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는 양지에서 흘러야 제값을 한다
  • 김재태 편집부국장 (purundal@yahoo.co.kr)
  • 승인 2009.09.15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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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政敎) 분리가 채 이루어지지 않은 고대 국가들에서 천체 및 기후 정보는 왕권의 위력을 강화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다. 그 시절 권력자는 대중의 무지를 볼모로 삼아 경외감을 고양시키며 지배력을 키워나갔다. 일식·월식 등 괴기스러운 일기 변화를 권력자에 대한 숭배심을 높이는 계기로 삼는 일도 적지 않았다. 최근 국민들 사이에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도 그 사례는 극적으로 나타난다. 개기일식을 둘러싸고 미실과 덕만이 벌이는 숨막히는 심리전이 대표적인 일화이다. 신권(神權)을 백성들에게 공여하겠다는 덕만 공주와, 신권을 내려놓으면 왕권이 위험해진다는 미실 사이에 팽팽한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여기서 말하는 신권이란 말 그대로 신의 권력, 즉 신의 영역에 속한다고 믿었던 천체의 조화를 예측하고 관리하는 능력을 일컫는다. 그것은 뛰어난 예지력이나 책력과 같이 잘 정비된 지식 기반의 기술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우매한 백성들로서는 당연히 그것을 독점한 권력자를 믿고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기상 정보를 널리 알려 ‘천기 누설’을 공식화하겠다는 덕만의 계획이 권력 투쟁에 노회한 미실의 눈에 가당하게 보였을 리 만무하다.

그것을 획득하는 수단이나 통로가 바뀌었을 뿐, 정보력이 권력의 생성·유지에 필수임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조선 시대의 역참과 봉수 제도 등 그것을 증빙하는 근거는 무수히 많다. 심지어 마추픽추의 신비로운 유물을 남긴 잉카 제국이 고지의 산림 속에 그 수많은 길을 만들어놓은 것도 오지에 산재된 각 지역의 정보를 신속하게 수집하는 데 주된 목적이 있었다고 전해질 정도이다.

정보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일에 집권 세력이 적극 나서는 것을 반드시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잘 얻어진 유용한 정보는 국익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문제는 그 과정의 정당성에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국군기무사령부가 민간인 사찰 의혹으로 여론의 도마에 올라 있는 상황은 적지 않은 우려를 자아낸다(48쪽 특집 기사 참조). 그렇지 않아도 기무사의 전신인 옛 보안사의 학원 사찰과 강제 징집 문제 등 잘못된 과거에 대해 불편한 기억을 지닌 사람이 적지 않은 마당이다. 어떤 일이든 정도를 벗어나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

정보는 양지에서 햇볕을 받으며 흘러다녀야 제값을 한다. 음지로 모이는 정보는 썩어서 사회의 건전성을 위협하는 또 다른 독성 물질이 될 따름이다. 게다가 잘못 길러진 정보는 패륜아처럼 간혹 제 주인을 물기도 한다는 사실을 권력자와 권력 기관은 부디 잊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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