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의 ‘완전한 선거’ 자승 스님 압승으로 끝나나
  • 신혁진 | 불교포커스 기자 ()
  • 승인 2009.10.13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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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총무원장 선거 앞두고 ‘대세론’ 확산…“집단 세력화” 비판도

▲ 지난 9월29일 조계사에서는 교구 본사 주지들이 모여 조계종 총무원장 후보 추대식을 가졌다. ⓒ불교포커스


10월22일 실시될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는 거의 20년 만에 예정된 일정으로 치러지는 선거이다. 그동안은 총무원장이 임기 중에 사퇴하거나 정권에 의해 강제로 물러나기도 했고 갑작스럽게 입적해 혼란한 가운데 선거가 치러지기도 했다. 1980년대 초반 총무원장이었던 월주 스님은 군부 쿠데타 세력에 의해 강제로 물러나다시피 했다. 2000년대 첫 총무원장이었던 정대 스님은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스스로 물러났다. 전 총무원장이었던 법장 스님 역시 2005년 9월 갑작스럽게 입적해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이후 경선으로 선출된 지관 스님은 4년의 임기를 모두 채우고 10월30일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새 원장과 전 원장이 한 자리에서 이·취임식을 거행한 경험도 남기지 못한 것이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의 총무원장 선거 역사였다.

조계종 총무원장은 스님들의 간접 투표로 선출된다. 총무원장을 선출하는 선거인단은 중앙종회 의원 81명과 조계종 24개 교구본사의 교구종회에서 10명씩 선출한 선거인단 2백40명 등 모두 3백21명으로 구성된다. 선거인단 선출을 위한 교구종회가 10월7일부터 11일까지 5일간 각 교구별로 진행되었다.

총무원장 선거에 입후보할 수 있는 자격은 조계종 재적승으로서 승랍 30년 이상, 연령 50세 이상, 법계 2급 이상의 비구여야 한다. 그러나 제적 등의 징계를 받았거나 조계종에 등록하지 않은 사설 사찰을 소유한 스님은 후보자가 될 수 없도록 정해 피선거권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투표는 조계종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정한 장소에 선거인단 3백21명이 모여 실시한다. 지난 32대 선거의 경우 서울 조계사 옆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지하 공연장에서 투·개표가 실시되었다. 투표 시간은 중앙선관위가 정하지만 전원이 투표를 마치면 종료된다. 32대 선거의 경우 2005년 10월29일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진행키로 하고 선거인단 전원이 투표를 마칠 경우 투표를 종료하기로 해 오후 3시15분 마감했었다.

개표는 투표가 마무리되면 선관위와 참관인의 입회하에 즉시 이루어진다. 당선되기 위해서는 선거인 재적 과반수를 얻어야 한다. 과반수를 넘은 후보가 없을 경우 1, 2위 후보를 대상으로 재투표를 실시해 다득표한 후보를 당선인으로 결정한다. 2차 투표에서 득표 숫자가 같을 경우 승랍 순, 승랍이 같을 경우에는 연장자 순으로 당선인을 결정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당선증을 받더라도 조계종 원로회의의 인준을 받아야 비로소 총무원장 자격이 주어진다.

젊은 스님들, 압도적 지지 따른 부작용 우려

▲ 차기 총무원장으로 유력시되고 있는 자승 스님. ⓒ불교포커스

조계종 종헌 54조 1항은 ‘총무원장은 본종을 대표하고 종무행정을 통리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행정 수반’ 역할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불교 최대 종단의 수장으로서 사실상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역할을 한다. 권한도 막강하다. △종헌·종법 제·개정안 제출권 △종령 제정권 △총무원 임직원 및 각 사찰 주지 임면권 △종단 소속 사찰의 재산 감독권 및 처분 승인권 △특별 분담 사찰 및 직영 사찰 등 중요 사찰의 예산 승인권 및 예산 조정권 △특별 분담 사찰 및 직영 사찰 지정권 △징계의 사면·경감·부권 및 포상 품신권 등이다. 총무원장은 입법 기구인 중앙종회의 견제 속에서, 인사·재정·상벌 등 대부분의 권한을 갖게 되는 것이다.

제33대 총무원장 선거의 후보 등록 기간은 10월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이다. 현재 가장 유력한 후보로는 은정불교문화진흥원 이사장인 자승 스님이 꼽힌다. 그는 30대 총무원장이었던 정대 스님의 상좌로 총무원 총무부장과 중앙종회 의장을 지냈다.

자승 스님은 조계종 중앙종회 내에 존재하는 네 개 종책 모임의 지지를 받고 있다. 또, 전체 24개 교구본사 중 20개 본사 주지 역시 자승 스님 지지에 힘을 보태고 있다. 그러한 까닭에 불교계 일각에서는 ‘선거는 이미 끝났다’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자승 스님의 승적 정정 과정에 문제가 있다’라는 문제 제기도 나오고 있으나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자승 스님 대세론’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의 경험에 비추어 누구도 결과를 예단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자승 스님은 지난 9월29일 조계사에서 후보 추대식을 치렀다. 추대식에는 24개 교구본사 중 20개 교구본사의 주지 스님들이 참석했다. 81명의 종회 의원 중 60여 명이 참석했다. 종회 의원은 투표권을 가지고 있고, 본사 주지 스님들은 교구 선거인단 구성에 가장 크게 영향력을 미치는 위치에 있으니, 추대식에 참석한 규모로만 본다면, 3백21명의 선거인단 중 80% 정도의 표를 확보한 것이다. 특별한 변수가 없으면 자승 스님의 당선을 기정사실화해도 무리가 없는 것이다.

1994년 조계종 개혁 이후 치러진 총무원장 선거에서 이번처럼 압도적으로 지지세를 확보한 후보는 없었다. 세 과시라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지만, 자승 스님의 정치력이 돋보이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해관계에 얽매여 만들어진 총무원장이 과연 제대로 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조계종 내부에서는 벌써부터 “누구는 어느 자리에 가기로 했다”라는 식의 소문이 나오고 있다.

조계종의 젊은 스님들이 모인 ‘청정승가를 위한 대중결사’는 이같은 압도적인 지지에 따른 부작용과 후유증을 우려하면서 “종회 의원의 집단 세력화는 기득권을 영구히 누리려는 이기적인 행동이고, 신성한 선거를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좌지우지하겠다는 오만한 권력 남용…”이라고 4자 연대를 매우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자승 스님보다 앞서 종하 스님(원로 의원)과 각명 스님, 대우 스님이 출마를 선언했고, 도영 스님(전 포교원장), 정념 스님(월정사 주지) 등이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대세론이 이미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고 선거인단 선출을 통해 표 계산이 가능한 상황에서 과연 출마를 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결과는 10월22일 선거가 끝나야 알 수 있는 것이겠지만, 누가 되든 할 일은 이미 정해져 있다. 내부적으로 조계종을 잘 이끌어가는 일이야 총무원장의 당연한 임무이지만, 종교 편향과 관련해 여전히 각을 세우고 있는 이명박 정부와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지도 차기 총무원장에게 주어진 임무이다. 나아가 한국 사회에서 불교가 사람들의 안식이 되고 삶의 귀감이 되는, 종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이끄는 일 역시 차기 총무원장이 지고 가야 할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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