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 놓지 않고 중도 말하면 짝퉁이다”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9.09.15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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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객 인터뷰④ 홍윤기 동국대 철학과 교수

ⓒ시사저널 임준선


우리나라에서 ‘이념’은 곧 색깔과 맞물린다. 특정 이념으로 분류되면 스스로 원하지 않아도 한쪽으로 편이 갈리곤 한다. ‘행복 추구권’보다는 ‘이념 추구권’이 앞서는 사회 같다.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표현의 자유’가 늘 이념에 구속받아왔다. 때문에 ‘보수’와 ‘진보’의 이념 대결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한 원인이기도 했다. 홍윤기 동국대 교수는 이러한 이념 갈등에서 벗어나 인간의 기본권인 ‘행복 추구권’을 주장해왔다. 어떠한 이념도 ‘국민을 잘살게 하지 않으면 망한다’라고 보았다. 그가 주장하는 ‘강한 중도’는 ‘풍요로운 복지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지난 9월8일 오후 동국대 연구실에서 홍교수를 만났다.

홍교수께서는 평소 ‘강한 중도’를 주장했다.

지금의 진보는 진보적인 것만큼 진정성이 없고, 보수는 정체성이 없다. 그래서 지난 2000년 12월부터 ‘강한 중도’를 표방했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진보보다 더 급진적이고 보수보다 더 안정적인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국가의 구성원들에게 먹고 살고 자식 키우는 것에 부족함이 없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국가라는 공동체 안에서 더불어 살고 잘살 수 있는 것을 지향하고 우선하는 것이 강한 중도이다. 내가 보기에 진실을 배운다는 측면에서 한국의 보수는 할 말이 없다.

‘보수가 할 말이 없다’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우리나라가 정치·경제적인 측면에서 민주화되었다고 하나 그동안 주류 사회를 지배한 것은 보수였다. 이들이 지배하면서 오랫동안 남길 가치관이 없어졌다. 미국 교과서를 보면 단지 ‘잘살게 해주었다’라는 것 이상의 정신적인 영웅들이 나왔다.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하는 것을 보면 ‘워싱턴’이나 ‘링컨’을 인용한다.
하지만 한국의 보수 정권에서는 업적 있는 대통령이 없었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이 우수한 대통령은 될 수 있어도 ‘훌륭한 대통령’은 아니라는 것이다. 보수 쪽에서 내세우는 경제적인 영웅도 없다. 이런 면에서 한국의 보수는 실패했다.

진보 성향인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도 있지 않은가?

아직 두 분에 대한 평가는 미루어야 한다. 이분들이 보여주었던 진정성과 헌신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링컨이나 워싱턴 같은 영웅은 우리 국민들이 만들어내야 한다. 두 분이 훌륭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국민의 생각이 아직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생각하는 ‘중도 인물’에는 누가 있나?

내가 볼 때 진정성 있는 중도를 꼽으라면 백낙청·박세일 교수 같은 분들이다. 정치인들 중에서는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도 중도로 볼 수 있다.

‘중도’가 진정성이 없었다는 말로 들린다.

사실이다. 지금까지 중도는 기회주의자이며 회색분자였다. 중도가 성공하려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 그런데 누가 자기 기득권을 포기하면서 중도를 지향했는지 한 번 살펴봐라. 자기 희생을 통해 상대방에게 신뢰를 보여야 하는 것이 중도인데, 그렇지가 않았다. 기득권을 놓지 않고 중도를 말하면 짝퉁이다.

이명박 정부의 ‘중도 실용’ ‘친서민 정책’을 어떻게 보는가?

국정 기조가 바뀌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볼 때는 반가운 일이다.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을 보면 교육·훈련이 잘 되지 않았는데, 이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이대통령은 처음 집권했을 때 성공한 인생을 산 사람들을 데리고 일을 하면 잘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본인의 뜻과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이것도 학습의 한 과정이라고 본다. 지금까지 이명박 정부는 친서민 행보를 하려는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친서민 정책’이 무엇인지 몰랐던 것 같다. 일부에서 현 정부를 ‘파시즘 정권’ ‘반민주 정권’이라고 하는데,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민주주의 학습이 안 된 ‘미숙한 민주주의 정권’이라고 해야 맞다.

지난번에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하며 각계에서 시국선언이 잇따랐다. 지금은 잠잠하다.

국민들이 그때 가졌던 앙금이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중도 실용 이전에 이대통령이 보여주었던 상처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것이 용산 참사를 들 수 있다. 사고가 발생한 지 2백일이 넘었는데도 아직까지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다. 빨리 해결해서 희생자들이 편안하게 잠들고 상처받은 유족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어야 한다.

또 하나는 지난해에 일어났던 촛불 시위이다. (정부는) 그 당시 시위를 주동했던 사람들을 잡아다가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이것은 법치주의를 상당히 오염시킨 일이다. 이런 식으로 법을 남용해서는 안 되고, 이들에게도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쌍용자동차 문제도 해결된 것이 아니다. 그 사람들(해고 노동자)이 직장을 잃고 나서 먹고살 것이 없다.
이들도 어떤 방식으로든지 끌어안아야 한다. 어떤 정치 이념도 사람들의 아픈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국가를 유지할 수 없다. 공허한 이념일 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정몽준 의원이 한나라당의 대표가 되었다. 친서민·약자 보호에 나서겠다고 하는데. 

서울 동작구에 출마하면서 했던 ‘뉴타운 허위 공약’에 대한 입장부터 정리해야 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으로부터 동작·사당 뉴타운 개발을 약속받았다고 했던 것에 대해 재판까지 받았다. 이 공약 때문에 여러 가지 부작용이 많았다. 친서민 행보에 대한 동기는 있는 것 같은데 정작 ‘친서민’에 대해서는 고민을 안 해본 것 같다.

정치권에서 본격화되고 있는 ‘개헌 논의’를 어떻게 보는가?

지금은 개헌을 말할 때가 아니다. 진짜 개헌을 하려면 21세기를 살아갈 비전을 담아야 하는데, 정치권이 추진하는 개헌은 정략적이다. 내가 보기에 지금 개헌한다면 국민에게 주는 이점이 없다. 당장 ‘개헌의 굿판을 집어치우라’고 말하고 싶다.

지식인들의 현실 정치 참여를 어떻게 보는가?

지식인들의 참여도 중요하지만 시민들의 현실 정치 참여가 더 시급하다.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볼 때 반민주 정권이 들어섰을 때 그것을 해결한 것은 시민들이었다. 8·15 광복을 빼고는 정권이 잘 못하면 시민들이 나서서 체제를 정비했다. 시민들이 여러 공론 장에 있어야 하는데 미네르바 사건을 보았을 때 지금의 정부는 민주주의 체제를 공고히 하는 것에 미숙하다. (미네르바가 정부의 경제 정책을 비판한 것에 대해) 그를 불러다가 대통령이 술 한 잔 나누면서 ‘너는 이렇게 생각하느냐,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라는 아량이 없었다. 대통령은 국민의 무당이다. 상대가 원하지 않는 굿은 벌일 필요가 없다. 상대가 어떤 것을 원하고 아파하는지 듣는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한때 ‘386 세대’가 시대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며 ‘세대 역할론’이 떠들썩했다. 지금은 전혀 언급이 없다. 

사실 ‘세대’는 정치적인 수사에 불과하다. 세대의 역할론 같은 것은 정치적 트렌드로서는 의미가 있겠으나 국가적 문제나 글로벌 도전과는 상관이 없다. 내가 보기에는 우리가 20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지금의 20대는 우리나라가 먹고 살만 할 때 가장 많이 상처받은 세대이다. 외환위기를 겪었고, 대학에 들어가면서 학벌 경쟁에 내몰렸다. 지금은 졸업을 앞두고 글로벌 위기의 후폭풍을 감당해야 한다. 20대가 기를 펴지 못했다. 20대들이 겪었거나 겪고 있는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들 세대들이 마음속으로부터 국가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은둔적이 된다는 것인데, 이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20대의 기를 살리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방안이 있어야 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지난 역사의 과오를 청산하고, 화해를 이루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했다. 현 정부는 ‘역사 바로 세우기’에 대한 의지가 별로 없는 것 같다.

지난 정부 때의 ‘진실화해위원회’나 ‘과거사위원회’ 등은 과거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일환으로 설치되었다. 국가가 과거의 역사를 관리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역사를 부정하고 포기한다면, 국가 주권 반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가의 3대 요소가 영토·주권·국민이지만 여기에 역사를 보태야 한다. 영토가 공간이라면 역사는 시간이다. 만약, 역사를 소홀히 하면 시간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는 것이다. 기존의 역사 관련 위원회나 기관 등을 통합해서 ‘국가역사원’ 같은 기구를 신설해야 한다. 앞으로 동북아 역사 분쟁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체계적이고 항시적인 역사 관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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