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바닷바람이 내 몸에 보약이었다”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9.10.20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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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 치료와 수술로 후두암 물리쳐…“욕심을 버려라”

ⓒ시사저널 박은숙

약 2년 동안 후두암으로 고생한 이영기씨(40)는 암을 이겨낸 비결 가운데 생활 환경을 으뜸으로 꼽았다. 이씨는 “암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환자의 의지와 의료진의 치료도 중요하지만 생활 환경도 무시할 수 없다. 병을 이겨내겠다는 의지가 있어도 환경이 좋지 않으면 꺾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나와 같은 직장인은 병에 걸려도 생계 때문에 회사를 그만둘 수 없다. 스트레스가 있는 환경에서 병이 낫기를 바랄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오래전부터 그는 건강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었다. 중학교를 태권도 특기생으로 진학할 정도로 건강 체질이었다. 현재 태권도 공인 3단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몸이 망가졌다고 한다. 잦은 야근에 피로와 스트레스가 누적되었다는 것이다. 이씨는 “하루 14~15시간 근무했다. 밤 11시가 넘어서 일과를 마치면 동료와 맥주를 마시고 1시쯤 집에 들어갔다. 그러고도 새벽같이 출근하는 생활을 반복하니 피로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쌓였다. 회사 일이 바쁠 때는 1주일에 5일 이상을 회사에서 먹고 자는 생활을 했다. 아내가 속옷을 회사로 가져왔을 정도이다”라고 말했다.

본인의 생활 습관도 문제였다. 소주 3병이 주량인 그는 거의 매일 술을 마셨고, 20년 동안 매일 담배 한 갑을 피웠다. 맵고 짠 것을 좋아하는 식습관에다 식사 시간마저 불규칙했다. 2007년 4월 어느 날 쉰 목소리(애성)가 났지만 그는 피로와 스트레스 때문일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씨는 “동네 병원을 찾아 몇 차례 치료를 받았지만 증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의사가 소견서를 써주면서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라며 발병 당시를 떠올렸다. 

휴식이 필요했던 이씨는 작은 병에라도 걸려 며칠 입원해서 쉬고 싶었다. 그 생각이 화를 불렀을까. 2008년 3월 서울대병원에서 진단받은 결과는 후두암이었다. 

최선의 치료는 방사선 치료였다. 4개월 동안 방사선 치료를 40회나 받았다. 쉰 목소리는 거의 정상으로 돌아오는 듯했다. 올해 1월 다시 쉰 목소리가 났다. 거의 없어졌던 암이 재발한 것이다. 이씨는 “병원에서 조직검사를 통해 재발한 것을 확인했다. 의사의 권유에 따라 수술을 선택했다. 올해 2월 성대를 떼어내면서 주변 조직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성대를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성대가 없기 때문에 그의 목소리는 약간 어눌하다. 수술 후 한 달 동안은 목소리가 나오지도 않아 글을 써서 식구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수술 후 2개월쯤 되니 귓속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1997년 음료회사에 입사한 그는 경기도 이천, 충청도 천안 등지에서 일했고, 지난 2001년부터는 서울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는 최근 강원도 평창에 있는 공장으로 발령내줄 것을 회사측에 신청했다. ‘건강을 위해 건강한 환경’을 찾아가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씨는 “되찾은 건강을 지키기 위해 좋은 생활 환경을 찾아가려고 한다. 공장은 해발 9백m에 있다. 예전에 한 번 근무해본 적이 있는데, 그곳의 공기와 물은 서울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라고 말했다.

건강 지키기 위해 지방 발령 내달라 요구

그가 물 좋고 공기 좋은 환경을 고집하는 이유는 암 투병 기간 동안 환경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목포가 고향이다. 암에 걸린 후 7개월 동안 서울에 처자식을 남겨두고 고향 집에 내려가 살았다. 바다를 막은 5km짜리 둑을 매일 두세 차례 걸어서 왕복했다. 조금 빠르게 걸으면서 맞은 바닷바람이 내 몸에 보약이 된 것 같다”라며 환경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고향 집에서 생활하는 동안 그는 유기농 채소를 주로 섭취했다. 그의 부모는 앞마당 꽃밭을 뒤엎고 채소를 재배했다. 텃밭에서 자란 배추, 상추, 고추, 마늘 등을 식탁에 올렸다. 밥도 쌀은 30%도 되지 않는 잡곡밥만 먹었다. 이때부터 그의 식습관은 1백80˚ 달라졌다. 본래 식성은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다. 맵고 짠 음식을 먹어야 먹은 것 같았다. 생선회를 먹어도 고추와 냉이를 많이 곁들였다. 일반 사람들에게 짜고 매운 음식도 그에게는 밍밍해서 고춧가루, 간장, 소금을 더 넣어야 했다. 젓갈은 단골 반찬이었다. 

그의 주 식단은 된장, 청국장, 채소류이다. 육류는 피하는 대신 생선을 먹고, 간식은 과일로 해결한다. 수십 년 동안 한결같은 입맛을 바꾸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밍밍한 식사’에 투정하지 않기로 했다. 이씨는 “입원해서 후두암 수술 후 20일 정도는 밥을 전혀 넘기지 못했다. 병원 밥이 맛이 있겠는가. 그런데도 옆에 있는 환자가 밥 먹는 모습을 보면서 군침을 삼켰다.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행복인지 깨달았다”라고 말했다.

기독교 집안이지만 그는 교회에 다닌 적이 거의 없다. 암에 걸린 이후는 신앙 생활을 몸에 익혔다. 신앙 생활이 투병 의지를 굳히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욕심을 버리고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마흔이 되어서야 새삼 알게 되었다. 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결코 이런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투병 생활을 시작하면서 생계가 막막했다. 아내는 작은 학원을 운영하려다가 1천5백만원을 사기당했다. 예전 같으면 소송을 하고 난리를 부렸겠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욕심을 버렸다. 대신 건강을 얻을 것이라고 믿었다”라고 말했다. 또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이 있다. 예전에 어른들이 이런 조언을 해도 피부로 느낄 수 없었다. 암에 걸려보니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그의 주치의인 권택균 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환자의 사회적인 활동이나 여생을 고려할 때는 목소리를 유지하는 것이 치료하는 데 중요한 고려 대상이다. 후두암 1기에서 내시경수술과 방사선치료의 성적은 비슷하다. 그런데 같은 1기 암이라도 암이 침범한 깊이가 깊거나 주변 조직과의 경계가 불명확할 경우에는 수술 범위가 커지므로 방사선치료를 먼저 한다. 이 환자도 방사선 치료를 받았지만 재발해서 결국 수술까지 받았다. 수술 부위는 잘 아물었고, 현재 재발 없이 7개월 이상 추적 관찰 중이다”라고 말했다. 

암을 이겨낸 비결

1. 환경을 바꾸었다.

스트레스는 암과 친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 둘을 떼어놓으려면 스트레스 요인을 아예 없애야 했다. 환경을 바꾸어야 하는 이유이다. 필요하다면 직장을 옮길 필요도 있다. 

2.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어야 한다. 

건강을 얻으려면 재물이나 권력에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마음속 한 구석에 욕심이 똬리를 틀고 있으면 건강을 되찾을 수 없다. 사기로 돈을 잃었지만 욕심을 버린 탓에 건강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3. 밍밍한 식사를 했다.

양념, 조미료가 없는 식사를 한다. 싱겁지만 몸에 배면 큰 무리 없이 식사할 수 있다. 이것을 건강할 때부터 시작해야 암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멀어질 것 같다.

4. 믿음을 가졌다.

어떤 식으로든 믿음을 가지려고 했다. 자신만의 의지는 주변 환경에 의해 쉽게 흔들릴 수 있다. 이때 버팀목이 되어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나는 신앙의 힘에 의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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