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수명 100세’ 시대 머지않아 열린다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9.09.29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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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뒤 태어나는 아이들, 맞춤 의약품과 유전자 조작으로 40년 이상 더 오래 살아”

▲ 어버이 날 서울시립마포노인복지관을 찾은 한 어르신이 직원이 카네이션을 달아드리자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뉴시스


장생을 상징하는 말에 므두셀라(Methuselah)가 있다. 노아(Noah)의 할아버지로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이 인물은 9백69세까지 살았다고 전해진다. 노화와 장수를 연구하는 학문을 므두셀라학이라고 부르는 배경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인간 수명에서 마의 벽은 1백20년이다. 1백22년까지 살았던 사람이 있지만 대부분은 1백20년을 넘지 못했다. 앞으로 인간 수명이 이 벽을 넘어설 수 있느냐는 모든 이의 관심거리이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지난 2001년 학계에서 유명한 두 교수가 인간 수명이 얼마나 늘어날지에 대해 내기를 했다. 스티븐 오스태드 미국 아이다호 대학 교수는 인간이 1백50세 이상 살 수 있다는 쪽에 걸었다.
이에 대해 스튜어트 올샨스키 미국 일리노이 대학 교수는 “최대로 잡아도 1백30세를 넘지 못할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내기 시점에서 1백49년 후인 2150년 1월1일을 기준으로 1백50세까지 생존한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기로 했다. 이들은 각각 1백50달러를 신탁예금하고 매년 일정액을 납부해서 2150년까지 상금 5억 달러를 만들어 이기는 쪽 자손에게 주기로 학계의 공증까지 받았다. 

사람이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인류가 지구상에 생긴 이래 계속 이어져온 원초적인 궁금증이다. 학계에서는 인간 수명의 한계는 1백20세라는 주장이 최근까지 대세를 이루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 대부분이 성장 기간의 여섯 배 이상 살지 못한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인간이 20세까지 성장한다고 볼 때 그 여섯 배인 1백20세 언저리가 수명의 한계라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1백20세 이상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의학 기술이 발달하는 정도로 볼 때 인간 수명 연장에 한계선을 두기가 어렵다는 논리를 편다. 오스태드 교수는 “DNA 복제 기술과 세포 연구 발달로 가까운 미래에 생체 이식이 보편화할 것이다”라고 예측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100m 육상에서 10초는 인간이 도전할 수 없는 마의 벽으로 여겨졌다. 1960년대에 이 벽은 깨졌다. 이처럼 1백20세라는 인간 수명의 한계가 깨질 것이라는 전망이 최근 급물살을 타고 있다. 앞으로 100년 후쯤 되면 인간 수명의 한계로 여겨지고 있는 1백20세는 최장 수명이 아니라 평균 수명이 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왔다. 크레이그 매코믹 호주생명공학연구소 소장은 “맞춤 의약품과 유전자 조작의 결과로 2020년에 태어나는 아이들은 평균 수명이 지금보다 40년 이상 늘어나 1백20세에 이를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그때가 되면 인간 최장 수명은 1백50년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박상철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 소장은 “지금 추세로 가면 2100년이 오기 전에 사람이 1백50세까지 살게 될 것이다. 자연 사망이 가장 많은 연령을 뜻하는 최빈 사망 연령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일본의 최빈 사망 연령은 한국보다 10년 많은 92세이다. 이 연령이 꺾일 기세를 보이지 않고 계속 상승한다는 사실에 세계 전문가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최근까지 전망했던 인간 수명의 한계 1백25세는 곧 깨질 것으로 본다”라며 ‘1백50년 수명론’에 무게를 더했다.

최빈 사망 연령 계속 상승해 전문가들도 놀라

▲ ‘제1회 대한민국 나이 없는 날’로 지정된 9월9일 오후 홍대의 한 클럽에서 빠른 비트의 클럽 음악에 몸을 맡긴 할머니들이 독특한 복장을 하고 춤을 추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이런 전망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빨리 현실로 나타날지도 모른다. 지난 7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 100세인 연구단 세미나에서 프랑스의 한 인구 학자는 지금까지 전문가들의 수명 예측이 얼마나 빗나갔는지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인간 평균 수명이 85세를 당분간 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2000년 초입에 나온 이 전망은 10년도 되지 않아 깨졌다. 2009년 들어 일본 여성의 평균 수명은 86세에 도달했다. 이처럼 실제 인간 수명은 항상 예측을 뛰어넘었다. 인간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오래 사는 셈이다.

지난 9월11일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흑인 여성 거트루드 베인스가 1백15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에 따라 1백14세의 일본인 지넨가마 할머니가 세계 최고령자가 되었다고 미국 UCLA병원 노인학연구소가 밝혔다. 1875년 2월21일 태어나 1997년 8월4일 세상을 떠나 1백22년 1백64일을 산 프랑스인 잔 칼망 할머니가 이 분야 최고 기록자이다. 현재까지 나오고 있는 전망대로라면 불과 수십 년 후에는 100세인을 화제로 다루는 일은 무의미할지 모른다. 미국 인구통계청에 따르면 이미 100세 이상 인구가 전세계적으로 34만명에 달하며, 2050년이면 6백만명에 이를 전망이다. 이미 국내에서도 100세인이 1천명이 넘는다. 85세 이상 노인이 30만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만큼 100세 인구는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인간 수명은 시간 흐름과 비례해서 연장되어왔다. 20세기에 접어들었을 때만 해도 40~50세에 불과했던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현재 80세에 육박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세계 1백93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집계한 ‘세계 보건 통계 2009’에 따르면 세계인의 평균 수명은 67.5세이다. 일본인은 82.5세로 장수국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인은 78.5세로 미국인의 77.5세보다 길다.

선진국·고소득층·도시에서 장수인이 늘어나

▲ 세계 최고령자인 거트루드 베인스 할머니(오른쪽)는 1백15세까지 살았다. ⓒAP

수명이 늘어나고 100세인이 많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 전문가들은 장수의 특징을 하나하나 밝혀내고 있다. 최근 눈에 띄는 특징으로는 저소득층보다 고소득층에서, 후진국보다 선진국에서, 시골보다 도시에서 장수인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WHO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고소득층 수명은 79.5세로 저소득층의 56.5세보다 23세 높게 나타났다. 미국 인구통계청은 세계에서 100세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 미국과 일본이라는 통계를 발표했다. 특히 최장수 국가로 유명한 일본은 2050년에 100세 이상의 장수인이 전체 인구의 1%(62만7천명)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이탈리아·그리스·싱가포르도 온화한 기후 덕에 100세 인구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국내에서도 최근 의미 있는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서울시 서초구가 최근 100세인을 포함한 장수인이 많은 지역으로 선정되었다.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의 박소장은 “서울 서초구에는 지방에서 100세인들이 대거 유입된 경우이므로 자연적인 장수 지역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2005년 이후 시골보다 도시에서 장수인이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고 서울 서초구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는 사회안전보장 제도, 의료 혜택 등으로 건강 대비책이 적절하게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민건강보험을 시행한 1990년부터 국내 장수인이 급격히 늘어났다”라며 경제적 여유와 사회적 체계를 최근 장수의 특징으로 꼽았다. 

부모가 장수하면 자녀도 오래 살 확률이 높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특히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장수가 자녀의 수명과 관련성이 크다. 이런 특징으로 보아 인간 수명은 유전자에 이미 짜여 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장수 유전자를 찾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중국의 푸단 대학 생명과학원의 진리(金力) 교수는 지난 9월17일 2년간의 조사 끝에 중국인 수명과 관계 있는 DNA 족보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결과는 미국 공공 과학도서관 온라인 학술지 <폴로스 원(PloS One)>에 실렸다. 진리 교수는 장쑤 성 루가오 시에서 ‘루가오 장수 인구 건강 조사’를 실시했다. 루가오는 중국의 유명한 장수 마을이다. 2000년 중국 전국의 평균 수명이 71세였던 것에 비해 루가오의 평균 수명은 75.58세였다. 2007년 말 1백40만명이 사는 루가오에는 1백2명의 100세가 넘는 노인이 살고 있다. 진리 교수는 이 지역 노인들의 혈액과 DNA를 분석한 결과 100세 이상 노인 중 약 20%에서 DNA의 미토콘드리아에서 특정 인자가 많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는 “일본에도 비슷한 연구 결과가 있다. 모친이 장수하면 아들딸도 오래 살 가능성이 비교적 크다. 아버지의 장수가 자녀의 장수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라고 밝혔다.

비타민 B12가 장수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성분이라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국내 장수인의 혈액을 분석하면 비타민 B12 농도가 많이 발견된다. 비타민 B12는 육류 섭취를 통해 체내로 흡수한다. 채소 위주로 식사하는 한국인에게 비타민 B12가 풍부하다는 것은 국제적인 수수께끼였다. 육식을 주로 하는 미국 노인 중에는 비타민 B12가 부족한 경우가 적지 않다. 서울대 의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은 된장, 간장, 고추장 등 발효 식품에서 비타민 B12를 섭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수인의 특징은 이뿐만이 아니다. 장수인의 키는 보통 사람에 비해 작다. 키가 작은 사람일수록 동맥경화로 인한 사망률이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여성이 남성에 비해 장수한 사례가 많다. 그 원인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여성호르몬의 작용이나 키 차이가 영향을 주는 것으로 추정된다.

키 작은 여성이 남성보다 오래 살아

▲ 서울 한강가족공원 이촌지구의 우드볼장에서 노인들이 우드볼 경기를 즐기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부지생 언지사(不知生 焉知死)’라는 공자의 말이 있다. 삶을 모르는데 어떻게 죽음을 알 수 있겠는가라는 의미이다. 인간 수명에 대한 호기심에 명확한 답을 내기는 불가능하다. 다만, 인간 수명이 늘어나는 만큼 이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오래 살더라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실제로 건강을 위협하는 암, 심혈관질환, 당뇨병을 모두 없애도 평균 수명이 약 10년 정도 연장될 뿐, 최장 수명은 늘어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혈압, 혈중 콜레스테롤, 혈당, 건강 생활 습관 등 건강 필수 종목을 모두 30세 청년 수준으로 유지해도 인간 수명은 남성 99.9세, 여성 97세에 머무른다는 계산도 있다. 오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는 날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시각에도 무게가 실린다.

이덕철 연세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실제로 국내 60세 이상 노인 중 25%가 남은 삶 동안 심각한 신체 장애를 갖고 살아간다는 보고가 있다. 또, 병원이나 재활원이 아니라 일반 가정에 있는 노인의 43%가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삶의 시간이 늘어나는 것이 건강한 삶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얼마나 사는가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 고령자가 늘어나는 만큼 사회적 충격에 대한 준비도 필요하다. 로버트 버틀러 국제장수센터 소장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00세 인구의 건강 여부에 따라 여러 사회 문제가 결정될 것이다. 100세인이 건강하게 지낸다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병약한 100세인이 급격히 증가하면 그 사회적 비용은 엄청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미국 조지아 대학 교수인 레너드 푼 미국 노인의학연구소 소장이 지난 6월 국내 대표 장수 지역인 전라도 순창을 찾았다. 세계 100세인 연구의 권위자인 푼 교수는 100세 장수의 비결을 집대성하기 위해 세계 각국을 돌며 연구하고 있다. 세계 최장수 국가인 일본에 3일 머물렀던 그는 순창에서 1주일이나 지냈다. 그는 한국인의 장수 비결로 한국 특유의 가족 부양 시스템을 꼽았다. 푼 교수는 “100세가 넘은 노인이 바깥 출입을 하고 건강상태도 좋은 것은 이들을 모시고 사는 아들, 며느리의 따뜻한 가족애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가족들로부터 부양을 잘 받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해져 장수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또 “나이에 연연하기보다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오래 사는 것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노후를 미리 준비하고, 작은 일이라도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자신 있고 당당하게 늙어가는 방법이다”라며 ‘장수의 품질’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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