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대상의 ‘존안 자료’에 주변인 사생활까지 들어 있다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09.09.15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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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기관과 부대에 파견된 기무사 요원들이 수시로 ‘동향 관찰 보고서’ 올려 몇몇 사건으로 외부에 돌출되면서 논란…기무사, 자료 자체 인정 안 해

▲ 기무사령부 앞에서 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기무사의 몸집 부풀리기를 비난하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외부에서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의 고위직으로 발령받으면, 대개 자신에 대한 ‘존안 자료’를 찾게 된다. 자신의 수십 년 군 생활에 대한 동향 첩보들이 어떤 식으로 존안 자료에 기재되어 있을지 당연히 궁금하지 않겠나. 하지만 존안 자료에는 열람자 기록까지 다 남게 된다. 그럼에도 지휘관들은 보고자 하는 욕구를 떨치지 못한다.”

군 정보 부처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던 전역 장교 김 아무개씨는 ‘존안 자료’가 갖는 위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존안 자료란, 정보 기관이 어떤 개인이나 사건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첩보 수집 활동을 통해서 모은 모든 자료들을 파일별로 축적해놓은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사건별 파일도 있지만, 개인별 파일도 있다. 흔히 ‘존안 카드’라는 용어로도 쓰인다. 특정 개인에 대한 신상 내역과 함께 시시콜콜한 군 생활 기록들이 여기에 모두 담겨 있다. 일부 확인되지 않은 사생활에 대한 소문들까지 다 담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개인에 대한 성향과 평가가 첨부되기도 한다. 존안 자료가 갖는 무서운 힘이 여기에 있다.

기무사측은 공식적으로 존안 자료의 실체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전·현직 군 관계자들은 누구나 다 기무사 존안 자료의 실체를 인정한다. 실제 몇몇 사건으로 인해 내부 존안 자료가 외부로 돌출된 적도 있다.

김씨는 “지금 현재 시점과는 조금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과거 내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위관급 장교는 통상 6개월에 한 번씩, 영관급 장교는 3개월에 한 번씩, 그리고 장성급은 거의 수시로 존안 자료를 작성·관리한다. 기무사 요원들이 연대 단위 이상, 각 사단과 군단 및 군사령부, 국방부 등 기관에 파견되어 수시로 장교와 장성 및 군무원들의 동향을 감시한다. 존안 자료는 그동안 축적된 여러 ‘동향 관찰 보고서’를 토대로 정리된다”라고 밝혔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동향 관찰 보고서’에 대해 “군에 대해 잘 모르는 청와대가 군을 관리하는 데 반드시 참고하는 일종의 안내자 역할을 한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 업무가 기무사 업무의 중핵으로 자리 잡게 되자 장교들에 대한 미행, 감청, 탐문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었고, 이에 대해 장교들은 별다른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 군에 대한 동향 보고는 일관된 원칙과 객관적인 보고를 하지 않으면 정권이 군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가질 수도 있는 위험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야권 “민간인 사찰 자행되고 있다” 비판

▲ 1990년 ‘윤석양 이병 폭로 사건’으로 드러난 기무사의 ‘존안 자료’들. ⓒ연합뉴스

권력에 철저히 코드를 맞추는 기무사의 부적절한 행태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도 있다. 한 관계자가 기자에게 들려준 기무사에 관련된 숨겨진 비화는 다소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지난 2003년 군내 동향 관찰 업무를 담당하는 기무사의 영관급 장교 한 명이 갑자기 파면당한 일이 있었다. 정권 초기였던 당시, 한 여인이 이 장교에게 접근해 자신이 모시는 원로 ‘회장님’이 신임 대통령과 상당히 가까운 사이임을 과시했다. 그녀는 ‘신임 대통령이 군에 대해 잘 파악을 해야 하니 군심(軍心)을 정리한 보고서를 작성해달라’고 부탁했다. 이 말을 믿은 장교는 정성껏 보고서를 작성해주었는데, 알고 보니 이들은 사기꾼이었다. 기무사는 불시 보안 검열을 통해 이 장교가 사용처 불명의 보고서를 작성한 사실을 적발하고 전모를 파악한 후 그를 파면했다. 이 일은 지금까지 쉬쉬한 채 외부에 일절 알려지지 않고 있다.”

존안 자료와 관련해 더 큰 문제는 동향 관찰의 대상이 현역 군인에게만 국한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현재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당에서 기무사를 향해 “민간인 사찰이 자행되고 있다”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민노당에서 최근  기무사 소속 장교인 신 아무개 대위의 수첩을 입수, 그 내용을 폭로한 것이다. 거기에는 일반 민간인인 시민사회단체의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날짜별·시간별로 동향을 관찰한 내용이 상세하게 적혀 있다.

기무사측은 “이들은 (기무사의) 수사 대상자와 접촉한 것으로 알려져 관찰했으나, 수사 진행 목적과 관련성이 없는 단순 접촉자로 판명되었다”라며 민간인 사찰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민간인에 대한 동향 관찰을 한 사실 자체는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정보 장교 출신인 김씨는 “이번에 발견된 신 아무개 대위의 수첩에 적힌 ‘동향 관찰’ 첩보 내용들이 기존의 관례대로라면, 이 사건 명의의 존안 자료 파일에 담기게 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존안 자료의 또 다른 문제점은 그 내용이 유출될 경우, 인권 침해 소지가 상당히 크다는 점이다. 실제 군 업무와 큰 상관이 없는 개인 사생활 부분이나 혹은 관계인의 사생활이 그대로 담겨있는 기록이 발견되기도 했다.

존안 자료의 실체가 가장 최근에 드러난 사건은 2004년 불거진 장군 진급 심사 비리 파동 때였다. 그때 문제가 되었던 한 현역 대령에 대한 존안 자료 내용에 ‘2003년 연대장 시 사단 ○○회관 내 호프집에서 부부 동반 회식 시 ○대대장 부인의 허벅지를 만지려다 몸을 피하자 인격 모욕 등 후배 부인들에게 경솔한 언행’이라는 기록이 있다. 또 다른 현역 대령의 경우 ‘부인이 치아 치료를 계기로 알게 된 ○○시 ○○치과 의사와 불륜 관계 유지 등 사생활 문란. 2002년 사실을 인지하고 부인을 친정으로 쫓아보낸 뒤 이혼을 전제로 별거 생활을 해 오다 향후 자녀 혼사 및 장군 진급에 악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해 재결합’ 같은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본인이 아닌 배우자의 민감한 사생활은 물론 그 관련자까지 그대로 존안 자료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이번에 민노당에 의해 입수된 기무사 장교 신대위의 수첩에도 민감한 부분이 있었다. 관찰 대상인 민간인 남녀가 모텔에 투숙한 기록이 시간과 함께 기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민노당의 한 관계자는 “당시 이 수첩 내용을 공개할지 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었으나, 막상 당사자로부터 ‘우리는 곧 결혼할 사이이므로 상관없다’라는 입장을 듣고 나서야 수첩을 공개하게 되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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