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권력’에 몸단 ‘신문 권력’의 무한 질주
  • 김지영 기자 · 이석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9.09.15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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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위가 올해 안에 사업자를 선정하겠다고 한 종합편성 채널과 보도 채널 사업권을 따내려는 언론사들의 각축전이 뜨겁다. 특히 메이저 신문사들은 저마다 ‘별동대’를 꾸려 기업들과 손잡기 위해 활발하게 움직이

미디어 판도에 큰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아직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재계와 신문사들은 물밑에서 이미 치열하게 방송에 진출하기 위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신문·방송 영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관·재계의 역학 관계에도 상당한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광고보다는 직접 미디어의 내용을 지배하는 ‘마케팅 PR(MPR)’을 앞세운 기업들의 새로운 미디어 전략이 본격화하며 ‘돈’의 힘이 더 강해질 전망이다. 정치 환경에도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야당들은 헌법재판소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물론 상당한 진통이 따르기는 하겠지만 현 정부에서 신문사들이 지상파 방송으로 진출하는 것도 전혀 불가능하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신문사나 대기업 등이 민영화 논란이 일고 있는 MBC나 KBS 2TV의 지분을 인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지상파 다채널 방송(MMS) 채널을 할당받는 방식으로도 방송 영역에 진입할 수도 있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되는 2013년 이후 아날로그 방송 주파수를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 반납해야 한다. 이는 새로운 지상파 방송사가 두 개까지 생길 수 있는 주파수이다. 이 주파수를 할당받으면 새로운 방송국을 하나 세울 수도 있게 된다. 하지만 지상파 민영화나 MMS 등이 현실화될지는 미지수이다.

신문사들의 전투는 방통위가 올해 안에 사업자를 선정하겠다고 발표한 종합편성(종편) 채널과 보도 전문 채널 사업권을 놓고 벌어지고 있다. 이르면 내년부터 신문사가 방송사를 겸영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방송 진출의 꿈을 갖고 있던 조선·중앙·동아일보(조·중·동) 등 대형 신문사들은 지난해부터 각 사마다 ‘별동대’를 꾸려 종편 사업에 대한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올 초부터는 신문사 사주들이 직접 대기업 오너들을 만나 종편 사업을 위한 컨소시엄 구성 등을 논의했을 정도였다. 조·중·동뿐만 아니라 매일경제와 한국일보, YTN, CBS 등도 종편 사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각종 분석에 따르면, 종편 채널의 초기 투자비는 3천억원 정도이며, 여기에 해마다 인건비와 프로그램 제작비 등 별도로 2천억~3천억원의 운영비가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이 막대한 자금을 마련해야 하고, 신문사와 대기업이 종편이나 보도 채널의 지분을 각각 30%까지만 소유할 수 있기 때문에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 조선·중앙·동아일보와 매일경제가 종편 진출에 적극적이다. ⓒ시사저널 박은숙

따라서 신문사마다 컨소시엄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사활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주들이 직접 나서서 진두지휘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자체 지면이나 세미나 등을 통해 종편 진출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한편, 아직 사업자 공고도 나오지 않았는데 방송 기자와 연출자(PD) 등을 모집하고 있다. 조선일보 등 종편 진출을 바라는 신문사들은 자사 지면 등을 통해 “종편의 안정을 위해 세제 혜택이나 앞자리 채널을 부여해야 한다”라며 방통위를 압박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입장도 바뀌었다. 최위원장은 “내가 무슨 권한이 있어 채널을 여기 놔라, 저기 놔라 하겠나”라고 밝혔지만, 최근에는 “처음 출범하는 방송에 ‘나 몰라라’ 하면 안 된다.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모든 것을 다하겠다. 거기에는 세제 지원뿐 아니라 채널 문제도 포함된다”라고 번복했다. 대형 신문사들의 요구를 거의 그대로 수용한 셈이다. 방통위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장은 “현행법상 채널 편성권은 케이블 방송 사업자에게 있다. 그런데도 방통위가 채널 편성권에 개입하겠다는 것은 관련법을 개정해서라도 거대 신문사들의 요구 조건을 그대로 들어주겠다는 것이어서 우려스럽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조선일보가 가장 의욕적…회장이 선두에서 동분서주

종편 사업권을 노리는 신문사들 가운데 현재 가장 의욕적으로 움직이는 곳은 조선일보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2007년 32억원을 투자해서 HD급 스튜디오와 녹음실 등을 갖춰 경제 전문 정보 채널 ‘비즈니스앤’을 개국했다. 지난해 2월에는 시사 다큐멘터리를 직접 제작해 지방 민영방송과 조선닷컴을 통해 내보냈다. 그리고 지난 8월에는 변용식 편집인을 단장으로 한 ‘방송 진출 기획단’을 출범시키면서 종편 진출 의지를 드러냈다. 이 기획단에는 주요 국·실 부장급 이상 간부들이 겸직하는 형태로 참여하고 있으며, 모두 90여 명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방상훈 회장이 컨소시엄 문제로 동분서주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미디어 사업을 하는 대기업의 한 간부는 “방회장은 대기업뿐만 아니라 케이블 방송 사업자, 중소기업 대표들까지 폭넓게 만나면서 ‘그랜드 컨소시엄’을 제안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이와 관련해 KT, SK, 포스코, 롯데, 현대차 등과 접촉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삼성과는 아직 접촉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각에서는 조선일보가 소유하고 있는 코리아나호텔을 담보로 2천억원을 마련할 것이라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그러나 일부 미디어 전문가들은 조선일보가 궁극적으로 종편 보도 채널보다는 MMS(지상파 다채널 방송)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고 보고 있다. 조선일보의 한 고위 관계자는 “(방송 진출과 관련해) 모든 사업에 대해 검토 중이다”라고 원론적인 입장만을 밝혔다.

중앙일보 역시 조선일보 못지않게 체계적으로 방송 진출을 모색해왔다. 중앙일보는 현재 자회사인 중앙방송을 통해 QTV와 히스토리 채널, J골프, 카툰네트워크 등을 운영하고 있다. 또 다른 자회사인 일간스포츠는 2007년 드라마 제작사인 ‘에이스토리’의 지분 16.6%를 확보해 1대 주주가 되었다. 2008년 3월부터는 인터넷 ‘조인스TV’를 통해 ‘중앙 NEWS 6’을 방송하고 있다.

중앙일보도 내부 조직을 방송 체제로 재편했다. 8월14일, 30여 명으로 구성된 방송본부를 출범시켰는데 김수길 부발행인과 김교준 논설실장이 각각 방송본부장과 방송사업추진단장을 맡았다.

업계에서는 중앙일보가 방송에 진출할 경우 삼성과 손잡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지만, 최근에는 중견 기업 가운데 컨소시엄 대상을 정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중앙일보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중앙일보가 삼성특검 등으로 곤욕을 치렀는데 삼성으로부터 지원을 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대기업들도 특정 매체와 컨소시엄을 구성할 경우 자칫 다른 매체들로부터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조심스러워 한다. 이에 중앙일보는 큰 무리가 없는 중견 기업 쪽을 택해 러브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4대 MSO의 그랜드 컨소시엄 구성 가능성도 점쳐져

ⓒ시사저널 임준선

동아일보는 지난해 12월부터 동아닷컴을 통해 인터넷 뉴스인 ‘동아 뉴스 스테이션’을 내보내고 있다. 지난 8월 종편 진출을 선언하면서 개국 후 방영할 프로그램 기획안까지 공모했다. 

동시에 1백22명으로 구성된 ‘방송설립추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위원장은 김재호 사장이 직접 맡았다. 김학준 회장은 고문, 최맹호 상무와 배인준 논설주간은 각각 부위원장 자리에 앉았다. 추진단장에는 임채정 미디어전략담당 이사가, 위원에는 실·국장 및 자회사 대표들이 임명되었다. 김사장은 “1980년 군사 정권에 빼앗긴 동아방송을 디지털 환경에 맞춰 복원한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라며 강한 의욕을 드러냈다. 

일각에서는 동아일보가 종편 사업권을 따내는 데 가장 유리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종편 사업자를 선정하는 방통위의 최시중 위원장과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의 친정이 바로 동아일보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보이지 않는 지원’이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반면에 ‘특혜 의혹’을 받을 수 있어 선정 과정에서 오히려 불리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중·동을 제외한 매체 가운데는 매일경제가 가장 적극적이다. 매일경제는 지난 1995년 개국한 MBN을 통해 축적한 신문·방송 겸영의 노하우를 갖고 있다는 강점이 있다. 매일경제 역시 지난 8월 방송 진출을 위한 기구인 ‘글로벌 매경 종편 설립 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위원장은 장대환 회장이 직접 맡았고, 류호길 MBN 미디어국장이 사무국장을 맡았다. 지난 6월 만난 매일경제 관계자는 “국내 증권사를 통해 종편 진출에 필요한 자금을 펀딩받으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서울경제 TV를 보유한 한국일보와 YTN도 조만간 종편 진출을 위해 태스크포스를 구성할 예정이며, CBS는 종편이냐 보도 채널이냐를 놓고 내부 논의가 한창인 것으로 전해졌다. 언론사뿐만 아니라 국내 4대 MSO(복수 종합 유선 방송 사업자)인 티브로드와 CJ헬로비전, HCN, C&M 등도 최근 컨소시엄을 구성해 종편에 진출하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신문사와 4대 MSO가 그랜드 컨소시엄을 구성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이 만만치 않다. 김영곤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는 “케이블TV 입장에서는 신문사가 점령군으로 비칠 수 있다. 양측이 서로 주도권을 가지려는 상황에서 컨소시엄은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는 보도 채널 진출을 선언했고 국민일보, 한국경제TV, 헤럴드경제 등도 종편 채널보다 보도 전문 채널 진출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일보의 한 임원은 “초기 자본이 많이 드는 종편 사업 진출은 솔직히 벅차다. 게다가 종편 채널에 사업성이 있는지도 의문스럽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종편 채널의 사업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연간 8조~9조원 규모인 우리나라 광고시장에서 종편 채널이 등장했다고 해서 광고시장이 얼마나 커지겠느냐는 것이다. 대기업의 한 광고 담당 간부는 “현재 광고를 줄이는 상황에서 종편 채널이 출범한다고 해서 추가로 광고 비용을 늘릴 계획을 갖고 있지는 않다. 방통위 등에서 간접적으로 광고를 주라고 압박한다 해도 현재 지상파에 들어가는 광고 비용을 떼어서 종편 채널에 줄 수밖에 없는 사정이다”라고 말했다.

방송계의 고위 간부는 “초기에 3천억원을 투자해야 하고 해마다 2천억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가는데, 1년 반만 지나면 자본 잠식이 일어나는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광고 수입을 보장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결국, 1대 주주인 신문사가 2, 3대 주주인 대기업들에게 자금 지원을 더 요청하게 될 것이다. 해당 기업에게는 이중 삼중으로 고통이 아닐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방통위의 종편 사업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종편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신문사 가운데 한 곳이 최근 방통위에 종편 사업을 1년 정도 더 미룰 수 있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전달해왔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방통위가 올해 안으로 종편 채널 사업자로 1~2곳을 선정할 예정이었으나 방통위 내부에서 “올해는 일단 한 곳만 정하자”라는 목소리도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만큼 종편 사업이 실현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방송 권력’을 향한 ‘신문 권력’의 무한 질주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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