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가리고 아웅’인가 4대강 살리기 예산이 헷갈린다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09.10.13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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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16조”, 국토부 “22조”, 야당 “30조” 제각각…한나라당 내부에서도 “내년 예산 방만” 비판

▲ 10월6일 과천 국토해양부 청사에서 열린 국토해양부 및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심명철 4대강 사업추진본부장이 허리를 90°로 굽혀 의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뉴스뱅스이미지


어느 정도 예상은 되었었다. 하지만 막상 자리를 깔고 보니 판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10월5일부터 시작된 올해 국회 국정감사의 최대 쟁점 이슈로 ‘4대강 살리기 사업’이 부각되고 있다. 4대강 사업은 이명박 정부가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국책 사업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9월9일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와 첫 당·청 회동을 가진 자리에서 이 사업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정부의 강력한 실천 의지를 내비치며, 여당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달라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 셈이다.

대통령의 의지가 워낙 강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무리수가 불거지고 있다. 정부는 나름대로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고 자신하는 모습이었으나, 막상 야당의 거센 파상 공세 속에 여론마저 불리하게 전개되자 다소 당황해하는 모습이다. 한나라당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한 중진 의원은 “야당의 주장에 대해 해명하기가 쉽지 않게 되어 있다”라고 말한다. 민주당은 마치 호재를 만나기라도 한 듯 4대강 사업 예산 부분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고 있다. 다가오는 ‘10·28 재·보선’에까지 이어가겠다는 전략도 다분히 깔려 있는 듯하다.
같은 사업을 놓고 정부·여당과 야당의 시각은 완전히 상반된다. 당장 전체 예산 규모에서도 정부는 16조원을 말하고, 민주당은 30조원을 말한다. 무려 배 가까이 차이가 나다 보니,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4대강 사업 예산 논란에 따른 세 가지 쟁점을 통해 그 정확한 실체를 들여다보았다.   

01 4대강 사업의 실제적인 전체 예산은 16조원이다?

9월9일 당·청 회동 자리에서 이대통령은 “마치 4대강 사업 때문에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줄어든다는 오해가 있는 것 같다. 4대강 사업 예산이 16조원인데 22조원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라고 언급했다.

국토해양부는 지난 6월8일 ‘4대강 살리기 마스터플랜’을 발표하면서 총사업비로 22조2천억원을 책정했다(32쪽 도표 참조). 그럼에도 왜 이대통령은 16조원이라고 언급한 것일까. 인식의 차이 때문이다. 청와대에서는 국토부 예산으로 책정된 15조3천억원을 실질적인 4대강 사업 예산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농식품부와 환경부에서 사업 예산으로 책정한 6조9천억원은 4대강 사업과 관련된 것은 맞지만, 계속 사업으로 진행해 온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하지만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환경부와 농식품부의 사업은 마치 4대강 사업과 무관한 부처 예산인 것처럼 오해를 줄 소지가 있다”라며 비판하고 있다. 학계에서도 이 주장에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해까지 한국조세연구원장을 지낸 황성현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토부가 스스로 확정해서 발표했으므로 현재 책정된 4대강 사업 예산은 공식적으로 22조2천억원인 것이 맞다. 괜히 쓸데없는 숫자놀음으로 국민들에게 혼란을 주어서는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에서는 오히려 예산 규모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각 부처에 산재된 간접 연계 사업을 반영하면 30조원에 달한다”라는 것이다. “2급수 수질 목표 달성에 소요되는 예산 2조7천억원까지 포함하면 실질적인 예산은 24조9천억원이다”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학계 일부에서도 귀를 기울이고 있다. 



02 수공의 참여로 국가 재정 지출이 줄어들었다?

정부가 4대강 예산의 규모를 최대한 작게 보이도록 하고자 애쓰는 것은 당연히 야당과 국민의 반발을 의식한 때문이다. “나라 살림이 어려운데 무리한 사업을 벌여 그곳에 수십조 원의 국민 혈세를 쏟아 붓는다”라는 비판을 우려한 까닭이다. 이대통령이 지난 9월9일 정대표와의 회동에서 “4대강 사업 예산 16조원에서 8조원은 수자원공사(수공)에서 맡아서 하기로 되어 있다”라며 실제 정부 예산은 8조원에 불과하다는 점을 애써 강조한 것도 그같은 차원이다.

정부는 “수공의 참여로 국가 재정 지출이 현저히 줄어들었다”라고 강조한다. 즉, 4대강 사업으로 인해 다른 분야의 예산이 삭감되는 부작용을 거의 줄였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이같은 주장은 맞다. “정부가 나름으로 여론을 의식해 상당히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라는 일부 평가도 뒤따른다. 하지만 그 방법론을 놓고 새로운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애매한 공기업을 끌어들이는 ‘무리수’를 통해 일단 순간의 소나기만 피해가고 보자는 ‘꼼수’라는 지적이 그것이다(33면 기사 참조). 

지난 10월6일 정종환 국토부장관을 상대로 한 국감장에서 민주당의 이용섭 의원은 “국토부가 내년도 예산에서 6조5천억원의 예산을 신청했다가 예산 협의 과정에서 삭감되자 절반인 3조2천억원을 수공에 떠넘겼다. 이것은 정부가 재정 적자와 국가 채무를 줄이기 위해 국책 사업을 공기업에 떠넘긴 편법 예산으로 분식회계에 해당한다”라고 맹비난했다. 이에 대해 정장관은 “그것이 어떻게 분식회계가 되는가. 단지 정책 선택의 문제이다”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학계에서도 정부의 해명이 명쾌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있다.

03 4대강 사업으로 인해 다른 예산이 축소된 것은 없다?

▲ 이명박 대통령(오른쪽)이 10월6일 오전 청와대에서 취임 후 처음으로 정운찬 국무총리로부터 주례 보고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국토부는 내년도 SOC 예산으로 23조5천억원이 책정되었다고 발표했다. 이 중에서 4대강 사업에 책정된 3조5천억원을 제외하면 20조원이 되는 셈이다. 올해 추경예산까지 포함한 SOC 예산(24조7천억원)에 비해 4조원 이상이 줄어든 것이다. 내년도 SOC 예산에서 4대강 사업은 약 15%의 비중을 차지한다. 이처럼 4대강 사업 예산이 만만찮은 비중을 차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쪽의 예산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실제, 서민복지 분야에 해당하는 주택 사업이 올해에 비해서 33.4%나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주택 바우처(월세 쿠폰 제도) 시범 사업 예산 60억원도 날아갔다. 지하철을 포함한 도시철도 분야 역시 올해에 비해 21.8% 감소했다. 서민의 주거 안정과 교통 편의를 위한 사업이 대폭 줄어든 것이다.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출신인 이한구 의원 역시 지난 9월 초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기존의 예산에서 4대강 사업 때문에 예산이 더 늘어난다고 하면, 국가 부채를 그만큼 더 늘리지 않는 이상 그것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다른 예산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그것은 애들도 다 아는 것이다”라고 인정했다. 정부에서도 이런 비난을 우려해서 상당히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정부가 예산 편성 발표를 하면서 유독 복지부 예산에 많은 설명을 할애한 것이 그 예이다. “내년도 복지 예산 증가율이 올해 본예산 대비 8.6%나 증가했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비난에 이내 묻히고 말았다. 대개 추경예산까지 포함해서 비교를 하는데, 복지 분야에서는 정부가 본예산과 비교해서 증가분을 부풀리게 보이도록 하는 술수를 썼다는 역풍에 직면한 것이다. “올해 추경예산과 대비해 6천억원이 늘어난 것으로 단 0.7% 증가한 수준에 그친다”라는 야당의 지적이 곧바로 이어졌다. 또한, 0.7%의 증가도 실제 내용을 따져보면 증가라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공적연금, 실업급여, 기초노령연금 등의 증가분은 수급자의 증가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자연 발생 증가분’이지 정부가 늘리려고 해서 늘린 것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실제 10월5일 보건복지부 국감장에서 야당 의원들이 이런 점을 집중적으로 추궁하자 전재희 보건복지부장관은 “의원들 지적에 부분적으로 동의하지만, 당초 기획재정부가 짠 예산은 마이너스여서 노력을 많이 해 이만큼 늘렸다”라고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일각에서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최대의 피해를 본 쪽은 ‘세종시’라는 새로운 주장도 제기되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예산의 한계 때문에 정부가 4대강 사업과 세종시 건설 사업을 동시에 추진할 수 없는 형편 탓에, 결과적으로 세종시 건설이 축소되었다”라는 주장이다. 이런 의견은 자유선진당측을 강하게 자극하고 있다.

야당의 반발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불협화음의 조짐이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 ‘친박계’의 핵심 중진인 홍사덕 의원은 지난 9월16일 공개적으로 “4대강 예산 때문에 내년 예산이 방만하기 짝이 없게 되었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와의 회동 이후에는 당내 이견 표출이 자제되고 있지만, “너무 무리하게 밀어붙이려 해서는 안 된다”(친박계 한 초선의원)라는 불만은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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