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안에 북·미 직접 대화한다
  • 김동현(Tong Kim) | 존스홉킨스 대학 국제대학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09.09.22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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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방북 보따리’ 풀자 미국 입장 ‘대화’로 급선회…한국 정부 강경 일변도는 ‘통미봉남’ 자초할 수도

▲ 고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 장례 미사에 참석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머지않은 시기에 북·미 간 직접 대화가 시작될 것이 확실시된다. 이르면 9월 말, 늦어도 10월 안에 스티븐 보스워즈 대북특사가 평양을 방문해서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위한 설득에 나선다는 것이다. 9월11일 미국 국무부는 “미국은 북한과 직접 대화를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발표했다. 미국은 그동안 북한을 향해 강도 높은 제재를 가하면서 6자회담에 복귀하기 전까지는 북한과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미국의 대북 정책에 갑작스런 변화가 생긴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될 만했다. 9월15일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위해, 6자회담의 목적과 북측에 돌아갈 인센티브 등을 미국 대표단이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직접 북한에 설명하겠다”라고 밝혔다.

미국 행정부의 한 소식통은 최근 필자에게 “보스워즈 특사의 방북 준비를 위해 국무부가 내부 협의를 진행 중에 있으며, 9월18일까지 백악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방부, 국무부 등 관계 부처 간의 부장관급회의(DC)를 열고, 여기서 합의되는 결과를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그의 재가를 받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클린턴 장관의 9월15일 발언으로 볼 때, 북·미 간 양자 대화는 이미 결정된 것이며, 다만 형식적인 결정 과정을 밟는 절차와 함께, 대화의 시기, 내용 등을 부처 간의 협의를 거쳐 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대화의 성격은 핵문제가 아니라, 6자회담의 부활로 국한될 전망이다. 

보스워즈 특사 방북 위해 국무부가 내부 협의 중

미국은 양자회담 의사를 발표하기 전에 보스워즈 특사로 하여금 아시아를 방문하게 하고 자신의 방북 가능성에 대한 반응을 타진했다. 물론 중국은 문제가 없지만, 한국·일본 등 두 동맹국들에게는 선무 차원의 달래기 작업이 필요했던 셈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처음부터 6자회담 틀 내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추구한다는 것과, 한국·일본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서 북한을 상대하겠다는 외교 형식의 틀을 굳혔다. 북한과의 양자회담은 6자회담 구도 안에서만 한다고 천명했다. 따라서 6자회담을 부활하기에 앞서 북·미 간 직접 대화를 한다는 것은 워싱턴과 서울의 보수파들에게는 충격적인 국면 전환인 셈이다.  

미국이 갑자기 북·미 직접 대화를 하겠다고 나선 배경은 무엇일까. 그 실마리는 지난 8월4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에서부터 풀리게 된다. 당시 북한을 다녀온 클린턴의 ‘방북 보따리’에는 김정일 위원장의 “미국이 북한의 자주권을 인정하고 평화 공존을 한다면, 북한은 미국의 우려 사항들을 대화로 풀 수 있다. 북한은 미국과 적대적 대결 관계가 아니라 관계 개선을 원한다”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특히 방북 당시 클린턴 전 대통령은 사견임을 전제로 북·미 관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면서, 북·미 대화를 위해서 북한이 보스워즈 특사를 평양에 초청할 것을 제안했다(이는 9월10일 클린턴 전 대통령을 수행했던 존 포데스타 보좌관으로부터 확인받은 내용이다).

실제로 북한은 얼마 후 보스워즈 특사의 방북을 뉴욕 채널을 통해서 요청했다. 김정일은 동시에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에게 사람을 보내 미국과 양자 대화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하기도 했다. 미국 국무부는 보스워즈 방북 초청장을 받은 후 한동안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북한의 초청장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데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과의 조정도 필요했지만, 그보다는 그때까지 북한을 불안정하게 보는 시각을 먼저 수정해야 하는 계기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오바마 행정부나 워싱턴의 북한 전문가들은 지난 4월만 해도, 김정일의 건강 위기설과 권력 승계 등 불안한 북한 내부 사정들을 추측하면서, 북한의 급변 사태에 관심을 기울였다. 만약 북핵 문제와 관련한 협상을 한다면 김정일 다음 정권과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추측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오판이었던 셈이다. 지난 8월 김정일은 클린턴 전 대통령과 3시간 이상, 열흘 후에는 현대아산의 현정은 회장과 4시간 회담을 하며 자신의 건강을 과시했다. 미국의 시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던 계기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상태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주치의로 평양에 따라 갔던 로저 밴드에 의해서도 확인되었다고 보도되었다. 물론 육안으로 보는 관찰에 의존한 것이기 때문에 한계는 있다. 

김정일 건강 위기설 오판으로 미국 시각 달라져

▲ 김정일 위원장이 북중기계련합기업소를 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워싱턴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굽히고 들어오는 것은 유엔 제재의 효과 때문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이런 사람들은 행정부 내에도 있다. 한국 정부에는 더 많이 있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해주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오히려 확실한 것은 제재만으로는 비핵화가 어렵다는 것이다. 북한은 남북 간의 긴장을 완화하는 조치들을 취했고, 남북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는 생각을 서울에 전달했다. 이와 같은 북측의 유화적인 접근에 대해서 현인택 통일부장관은 “전술적 변화”, 이명박 대통령은 “위기 모면을 위한 유화책일 뿐, 아직 핵 포기에 대한 진정성이나 징조는 보이지 않는다”라고 규정했다. 일부 보수 강경 세력들은 “김정일이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핵능력 증대를 위한 시간만 연장해주고 김정일에게 또 속고 말 것이다”라고 경계한다.

이와 같은 한국 정부의 강경 기조는 오히려 한·미 간의 대북 공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재 상황에서 한국은 미국의 행보를 주시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미국만 쳐다보는 태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자칫 ‘통미봉남(通美封南)’을 한국이 자초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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