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강암의 기적
  • 이종호 |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전문위원 ()
  • 승인 2009.09.22 17:1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라 석공들의 ‘불심’이 빚어낸

▲ 석굴암 본존불 이마의 백호는 새벽 빛을 받아 내부를 밝힌 것으로 추정된다.


<시사저널>은 ‘세계문화유산 속에 숨은 과학의 비밀’이라는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은 민족의 우수성을 세계  만방에 보여주는 문화재입니다. 그 속에는 해당 민족의 정신 문화와 당대의 과학기술이 총결집되어 있습니다. ‘세계문화유산~’은 국내외를 넘나들며 과학저술가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이종호 박사가 연재합니다.

이박사는 고려대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과학국가박사 학위를 받은 뒤 국가 초빙 과학자로 귀국해 한국동력자원연구소 태양열 연구실장, 이동에너지기술연구소 소장 등을 지냈습니다. 현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장기 전문위원으로 있으며 교육과학기술부의 과학기술앰배서더, 지식경제부의 로봇산업정책포럼위원 등을 맡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우리 문화유산> <노벨상이 만든 세상> 등 수십 권의 책을 썼습니다.

석굴암을 방문한 사람들은 석굴암이 과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될 가치가 있느냐고 의문을 표시하기도 한다. 외국의 유산에 비해 볼 것도 많지 않고 규모도 너무 적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석굴암(국보 제24호)은 경주시 진현동 토함산 산자락 해발 5백65m에 자리 잡고 있는데, 신라의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 서기 735년에 세운 것이다. 석굴암에는 본존불을 포함해 모두 40개의 불상이 있었는데 제일 앞에 있는 좌우 첫 번째 감실 두 개의 불상이 일본인들에 의해 반출되었기 때문에 현재 석굴암에 안치되어 있는 불상의 수는 총 38구이다. 중앙의 본존불은 높이가 3.4m에 이르며 대좌까지 합쳐 5m나 되는 큰 불상으로 신체의 비례가 알맞고 각 부분이 부드럽고 세련된 솜씨로 조각되어 있다.

신라의 석굴암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은 것은 외국에 있는 대형 건축물이나 유산들에 비교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 독창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신라의 예술가들은 새로운 방법을 창안했다. 즉, 산을 파내어 굴을 만들고 조각된 돌들을 조립한 후 흙을 덮어 중국이나 인도의 석굴사원처럼 보이도록 한 것이다. 세계적으로 인공으로 만들어진 석굴 형태에 예술적으로 조각된 불상들을 배치한 곳은 오직 석굴암뿐이다.

더불어 석굴암이 외국의 대형 유산들과 당당하게 겨룰 수 있는 이유는 석굴암을 만든 재료에 있다. 석굴암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전세계인들로부터 그 정교함과 화려함 때문에 찬사를 받고 있는 스페인의 알함브라 궁전에 사용된 조각품들의 재료는 놀랍게도 석고이다. 이집트의 거대한 피라미드, 영국의 캔터베리 대성당이나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은 석회석이 원재료이다. 석회석은 경도에서 활석 다음으로 무른 돌로 조그마한 조각칼로 비누를 조각하는 것처럼 쉽게 정교한 인물상들을 조각할 수 있다. 이탈리아 조각상들은 재료가 대리석이다. 제작의 난이도에서 화강석에 비해 비교적 쉽다. 동남아에 있는 수많은 불상과 불탑에 정교한 인물상들이 조각되어 있고, 앙코르와트가 단일 규모로 세계에서 가장 큰 사원이라는 데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겉보기에는 매우 단단한 돌처럼 보이므로 그 많은 돌로 건축하는 데 상당한 노력이 들어갔다고 단언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대형 건축물의 대부분은 진흙과 같은 재료로 만든 것이다.

멍에돌 공법 사용…천장 덮개 돌 무게는 20t

이에 비해 석굴암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화강암은 경도가 높아 섬세한 조각을 하기가 아주 힘든 재질이다. 화강암으로 조각할 때의 가장 큰 문제점은 화강암의 재료가 균일하지 않다는 점이다. 화강암은 장석, 운모, 석영 등 서로 다른 재료로 되어 있으므로 예상치 못한 결 때문에 쪼개질 수가 있다. 마무리 단계에서 실수를 해 조그마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더라도 어김없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석굴암은 자세히 보면 손금과 발금이 있는 것은 물론 연화문의 꽃무늬가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필자는 발금이 있는 불상을 아직 다른 나라에서 발견하지 못했다. 다루기 매우 어려운 화강암으로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제작 과정을 거쳐서 완벽한 배율과 아름다움을 갖도록 만들었으므로 석굴암은 비록 작은 규모이지만 세계 어느 문화재에 비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또한, 석굴암은 시공 면에서도 탁월한 재능을 보여준다. 반경 12자의 궁륭형 천장은 화강석을 둥근 띠 모양으로 묶어 5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띠 둘레는 각각 10개의 2중 곡면 부재로 묶였는데, 아래쪽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점차 띠의 폭이 줄어들며 정점에 연꽃 문양으로 된 1백25개의 돌을 올려놓았다. 아랫부분의 2개 층을 제외하고는 띠를 묶을 때 돌들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연접부에 쐐기들을 수평으로 박았는데 이를 ‘멍에돌(동틀돌)’이라고 한다. 멍에돌 머리 부분에는 잘록하게 판 홈이 있고 홈에 천장 판석을 끼운다. 멍에돌을 삽입해 반 모멘트를 조성시켜 조립식으로 구형 방막을 건설한 것과 각 부재들의 이음줄이 세로 면에서는 궁륭의 원심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궁륭 표면상에서는 정확하게 자오선을 따라 형성되도록 한 것은 신라의 석공들이 높은 구조역학적 지식을 갖고 석굴암을 축조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돌 부재가 중심축 방향으로는 주로 압축력만이 작용하게 하고 위로 올라갈수록 부재의 무게를 줄이게 하는 합리적인 구조로, 불국사 청운·백운교 좌우의 석벽 구조에서도 멍에돌 공법이 사용되었다.

천장 덮개 돌은 손잡이가 없는 찻잔을 거꾸로 엎어놓은 형상으로 연화문 지름 2.47m, 높이 1m, 바깥쪽 지름 3m나 되는 크기로 무게가 자그마치 20t이나 된다.

석굴암에서 학자들의 주목을 끄는 것은 본존불 이마 한가운데 있는 백호(白虎, 성인의 32가지 상호 중 하나)이다. 이것을 다면체로 깎아 햇빛을 반사해 후면에 있는 11면 관세음상의 이마에 비추게 했다는 설이 있다. 이를 위해 제일 앞에 있는 좌우 첫 번째 감실 두 곳에 있던 불상(일본인이 반출한 것을 뜻함)도 본존불처럼 이마에 백호 구슬을 지니고 있어 동트는 새벽의 첫 번째 빛이 석굴암 입구와 그 위에 달린 광창을 통해 본존불 이마의 백호에 와 닿고, 반사된 빛이 두 보살상의 백호를 통해 다시 한 번 굴절되어 나온 후 11면 관세음상의 이마에 비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새벽의 짧은 한순간에 석굴암 내부의 조명 효과를 극적으로 제고한다는 설명이다. 즉, 일본인들이 반출한 감실 내의 두 보살상과 본존불 이마의 백호가 다시 원위치에 선다면 이런 효과를 재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이를 위한 기초 연구를 계획 중이다.

석굴암은 두 번에 걸쳐 두께 석 자의 콘크리트를 싸서 발랐는데 이 대목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당시 철근콘크리트는 새로 발명된 최첨단 건축 기법 중 하나였다. 일본 학자들로서는 석굴암을 해체·복원하면서 습기로부터 완전하게 차단하고 구조적으로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최첨단 공법을 도입한 것이다. 그러나 이때 과학자들은 시멘트에서 나오는 탄산가스(CO2)와 칼슘(Ca)이 화강석 벽을 손상시키고 습기를 흡수한다는 것을 몰랐다. 최첨단 기술이 항상 좋은 대안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하튼 보수 공사 때마다 첨단 기술을 사용했음에도 습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석굴암의 훼손 상태가 날로 심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학자들은 석굴암에서 습기가 생기는 가장 근본적인 요인은 석굴 내부가 숨을 쉬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