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사에 쏟아지는 네 갈래 뜨거운 ‘눈총’
  • 감명국 기자 · 김종대(<디앤디포커스> 편집장) (kham@sisapress.com)
  • 승인 2009.09.15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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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가 또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내리고 있다. 민간인 사찰 의혹과 군 인사 개입설 등이 논란의 핵심이다. 기무사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럴까.

▲ 국군기무사령부가 37년간의 소격동(작은 사진) 시대를 마감하고 지난해 11월 경기도 과천으로 이전했다. ⓒ연합뉴스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1993년 4월2일. 서울 용산구 동빙고동 군인아파트에 ‘하나회’ 명단이 살포되었다. ‘군정 종식’을 내걸었던 문민정부가 이 사건을 계기로 하나회에 대한 대대적인 숙군작업을 진행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일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당시의 숨은 비화가 하나 더 있다. 명단 살포 사건 직전, 육사 31기생들이 동기회장 선출을 두고 하나회와 ‘비(非)하나회’로 양분되어 물리적 충돌까지 빚었던 사건이 그것이다.

사태는 양측이 한 선술집에서 맥주병이 깨지고 바닥에 뒹굴며 난투극까지 치르는 소동을 벌인 뒤에야 다소 진정되었으나, 이미 동기생들 간의 앙금은 씻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충돌의 여파가 하나회 명단 살포 사건으로 그대로 이어졌고, 이것이 대한민국 전체를 뒤흔든 대형 사건으로 비화된 것이다. 당시 난투극이 벌어진 자리에는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 1처 5과장도 동기생 자격으로 참석하고 있었다. 흥분한 다른 동기생들은 사태가 진정될 무렵 그에게 몰려와 “네가 상부에 동향 보고 똑바로 하라”라며 자신들의 입장을 털어놓았다.

‘성역 중의 성역’으로 불리는 기무사 조직은 베일에 싸여 있다. 조심스럽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별 셋’(중장)의 사령관 아래에 참모장(준장)이 있고, 각각의 업무를 총괄하는 1·2·3처장이 있다. 국가정보원과 거의 유사한 조직 체계이다. 각 처장은 준장 또는 대령이 맡고 있다. 세 처 중에서도 보안이나 대공·방첩보다는 일반 인사·정보를 담당하는 1처가 핵심이고, 그중에서도 특히 5과장은 막강한 실세 자리로 알려져 있다. 군 소식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기무사 1처 5과장은 군 장교들의 동향을 관찰하고 그 결과를 종합해 청와대에 올라가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인물이다. 그 보고서 하나에 여러 장교들의 생명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최근 기무사가 또 여론의 도마에 오르내리고 있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당에서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군 사정 기관으로서 조용한 처신을 다짐했던 기무사가 다시 뉴스의 초점으로 부각된 것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부터였다. 노무현 정부에서 폐기되었던 기무사령관의 대통령 독대가 다시 부활된 것과 때를 같이한다. 이 때문일까. 현 정권 들어 군 주변에서는 기무사령관과 국방부장관의 갈등설이 심심찮게 불거져 나왔다. 이러던 차에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의혹까지 터져나오면서, 과천으로 청사를 옮겨 제2의 도약을 준비하던 기무사에는 일대 비상이 걸렸다.

왜 지금 ‘기무사’인가. 네 가지 측면에서 ‘이명박 정권 시대의 기무사’를 살펴보았다.

이유 01. 점차 '권력화'하는 행보 
 
군에 대한 ‘동향 관찰’이 기무사에 의해 합법적으로 수행될 수 있는 논리적 기반은 다름 아닌 ‘대(對)전복’, 즉 쿠데타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한다. 이는 군사 쿠데타를 두 번이나 겪은 한국 정치의 상처 때문에 나온 독특한 관행이었다. 얼마 전 송파에 신도시를 만들기 위해 지방으로 이전하기로 되어 있었던 특전사를 다시 이전하지 않는 방향으로 국방부가 재검토한 사례가 있었다.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고 이전이 확정되었지만, 군 일각에서는 ‘특전사 이전 추진 백지화’의 배후에 기무사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대전복 임무를 수행하는 특전사와의 업무 유관성을 내세워 기무사에서 반대 입장을 취한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되었다.

실제 군의 한 최고위직급 인사는 “기무사로부터 ‘송파 신도시를 재검토하라는 것은 대통령의 뜻이다’라는 얘기를 전해 듣고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그것이 잘못된 사실임을 알게 되고 크게 당황했다. 도대체 청와대의 정확한 뜻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라는 당혹스런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기무사의 핵심 업무 가운데는 ‘보안’이 있다. 보안은 군사기밀을 보호하는 업무인데, 이 역시 악용될 소지가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다. 국정감사를 전후해서 각 군 본부에 “통제받지 않는 각 군의 입장이 국회에 보고되지 않도록 하라”라는 국방부장관의 지침에 따라 고강도 보안 검열이 진행되고 각 군의 입을 통제하는 감시 체제가 작동되곤 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여기에 기무사가 보안 업무를 들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계룡대의 한 실무자는 “국회의 국정감사가 힘든 것이 아니라 군 내부의 보안 검열이 힘들다”라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김종태 국군기무사령관으로부터 중장 진급 및 보직 신고를 받은 뒤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유 02. 조직의 '비대화' 추진
 
기무사의 조직 확대 움직임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기무사의 업무 영역이 다른 기관과 중복되어 있다는 점에서 업무 충돌 및 조직 효율성의 문제와 관련해 이미 논란을 겪고 있는 사안이다. 군 수사 기능은 헌병 및 군 검찰과 중복된다. 정보 수집 기능은 국가정보원과 중복된다. 또한, 방산 비리를 예방한다는 활동 역시 최근 국정원이 방산 담당 조직을 확충해 기본 업무로 정착시켜 놓은 상태이다.

기무사의 조직 확대 움직임에 대해 최근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사이버방호사령부’의 신설 움직임이다. 이 업무는 국방부 정보본부 예하의 정보사령부가 이미 오래전부터 연구해 온 사안일 뿐만 아니라, 국정원과 경찰에서도 어느 정도 관여하고  있는 업무들이다.

국방부 내에서 예산 갈등으로 장관과 차관이 티격태격하던 8월 중순, 김종태 기무사령관은 기무사에 창설될 ‘사이버방호사령부’의 인원을 늘려달라고 이상희 전 국방부장관에게 요구했다. 기무사가 구상하는 사이버방호사령부는 소장급 지휘관과 대령급 여섯 명이 편제된 5백명 규모의 거대 조직으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에서 난색을 표하자, 국방부에 나와 있는 기무부대장이 국방부의 한 실장을 찾아가 “왜 인원 증원을 수용하지 않느냐”라고 거세게 항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급기야는 감정이 격앙된 양측에서 욕설과 고함까지 터져나왔다는 사실이 군 주변 관계자들에 의해 알려지자, 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상희 전 장관은 기무사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사이버방호사령부 창설에 대해 그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인원까지 증원해가면서 이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정책위의 정진 국방전문위원은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논란이 불거진 지금, 사이버방호사령부 추진 움직임은 사이버 공간에서 민간인의 사찰을 확대할 소지가 있는 만큼, 절대 용인할 수 없다”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어 국정감사를 앞둔 국회에서도 논란이 예상된다.

이유 03. 다시 불거진 '민간인 사찰' 논란
 
지난 1990년 10월 보안사(현 기무사) 소속의 윤석양 이병은 “보안사가 정치계·노동계·종교계·재야 등 각계 주요 인사와 민간인 1천3백3명을 상대로 정치 사찰을 벌였다”라고 폭로했다. 이를 계기로 당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보안사는 기무사로 명칭이 바뀌게 되었고, 이후 “민간인 사찰은 절대 없다”라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군 정보부처 출신의 전역 장교 김 아무개씨는 “문민정부 이후의 기무사에서도 민간인 사찰을 전혀 안 했다고 단정 짓기는 어려울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그 근거로 기무사의 첩보 수집 관행을 들고 있다. 김씨는 “대공 용의점이라는 명목 하에 사건별로 존안 자료가 관리되기도 한다. 중요도에 따라 A·B·C급 이렇게 순서가 매겨진다. 여기에는 의심이 가는 사건에 대한 첩보 자료가 모두 축적되기 때문에 군 인사뿐 아니라, 여기에 관련된 민간인까지도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원칙적으로 기무사는 군 인사에 대한 사찰만 하는 것이 맞다. 사찰 과정에서 특정 군 인사와 관련된 민간인이 나오면 국정원이나 경찰 쪽으로 이첩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정보 기관끼리의 경쟁과 고급 정보를 독식하고자 하는 정보 요원들의 생리상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군·민의 경계선을 넘어갈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다. 

최근 민주노동당은 기무사 소속 장교인 신 아무개 대위의 수첩을 입수해 그 내용을 근거로 기무사가 민간인을 사찰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기자가 확인한 수첩의 내용에는 일본의 민족학교에 책 보내기를 해 온 인터넷 동호회 ‘뜨겁습니다’에 관계해 온 일반 민간인들에 대한 상세한 동향이 적혀 있다. 기무사측에서는 보도자료를 통해 ‘기무사 수사권 범위 내에서 합법적으로 확인 중이었던 자료임. 민노당에서 주장하는 조직적인 민간인 사찰과는 관련이 없는 사실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 민노당에서 입수한 기무사 요원의 수첩 내용. ⓒ시사저널 유장훈

이유 04. 심상치 않은 '군 인사 개입설'

지난해 6월 기무사 내부에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김종태 사령관이 기자간담회에서 말 실수를 한 것이다. 그는 기무사의 업무와 향후 방향에 대해 얘기하면서 문득 “기무사가 앞으로 제대로 된 사람을 추천하겠다”라는 발언을 했다. 언뜻 그냥 흘려들을 수도 있는 문제이지만, 곱씹어보면 이 말은 기무사가 군 인사에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발언이었다. 이후 파장이 확산될 것을 우려한 기무사측은 이를 해명하느라 땀을 쏟아야 했다. 

지난 8월 불미스러운 한 사건에 연루된 ○○사단장이 불명예 전역을 했다. 급하게 후임 사단장을 임명하는 과정에서 국방부 주변에서 많은 얘기가 나오고 있다. “원래 사단장 보직을 받으려면 심사위를 정식으로 거쳐야 하는데, 당시 돌발적이고 어수선한 분위기를 틈 타 그런 절차 없이 그냥 진행되었다”라는 불만이다. 이 과정에서 기무사가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불거져나왔다. 기무사측은 ‘인사 개입설’과 관련해 “전혀 근거 없는 소문일 뿐이다”라고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기무사가 인사에 개입한다는 의혹은 사실 지난해부터 계속 나왔다. 군의 한 관계자가 “최근 3사 등 비육사 출신들이 대약진을 하고 있다. 특히 여덟 명의 군단장 중에 육사는 네 명뿐이고, 나머지 네 명은 3사 등 비육사 출신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김종태 기무사령관이 3사 출신임을 빗댄 불만이었다. “김사령관과 김용기 국방부 인사복지실장이 무척 가깝다”라는 얘기도 심심찮게 나왔다. 두 사람은 경북 상주 출신으로, 고향이 같다.

“군 인사 문제에서는 양측의 목소리가 항상 상존하기 때문에 어느 한쪽의 목소리만 들어서는 곤란하다”라는 한 군 관계자의 말처럼 다분히 기무사를 곱게 보지 않는 일반 전투병과 출신들이 제기한 불만에 불과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이미 지난 2004년 장성 진급 심사 비리 파동으로 기무사의 존안 자료가 군 인사에 결정적인 역할을 미친다는 사실이 표출된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인사 개입설이 최근 군 주변에서 다시 확산되는 점은 심상치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그만큼 군 내부의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는 반증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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