헤게모니 쟁탈전의 근저에는 ‘돈’이 자리 잡고 있다. 올해 토토 수익금으로 축구에 할당된 금액은 2백20억원에 달하고, 기존 5 대 5 배분율대로 할 경우 연맹은 1백10억원을 받을 수 있는데, 4 대 6으로 작아질 경우 88억원으로 줄어들게 된다. 협회가 호주전을 5일(토요일) 강행하려 했던 데는 주말 경기를 통해 관중 유치를 극대화하겠다는 의지가 깔려 있다.

정몽준 회장 물러나면서 조정 역할 사라진 것도 이유

▲ 지난해 6월22일 오후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월드컵 아시아 예선 남북 축구 국가대표 경기에 출전한 김정우 선수. ⓒ시사저널 이종현

더불어 정몽준 회장 체제에서 조중연 회장 체제로 바뀐 대한축구협회가 올해부터 방향을 달리 잡은 것도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정회장 체제에서 협회는 다분히 정치적인 상징성을 띤 스포츠 기구였다. 그러나 정치인 정회장이 축구협회장직에서 물러난 뒤 신임 조회장은 정치적인 상징성 대신 협회 자체의  수익 구조 개편 등 탄탄한 기반을 닦는 데 집중하고 있다.

또, 정회장의 지지 세력이었던 현대가의 프로팀들이 연맹 이사회에서 보여주었던 정치력이 발휘되지 못하며 갈등이 사전에 조정되지 못한 측면도 있다. 정회장 체제에서는 각 구단의 단장이 참여하는 이사회에서 현대가를 모태로 한 구단들의 입김이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들은 이사회 내에서 협회 의견에 반대하는 세력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고 또 제어하는 기능을 도맡았다. 조회장 체제에서는 이같은 역할이 약해지고 있다.

복잡한 배경과 함께 실타래처럼 얽힌 협회와 연맹의 갈등을 조정하는 문제는 당분간 한국 축구의 최대 과제로 남게 되었다. 이를 위해 다각적인 노력이 모색되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협회와 연맹의 직접적인 대화 채널로 기능했던 전무와 사무총장의 통로 외에 양 기구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온 수뇌부들의 만남도 추진되고 있다. 9월 양측 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협회 부회장단과 프로구단 단장들이 모여 대화의 자리를 마련했던 것처럼, 양자 간 이해의 폭을 좁히기 위한 대안 채널이 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양측의 관계 재설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축구계의 맏형인 협회는 축구계 현안을 놓고 동생 격인 연맹을 대하는 데 배제의 논리로 접근하기보다는 존중과 협의의 논리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연맹 또한 협회에 끌려간다는 피해의식을 접고 선수와 팬을 위해 방향 설정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도 축구계의 현안은 쏟아진다. 2022년 월드컵 유치가 진행되고 있고, 또 현실성은 떨어질지라도 서울 시민구단 창단 얘기도 나오고 있다. 모두가 협회와 연맹이 손을 맞잡고 풀어야 할 문제들이다. 한국 축구의 파이를 놓고 어떻게 분할할 것인가보다 파이를 어떻게 키울까를 두고 서로에게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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